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멈출 수 있을 때
하느님께 창조된 만물 가족 공동체의 생태적 생명 운동을 어떻게 포착하고, 그것을 어떻게 살리는 길로 작용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신앙 공동체는 창조계의 신음과 탄식을 어떻게 감지하고 여기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의 생태 복음화 비전이 추구하는 기본 과제이리라.
그러면 이번에는 먼저 창조된 만물 가족 중에서 작고도 작은 생명, 배추벌레에게 배운 생명의 길에 관하여 보기로 한다.
배추벌레가 무슨 색이냐고 물었을 때, 어떤 사람이 답하였다. “배추색”이라고.
‘아, 그래. 배추벌레는 배추를 먹어서 배추색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먹어 그리스도 색으로 물들어 가겠네?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 색으로 살겠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베네딕토 교황의 ‘평화 생태학’이란 바로 이 그리움을 ‘평화’와 ‘생태학’이라는 말을 가지고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의 창조에 물들어 하느님의 창조에 협력하는 영혼들, 이들이야말로 가장 온전한 형태로 베네딕토 16세의 ‘평화 생태학’을 실천해 가게 될 것이다. ‘평화 생태학’이란 하느님의 창조에 닿아 하느님 색으로 물든 혼들이 한데 얼려 창조 질서를 찬양하며 ‘너를 너로 살게 하는’ 깊은 평화 관계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추벌레가 저렇게 배추색으로 물들고 나면 어떻게 하던가? 배추벨레가 배추색으로 충만히 물들었을 때, 자기를 멈추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때가 차고 찼을 때, 예루살렘으로 얼굴을 붙이시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처럼, 배추벌레도 자리를 틀고 정지하여 자기를 내어맡긴 채 비상의 때를 기다린다.
나는 바닥을 품어 안는 자기 비움이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발생시킬 창조적 생명력을 노래해 왔다.
배추벌레 역시 바닥을 기어서야 비로소 나비의 날개를 얻지 않는가! 그런데 배추벌레가 멈추어 설 자리를 찾기 시작하는 것보다 더 가슴을 울릴 만한 사건이 있을까? 멈추어 선다는 것은 바닥을 기던 운동을 놓는 것이다.
자기가 몸붙여 살았던 자리를 떠나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 고치 속에서 더 이상 자기가 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정지시켜서 생명이 내부에서 익도록 자기를 내어맡기는 수동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멈추기, 이 정지를 거부한 채 자기의 바닥 운동을 절대화하게 되면, 배추벌레는 죽는다. 자기가 몸 붙여 살던 방식을 놓을 줄 모르면, 배추벌레에게 나비의 비상이란 없다.
이 집착, 그것이 바닥이든, 정상이든, 권력이든, 권위이든, 명예든 돈이든, 학벌이든, 지위든 그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죄를 불러들이게 되어 있다. 그가 누구이든, 자기가 기는 것을, 그것이 설령 자선이나 성직이라고 할지라도, 절대화할 때, 그때 죄를 쌓게 되는 법이다.
스스로 실을 내어 자기를 묶어 멈출 줄 모르면, 이 정지를 거부하면, 고치 안에서 세상에 깜깜 눈멀고 귀먼 채, 생명의 주인께 자기를 내어맡길 줄 모르면, 배추벌레는 벌레로 남는다.
고치 틀어 멈춤 없이 바닥의 완성이란 없다. 나비로의 부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자기가 기는 것을 절대화하는 이들이 겪을 아픈 운명이다.
아, 배추벌레의 고치여! 십자가가 생명의 길인 이유를 생태적으로 계시하는 하느님의 한 언어여!
사람은 하느님께 영혼의 불꽃을 받아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불꽃이 위로 오르듯이 모든 사람은 위를 그리워하게 되어 있다. 배추벌레-나비처럼 날아오르는 것 자체를 가로막을 이유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오르는 것을 가로막은 베드로가 “사탄”이라 일컬어지며 호되게 질책당한(마르 8, 33)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어떻게 오르는가이다. 짓밟아 신음하게 하면서 타고 오르는가, 아니면 사랑의 불로 웃게 하며 함께 타오르는가?
바닥을 긴 배추벌레에게만이 나비의 비상이 정상이듯이, ‘평화의 십자 나무’ 예수께서 하신 그대로, 바닥으로 내려서자.
그리하여 바닥부터 다 태우자, 하느님의 사랑의 불로. 그렇지 않고는, 아, 그렇지 않고는 누구도 바닥까지 웃게 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복음화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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