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성사는 믿고, 거행하고, 살아야 할 신비”
전례 참여와 ‘거행 기술’의 중요성 강조
“사제 독신 완화 안돼”… 일부 주장에 쐐기
재혼한 신자 영성체 불가 입장도 재확인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월 22일자로 발표한 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권고 ‘사랑의 성사’(Sacramentum Caritatis)를 발표했다.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Deus Caritas Est)를 통해 ‘사랑’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해박한 신학사상과 탁월한 문체로 선포한 바 있는 베네딕토 16세의 이번 교황권고는 모든 가톨릭신자들이 성체성사의 신비를 거행하고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지침으로 제시되고 있다.
▨개요
교황권고 ‘사랑의 성사’는 지난 2005년 10월 2일부터 23일까지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세계주교시노드) 제11차 정기총회의 최종문서이다.
교부들은 약 3주간 열린 시노드를 마치고 교황에게 총 50개항의 건의서를 제출했고, 교황은 이를 바탕으로 성찬례를 ‘교회 생활과 사명의 원천’으로서 올바르게 거행하고 성체성사를 삶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 교황권고는 전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성체성사에 관한 문헌들, 즉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Ecclesia de Eucharist)와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Mane nobiscum Domine)와 그 맥락을 같이 하면서, 성찬례를 거룩하게 거행하고 성체성사의 삶이 곧 우리 일상의 삶이 되도록 요청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권고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통해 아름답게 강조하고 있듯이, 교회와 인류의 미래가 의지할 것은 오직 ‘사랑의 진리’ 뿐임을 드러내고 있다.
권고는 성체성사의 신비가 지니는 세 가지 차원, 즉 성찬의 신비, 전례 거행, 그리고 영적 예배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이에 따라 권고의 본문은 서문(1~5항)과 결론(94~97항) 외에 ‘믿을 신비’(THE EUCHARIST, A MYSTERY TO BE BELIEVED; 6~33항), ‘거행되는 신비’(THE EUCHARIST, A MYSTERY TO BE CELEBRATED; 34~69항), 그리고 ‘살아야 할 신비’(THE EUCHARIST, A MYSTERY TO BE LIVED;70~93항) 등 3부로 나뉜다.
그럼으로써 교황권고 ‘사랑의 성사’는 ‘전례의 거행’(거행되는 신비)이 ‘신앙’(믿을 신비)에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살아야 할 신비)을 어떻게 가능하도록 하는지를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교황은 완전하고 적극적이며 풍성한 열매를 맺는 전례에의 참여(actuosa participaio)를 위해서 ‘거행 기술’(ars celebrandi)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총회 의안집은 52항에서 “신자들을 참된 예배와 공경과 흠숭으로 이끌 수 있도록 거행의 기술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성사 거행이 어떠한 남용도 없이 품위 있고 엄숙하게 이루어지도록” 할 것을 지적한 바 있다.
권고의 제1부 ‘성체성사, 믿을 신비’는 삼위일체의 신비와 성체성사가 지닌 연관성을 제시하며, 유다인의 전통적인 파스카 만찬과의 관계, 성령의 역사하심과 성찬례의 관계 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신학적 성찰을 제시한다.
이어 다른 성사들과 성체성사가 갖는 관계를 서술한다. 그래서 성찬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입문을 완성하고 모든 성사생활의 중심이고 목표임을 설명한다.
제2부 ‘성체성사, 거행되는 신비’는 전례의 합당한 거행을 위해 요구되는 지침들을 제시한다. 여기에는 침묵, 제의, 몸짓 등 풍성한 전례의 상징들과 전례 거행에 기여하는 기술적인 요소들이 모두 포함된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활용이나 병자와 죄수, 이주민, 대규모 집회와 소그룹에서의 전례 거행 등 보다 적극적인 전례 참여를 위한 사목적 요소들이 설명된다.
마지막 제3부 ‘성체성사, 살아야 할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우리를 위한 진리의 양식이 되기 위해서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로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초대한다며 성체성사의 은총은 인간의 자유에 의해 살아가야 할 것임을 제시한다.
그럼으로써 자유로이 성찬례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생활을 통해 성찬례의 정신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들의 삶 자체가 온전히 성찬의 정신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성체성사는 모든 이들이 다른 이들을 위해 ‘쪼개진 빵’이 되도록 촉구하며, 보다 정의롭고 형제애로 가득한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요구한다. 성체성사의 신비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현존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준다.
이처럼 교황권고 ‘사랑의 성사’는 그리스도인이 신앙으로서 믿어야 할 신비, 거룩한 전례로서 바르게 거행해야 할 신비, 그리고 실제 일상의 삶으로서 살아가야 할 신비로서 각각의 성체성사의 측면들과 그 깊은 상호 연관성들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주요 사목적 과제들
이미 지난 2005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1차 정기총회 당시부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던 몇 가지 사안들이 있었다.
전세계적인 사제 부족으로 인해 사제 독신제에 대한 입장이 완화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혼한 신자들의 영성체 문제에 대한 사목적 문제가 그것이다.
이번 권고에서 교황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한 사제 독신제에 대한 기존의 교회 가르침을 완화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을 재확인했다. 교황은 이와 관련해 “순전히 기능적 이유에서 사제 독신제를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고 사제들의 독신은 “특별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혼을 한 뒤, 재혼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가톨릭 신자들의 “복잡하고 힘든 사목적 문제”에 대해 ‘고통스러운 상황’이라고 공감하면서도 이는 객관적으로 혼인의 불가해소성과 어긋나는 것이기에 영성체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교황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들은 교회에 속한 사람들로서 비록 영성체를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정기적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기도를 바침으로써 교회의 삶에 함께 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교황은 권고에서 라틴어 미사와 그레고리안 성가의 사용을 격려했다. 교황은 특히 오늘날 잦아지고 있는 국제적인 모임에서는 라틴어를 사용해 전례를 거행하는 것을 적극 권고하면서 이는 교회의 일치와 보편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와 함께 가능하다면 그레고리안 성가의 사용도 더욱 격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입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전례개혁 정신과 일견 상충되는 듯이 보이지만 교황은 이와 관련해 공의회 전례 개혁의 정당성과 유익함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으며 라틴어와 그레고리안 성가의 적절한 활용이 전례 개혁과 아무런 충돌을 빚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교황은 신자들이 성체성사를 더욱 잘 믿고, 거행하고, 살아가는데 있어서 도움을 주기 위해서 성체성사에 대한 교회의 모든 가르침들을 담은 ‘성체성사 대요’(Compendium)를 발간할 뜻을 전했다.
이 대요는 가톨릭교회교리서, 각종 기도문, 로마미사경본의 성찬기도 해설, 그리고 성체성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거행하고 경배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가능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작성될 예정이다.
▨제11차 세계주교시노드 개최 과정
‘교회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를 주제로 한 시노드 소집을 선언한 것은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미 2003년 4월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통해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어 2004년 2월 시노드 소집을 발표했다.
이어 10월 ‘성체성사의 해’를 시작하면서 교황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를 발표해 모든 하느님 백성이 성체성사의 해를 맞아 그 신비를 성찰하고 교회 생활과 믿음에서 이를 익히고 실천하도록 권고했다.
시노드를 반년 앞둔 2005년 4월 2일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했으나 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선임 교황의 뜻에 따라 시노드의 개최 일정과 진행 방법상의 수정, 보완을 거쳐 예정대로 총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그리고 10월 2일 개막된 시노드는 성체성사의 해와 함께 22일 폐막됐으며, 교황은 교부들이 작성한 50개항의 건의서를 제출받은 뒤 이례적으로 이를 공개했다.
교황은 이 건의서와 함께, 대륙별로 선정된 3명씩의 대표들과 직접 임명한 위원들로 구성된 후속위원회가 제출한 모든 자료들을 토대로 이번 교황권고를 작성, 발표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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