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이 마련한 ‘사랑의 통장’은 신자들의 정성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이렇게 모인 신자들의 값진 정성은 사연의 주인공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다. 이름 모를 은인들의 따뜻한 사랑을 전해 받은 주인공들의 뒷이야기를 전한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전해진 사랑
“혼자 아닌 ‘우리’ 있음에 감사”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죽음과 싸우며 선교 활동하는 이상원 신부’의 기사가 보도된 것은 2007년 1월 7일. 신문에 아프리카 오지 시에라리온의 사목 현장이 소개된 것은 처음이다.
말라리아 등 질병과 테러의 위험 속에서도 선교 불모지에서 사목하고 있는 이신부의 이야기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다른 도움을 줄게 없느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하고 싶다’, ‘직접 가서 신부님을 뵙고 싶다’는 전화가 하루에도 서너 통씩 걸려왔다. 후원회를 결성해 도움을 주겠다는 신자도 있었다. 두 달간 모인 성금은 평소의 다섯 배 이상인 5천 여 만원. 500만원을 선뜻 내어놓은 이도 있었다.
가톨릭신문은 4월 초 시에라리온에 기자를 파견,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이상원 신부의 사목현장을 취재 보도할 계획이다. 다음은 이상원 신부가 은인들에게 보낸 편지 전문.
# 찬미 예수님.
너무나 행복한 체험이었습니다. 아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수도회 문제와 관련해 잠시 필리핀 마닐라에 갔을 때 필리핀 교회를 취재하기 위해 온 가톨릭신문사 기자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기자는 내가 아프리카에 사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고 기사로 썼고, 그 기사를 보고 많은 분들이 정성을 보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보잘 것 없는 인생살이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스러워 기사화 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돈이 많이 생겨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는 제가 외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외로웠습니다. 한국의 도움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한국에선 성장기만 보냈을 뿐, 젊은 시절을 대부분 외국에서 지냈습니다. 필리핀에서 입회한 리꼴레또수도회도 아직 한국에 진출하지 않은 수도회여서 한국을 방문할 기회는 극히 적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에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해서든 혼자 힘으로 살아보려 했습니다. 한국교회 신자 분들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일(좋은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보내주신 성금으로 우물을 파고, 학교를 만들고, 치료약을 구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한국교회 신자분들이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고,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배움을 주고, 아픈 이들에게 약을 주었습니다. 한국교회 신자 분들의 정성이 이곳 시에라리온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살린 것입니다.
비록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마음은 늘 저와 함께 기도해 주시는 분들과 하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저에게 관심을 가져준 모두를 사랑합니다. 하느님 은총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년 3월 시에라리온에서 이상원 신부 올림
◎본지와의 남다른 인연 부산 ‘마리아구호소’
“청하면 도움주는 의인 만나”
가톨릭신문을 통해 신자들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곳이 있다. 마리아수녀회가 운영하는 무의탁자 보호시설 ‘마리아구호소’(원장 김경숙 수녀,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2동)다.
가톨릭신문과 마리아구호소의 인연은 지난 2000년 시작됐다. 그 해 8월 장애인과 구호소직원들의 발 노릇을 하던 차량이 망가져 IMF로 어렵던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졌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보도가 나간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구호소 마당에는 익명의 신자가 보낸 승합차 한 대가 들어섰다. 뿐만 아니라 수 천 만원의 성금이 일주일 새 모였다.
두 번째 만남은 2001년 12월. 100여명에 가까운 행려자들 빨래를 위해서는 가정용세탁기로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기사가 실리자 어김없이 세탁기를 기증하겠다는 곳이 나타났다. 수원교구청에서 세탁기를 보내주고 설치까지 도와줬다. 300만원을 보낸 서울 목동본당 신자를 비롯해 성금도 천여만원 넘게 들어왔다.
2004년 12월 12일 마리아구호소가 보호하고 있던 김수진(젬마)씨의 사연이 보도됐다. 김씨는 하지족부괴사라는 중병으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남은 다리마저 위험했던 상황. 기사를 읽은 신자들의 도움으로 김씨는 의족을 하고 걸을 수 있게 됐다. 또 매일 저녁마다 도움을 주신 분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소식도 보내왔었다.
하지만 현재는 병이 재발해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여서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김씨는 무통주사와 혈관확장약 등 치료비 전액을 신자들이 보내준 성금으로 쓰고 있다.
김경숙 원장수녀는 “승합차가 필요하면 차를 보내주시고 세탁기가 없을 때는 거짓말처럼 누군가가 도움을 주셨다”며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복음말씀처럼 얼굴 한번 본적이 없는 저희들을 믿음 하나로 도와주시니 가톨릭신문과 후원자들은 정녕 의인”이라고 말했다.
◎사랑 나눔은 100년을 향해
‘낙동강 변 기슭에 멋없이 모여 앉은 이 움막집들의 주인은 저 먼 산 너머에서 뻗어오는 구원의 손길만을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나니’(1961년 1월 15일자 1면 ‘카메라초점’ 중)
가톨릭신문은 포탄 껍데기를 종(鐘) 삼아 신앙생활을 하는 나환자촌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에 담았다.
우리 사회 가장 가난한 이웃들이 바라는 사랑의 손길을 모두가 한 마음으로 내밀어주기를 청하고 있다.
100년을 향해 나아가는 가톨릭신문은 지난 80년간 일궈온 사랑 나눔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늘진 곳에서 소외당하는 이웃들의 안타까운 이야기, 각박하고 메마른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는 신앙인들의 아름다운 소식을 가톨릭신문에서 볼 수 있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짐을 증거 하는 언론매체로 거듭날 것이다.
사진설명
▶리꼴레또수도회 이상원 신부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현지 주민 모습. 이상원 신부는 한국교회 신자 분들의 정성이 시에라리온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며 감사 편지를 보내왔다.
▶2000년, 승합차가 없어 도움을 청했던 마리아구호소. 기사가 나간 후 익명의 신자가 승합차를 보내왔다. 마리아구호소 식구들은 매일 마당에 둘러앉아 새 차를 만져보고 문도 열어보며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낙동강 변 움막집을 찍은 1961년 1월 15일자 ‘카메라초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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