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잘 몰라도 주님 함께하심 느끼죠"
IMF로 모든 것 잃고 절망…봉사로 제2인생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가족도 건강도 재산도.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10년을 살아온 이용남(예비신자.66.가명)씨. 아직도 세상에 지은 죄가 많아 자신을 떳떳하게 내세울 수도 없습니다. 절망의 끝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세상을 탓하고 원망했습니다. 죽을 결심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언제나 혼자일 것 같은 이 세상에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전 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천안 성모의 집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홀몸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이씨. 화려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을 기다리는 그를 사순 마지막 주일에 만났습니다.
암흑으로 세상이 덮이다
IMF때문이었다. 대구에서 개인 사업을 하며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이씨는 경영하던 사업체의 부도와 함께 그 모든 것을 잃었다. 빚쟁이를 피해 숨을 곳을 찾아 다녀야만 했다. 밀린 어음을 막지 못해 교도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6개월 후 출소를 했지만 이미 아내와 하나뿐인 아들, 가족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버린 이후였다. 이제 몸뚱아리 하나에 의지해 살아가야 했다.
이씨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악착같이 살아서 다시 가족들과 함께 사는 날만을 꿈꿨다. 그는 어렵사리 1종 자동차 면허를 취득해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도 생각과 같지 않았다. 택시 운전 중에도 큰 사고가 3~4번 발생했다. 이로 인해 그는 왼쪽 안면 뼈를 제거해야 했고, 오른쪽 팔은 의수에 의지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더 이상 운전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살 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이제 50대 후반에 들어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술 마시며 신세를 한탄하는 일 밖에 없었다. 정착할 곳도 없었다. 아직도 남은 빚이 많았기 때문에 일가친척들에게 찾아가지도 못했다. 신용불량자이던 그를 찾는 것은 빚 독촉장뿐이었다. 빚 독촉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그는 주민등록증도 말소시키고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끝없는 유랑생활의 시작이었다. 서울, 수원, 속초 등등 안 가본 곳이 없었다. 한강다리 위에서 죽음을 결심한 것도 수 십 번. 5년을 그렇게 살았다. 당시 이씨에게 삶이란 암흑빛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일 뿐이었다.
‘희망의 빛’ 보이다
오랜 기간 방황을 해왔던 이씨는 2005년 천안에 자리를 잡았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기 위해 대구에 내려갔다. 다시 태어난 느낌이 들어 감회가 새로웠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호적등본을 발급해보니 아내와는 2004년 이혼이 돼있었다. 외아들은 주민등록증이 말소된 상태였다.
이제는 영영 가족을 찾을 방법이 없었다. 혼자가 된 이씨는 천안으로 돌아와 신문 가판을 운영했다. 돈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했지만 사기를 당해 결국 가진 돈은 한 푼도 남지 않았다.
다시 암흑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다. 그 때 홀몸노인들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대전교구 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천안 성모의 집을 알게 됐다.
가톨릭이라는 종교도 처음 접했다.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았던 그에게 성모의 집은 희망으로 다가왔다.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홀몸노인들이 성모의 집을 돕기 위해 폐지를 모으는 모습을 봤다. 그는 또 성모의 집 봉사자들로부터 받은 교회잡지에서 두 다리를 잃고도 밝게 살아가는 신자의 이야기도 읽었다.
“나만 힘들게 사는 줄 알았어요. 이곳에서 나보다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보면서 두 다리, 한쪽 팔이 멀쩡한 내가 못할 게 뭐가 있나 싶었어요. 나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했죠.”
이후 이씨는 자칭, 타칭 천안 성모의 집 질서반장이 됐다. 아침 10시 반부터 천안 오룡 경기장에 위치한 성모의 집은 그의 큰 목소리와 함께 점심 준비를 시작한다. 식사 준비를 돕는 노인들에게 잘 좀 하라며 언성을 높이면서도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주변에서 벽돌을 찾아준다. 뿐만 아니라 식사시간에는 연세가 많은 노인들에게 손수 식사를 배달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을 챙기다 보니 정작 본인의 점심은 맨 마지막 순서다. 그나마도 편하게 먹을 생각은 애초에 접었다. 여기저기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먹던 숟가락도 내팽개치고 바로 달려간다.
그의 봉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모두가 떠난 시간에도 성모의 집에 남아 불편하지만 한쪽 팔로 깔끔하게 청소를 한다. 도와주는 이가 없어도 불평 한마디도 없다. 가족끼리는 내 일, 네 일을 따지지 않는 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아름다운 부활 기다리며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싶어요.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소 만은 건강이 남아있는 한 봉사하려고요.”
이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대전교구 천안 봉명본당(주임 여충구 신부)에서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있다. 하느님께서 도우신 것일까? 삶 자체가 막막했던 이씨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10년이 넘게 빚 독촉장에 시달렸던 그가 대전 지방법원에 개인파산을 신청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드디어 그동안 그를 괴롭히던 독촉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또 하나의 좋은 소식. 국가에서 장애인 연금과 기초수급보조금을 받아 다달이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봉사자분들이 그래요. 모두 주님께서 돌보시는 거라고…. 저는 가톨릭에 입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활을 잘 모르지만 정말 하느님께서 저와 함께하심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어요.”
그는 매일 아침 20분 거리의 성당으로 새벽미사에 참석한다. 하루 중 제일 많이 보는 TV프로그램도 종교방송이다. 주말만 되면 하루 종일 가톨릭 관련 영화를 볼 정도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드리며 세례받을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 새로운 마음을 갖고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기 위해 그토록 달고 살던 술과 담배도 끊었다.
“마음의 갈 바를 몰라 방황하던 내게 가톨릭은 희망을 줬습니다. 교리공부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하면서 이제는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요.”
이번 부활절, 하느님의 자녀로서 태어나게 될 이씨. 그동안 살아왔던 암흑 같은 10년을 회개하고 다시 보람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과 함께 부활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사진말
▶지저분해진 성모의 집 앞마당을 홀몸 노인들과 함께 치우고 있는 이용남씨(오른쪽).
▶지난날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용남씨. 지난해 11월부터 예비신자 교리를 받고 있는 이씨는 자신에게 희망이 되어준 천안 성모의 집에서 홀몸 노인들을 돌보며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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