‘생명’ 살리는 ‘법’ 지켜져야
기존 의료법 제19조 2항은 태아 성감별 드러날 경우 징역 벌금 의사면허 취소
개정안은 ‘과태료 부과’만
개정안 찬성자
“가족의 알권리 존중돼야”
개정안 반대자
“생명 훼손 가능성 커져”
최근 보건복지부가 의사의 ‘태아 성감별 행위’에 대한 처벌을 대폭 낮추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존 의료법 제19조 2항은 의사가 태아의 성별을 임신부 본인이나 가족, 또는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 사실이 드러날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도 있다.
개정안은 이러한 처벌을 단순 행정처벌인 과태료 부과로 낮추겠다는 방침이다. 복지부는 법안을 3월 25일까지 입법예고한 뒤 규제개혁위원회 등을 거쳐 이르면 6월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생명을 보호하는 뚜렷한 대안없이 졸속 개정이 진행되면 우리사회 생명경시풍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사회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
우리사회에서는 유교적 성향으로 오래전부터 남아선호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또 1970년대부터는 정부의 인구 억제 정책에 따라 무분별한 낙태도 이어져왔다.
일반적으로 낙태 사례를 살펴보면 미혼자의 낙태는 원치 않는 임신인 경우가 많지만 기혼의 경우에는 성감별에 의한 낙태가 대부분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태아 성감별과 낙태는 의료법과 형법 등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인 및 기관들과 일부 산모들의 그릇된 의식으로 인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의료법 제19조 2항은 1980년대 태아성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가 크게 늘어나자, 낙태와 남아출산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이 법은 특히 당시 낙태 행위와 생명경시풍조에 경각심을 주는 강력 조치로써 모든 성감별을 금지하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따라서 그동안 특히 여아들의 낙태를 막는 최소한의 방패 역할을 해왔다.
현재 복지부 개정안이 논란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생명 훼손’의 가능성 때문이다. 개정안이 발표되자 각계에서는 처벌을 느슨하게 할 경우 낙태가 증가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개정안 찬성
개정안을 찬성하는 의사협회와 일부 여론층은 낙태 의도 없이, 임신부와 가족들의 알권리 충족을 위한 단순한 성감별에 대해서도 낙태의 예비, 또는 미수로 간주하는 폐해가 있기 때문에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또한 “낙태죄는 형법상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데 반해 성감별죄는 낙태죄의 예비 음모적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형량이 높은 것은 모순”이라며 “태아성감별 행위가 반드시 낙태로 이어지지 않음에도 형사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행정질서법으로 전환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주교회의 생명31운동본부 총무 송열섭 신부는 “성감별죄 처벌을 낮추기에 앞서 낙태죄에 대한 처벌이 가볍지 않은가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성희롱죄도 벌금이 3천만원에 달하는데 생명을 훼손한 죄에 벌금 200만원, 징역 1년 정도를 부과하는 것이 형평성을 더 그르치는 것이 아니냐”고 토로했다.
◆개정안 반대론자
개정안 반대자들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생명윤리의식 수준이 여전히 낮고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한 현실에서 성감별 허용은 반인륜적인 여아살해 위기를 제도화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한다.
성감별 처벌 완화에 대해 “형사처벌 대신 과태료를 부과한다면 법을 어기고 낙태하는 것은 주차위반처럼 경미한 행정질서를 어기는 것과 같이 의식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개정안 반대자들은 “금전적 수익만을 노리는 일부 그릇된 의료진들은 성감별 행위를 범죄가 아닌 주차위반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낙태 시술을 반대하는 가톨릭신자 개업의 정지윤(마르타 38)씨는 “의사들이 성감별 처벌 완화를 주장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며 “낙태를 막는데 의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최근 남아선호 사상이 점차 옅어지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남아선호 사상이 한국사회에서 퇴출된 것은 아니다.
통계청 조사결과 출생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1995년 113.3명에서 2005년 107.7명로 줄어들긴 했지만, 셋째 아이를 낳는 경우에는 127.7명, 넷째 아이 때는 132.6명으로 크게 늘어나 여전히 아들 선호사상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출생성비는 지리적 요인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는데 대구, 경북, 부산, 경남 지역의 출생성비가 전국 각 시도 평균보다 높다.
예를 들어 대구의 셋째 이상의 출생성비는 148.7(2004년)로 전국의 셋째아 이상 평균 출생 성비 132.7보다 훨씬 높은 수를 보인다. 게다가 태아성감별은 형사처벌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사회 안에서는 낙태를 전제로 한 성감별이 진행돼왔다.
현직 개업의 등의 증언에 의하면 일부 의사와 조산사 등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돈을 받고 성감별을 자행하고 있다. 특히 해외 원정출산을 위한 태아성감별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 경찰 조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음성적인 수입을 위해 낙태하는 의사 등을 고려해볼 때 처벌이 완화될 경우 겉잡을 수 없는 법률적, 도덕적 해이에 빠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따라서 기존 낙태와 관련한 모든 처벌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기선미 정책국장은 “현행법상 낙태죄나 태아성감별 행위가 형법상의 형벌로 다스려지는 것은 반인륜적인 낙태 자행 등 극단의 상황을 막고 낙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라며 “처벌이 강한 지금도 태아성감별 행위가 많이 이뤄지는데 처벌 수위를 낮추면 낙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 김정책국장은 “요즘같은 저출산 시대에는 오히려 아들 골라낳기가 더욱 우려된다”고 밝혔다.
실제 임신 9개월이 다 된 여아를 부모 요청으로 유도분만해 살해한 경우도 발발했다. 여전히 남아를 선호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다.
◆인간 생명은 ‘최상위 가치’
이번 개정안 논란에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점은 인간 생명은 어떠한 행복이나 자유보다 우선되는 ‘최상위 가치’라는 것이다. ‘생명’을 파괴하면서까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더욱 큰 모순이다.
개정안 반대자들은 “면밀한 사회 변화 및 의식조사와 낙태를 금지하는 명확한 처벌조항 등의 대안 없이, 태아성감별 처벌을 완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처벌 완화가 아니라 의료인 뿐 아니라 임신부까지도 낙태 목적 성감별 규제 대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법제 마련이 더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낙태금지법 처벌도 더욱 강화하고 의료인 윤리를 더욱 공고히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터뷰] 고려대 법대 김일수 교수
“생명 파괴하며 행복 추구한다?
큰 모순이죠”
“행복과 자유, 건강 등 어떠한 가치도 ‘생명’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생명을 파괴하면서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큰 모순입니다.”
고려대 법대교수이자 ‘낙태반대운동연합’ 대표직을 맡고 있는 김일수 교수는 “모든 법에서 최상위 가치는 생명”이며 “인간 존엄성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강조한다.
마약이 행복에 좋다고 해서 마약을 자유화하면서까지 행복을 추구하고, 연애가 좋다고 가정을 파괴하면서까지 즐기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생명수호를 위해 제정된 법은 그 본연의 가치를 우선 고려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태아 성감별 개정안에 대해서 김교수는 “의료법 제19조 2항은 1980년대 당시 성비 불균형이 유행처럼 번져 생명경시풍조가 확산될 위험에 따라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제정된 법”이라며 “낙태 의도가 없는 대상도 포함됐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있더라도 생명 파괴를 막는다는 ‘특수한 문제’에 대처한 대응으로 필요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 김교수는 “의료인과 관련 기관들도 법에 대한 경각심 등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며 “낙태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 없이 성감별에 대한 처벌만을 완화하는 것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따라서 “특수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 영향력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우선되어야 법의 개정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며 “혹여 법안의 일부 개정이 요청된다 하더라도 낙태 예비행위로서 성감별이 이뤄지지 않고 또한 낙태를 막기 위해서는 행정적 처벌이 아니라 형법적 처벌이 꼭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교수는 “특히 임신부 등 일반인에 대한 올바른 의식교육과 예방 프로그램 실천 없이는 낙태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사진설명
개정안 반대자들은 “면밀한 사회 변화 및 의식조사와 낙태를 금지하는 명확한 처벌조항 등의 대안 없이 태아성감별 처벌을 완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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