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학문 발전·성장에 기여
고 양한모 선생 유지 따라 유족 기금 출연
평신도·성직자 구분없이 학문적 성과 반영
한국교회의 학문 연구 전통은 우리 교회사의 출발과 함께 시작됐다. 신앙선조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스스로 연구해 교회를 세웠고, 신자 교육을 위해 각종 서적들을 저술, 번역하는 등 학문 연구에 힘써왔다.
제삼천년기를 살고 있는 한국교회에 주어진 큰 과제 중 하나는 여전히 그리스도교 학문과 문화의 발전 모색이다.
다원화된 현대사회를 복음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해 보다 발전적인 실천양식 등을 제시하기 위해 학문적 토대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가톨릭 학문을 배우고 익히고, 탐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여건은 여전히 열악한 형편이다.
가톨릭 학문은 신앙과 영성을 더욱 깊이 있고 풍요롭게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사회와 문화 안에 복음적 가치관이 뿌리내리고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교회 학문을 더욱 다지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일선 사목현장에서 마주치는 시급한 현안 해결을 위해서도 근본적인 이론 연구를 병행하는데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여건에서 ‘한국 가톨릭 학술상’은 국내 가톨릭 학문 발전과 진흥에 큰 기여를 해온 것으로 평가받는다.
한국교회 첫 학술상
‘한국 가톨릭 학술상’은 한국 교회의 성장과 성숙을 이끈 우수한 학문적 업적을 우리의 손으로 발굴, 격려하는 한국교회 최초이자 유일한 학술상으로 의미가 깊다.
특히 이 상은 한국교회 대표적인 평신도 신학자인 고(故) 양한모(아우구스티노.1921~1992) 선생이 남긴 유지(遺志)에 따라 유족들이 기금을 기탁함으로써 가톨릭신문사가 제정했다. ‘신도론’을 주창한 양한모 선생은 ‘신도신학’ 등 수많은 저서 집필을 통해 평신도 신학의 이정표를 세우고 신학자 양성에도 큰 관심을 기울인 인물이다.
지난 1997년 ‘양한모 기념 가톨릭학술상’으로 제정된 이 상은 지난 10년간 양한모 선생의 유족들의 특별기금과 가톨릭신문 주관으로 운영돼왔다. 아울러 올해부터는 ‘양한모 기념 가톨릭학술상’에서 한국 가톨릭교회 전체를 상징하는 상으로서 새 모습을 갖춰 ‘한국가톨릭학술상’으로 시상한다.
역대 수상작
그동안 한국교회 제 학문 분야에서 출중한 성과를 이뤘을 뿐 아니라 교회안팎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들이 가톨릭 학술상 수상 대열에 올랐다.
수상작은 평신도와 성직자 등 구분없이 순수하게 학문적 성과만을 기준으로 선정된다.
첫 회 수상의 영광은 가톨릭대 고전라틴어연구소 소장 고(故) 허창덕 신부(1919~1992)가 편찬한 ‘라틴-한글사전’에 돌아갔다.
2회 수상작에는 교의신학과 토착화신학 분야에서 뛰어난 역작으로 평가받는 심상태 몬시뇰 저서 ‘속 2000년대의 한국교회’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됐다. 이어 1784년부터 1997년까지 213년 동안의 전주교구 역사를 총정리한 김진소 신부의 ‘천주교 전주교구사 Ⅰ’와, 최석우 몬시뇰의 23편의 논문으로 구성된 역작 ‘한국교회사의 탐구 Ⅲ’가 각각 3, 4회 상을 받았다.
5회 상을 받은 정의채 몬시뇰의 ‘신학대전’ 제1부(1~6권)는 유럽 사상의 원천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방대한 원전을 충실히 번역함으로써 한국의 신학, 철학계 뿐 아니라 전체 교회문화를 풍성하게 발전시키는데 기여한 저서로 평가받았다.
6회 상은 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와 가톨릭교회의 사회교시,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의 관계를 고찰함으로써 현대사회 발전과 교회의 실천방향을 모색한 김춘호 신부의 저서 ‘가톨릭교회와 사회변혁’에, 7회 상은 그리스도교 철학과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윤리철학 발전에 크게 공헌한 진교훈(토마스 아퀴나스) 교수의 저서 ‘의학적 인간학’에 주어졌다. 플라톤의 고대 철학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제기돼온 신의 존재에 관한 내용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다룬 김현태 신부의 ‘철학과 신의 존재’는 8회 상을, 인간 구원과 복음선포 핵심인 하느님 나라에 대한 입장과 고찰을 총망라한 조규만 주교의 저서 ‘하느님 나라’는 9회 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한국교회사연구소가 무려 13년에 걸쳐 완간, 한국교회 학문과 문화 발전의 성과를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한국가톨릭대사전’ 전 12권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한편 2001년 5회부터는 본상 외에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상도 함께 주어졌다. 박문수(프란치스코) 박사는 정보사회에 대한 신학적 성찰 관련 업적으로 1회 연구상을 수상했다. 이어 한국 근현대 교회사 이해에 기여한 윤선자(도미니카) 박사, 조선시대 순교 역사와 조선왕조의 서양에 대한 대응을 탐구한 원재연(하상 바오로) 박사, 한국전쟁이 교회사에 끼친 영향을 연구한 강인철(세례자 요한) 교수, 한국 신학의 토착화에 매진하고 있는 황종렬(레오) 박사가 각각 젊은 연구자로 인정받았다.
“교회 학술연구에 관심과 지원 필요”
◎학술상 운영위원 조광 교수
“학술연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짓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입니다. 한국교회는 물론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신학을 비롯한 모든 기초학문이 탄탄히 연구될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조광(이냐시오) 교수(고려대)는 “한국가톨릭학술상은 우수한 학술적 업적을 평가하고 독려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해왔다”며 “지금까지와 같이 우수한 학자와 학문적 성과를 지속적으로 발굴하는 것이 가톨릭학술상 운영의 중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특히 조교수는 “가톨릭교회가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매우 크지만 그 기여도는 사회복지 등에 편중돼 있고 학술 분야에서의 기여도는 상대적으로 크게 낮은 편”이라고 지적하고 “학술이 올곧게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늘려야한다”고 밝혔다.
가톨릭학문은 여타 일반 학문에 비해 성과를 인정하는 자리가 부족하고 또한 학자 양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직접적인 실천사목의 방향은 학술연구를 바탕으로 끌어낼 수 있지만 신자들은 물론 사목자들도 학술에 대해 관심이 비교적 낮은 형편이다. 무엇보다 평신도 신학자들이 연구를 지속하기에는 한국 교회 내 연구환경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지적돼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교수는 가톨릭학술상 연구자상 수여는 매우 고무적인 활동이라고 평가하며 “앞으로 연구성과에 대한 격려인 ‘상’의 수여 외에도 지속적인 연구 지원을 위한 장학제도 등도 풍성히 갖춰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각 교구별로 갖춰진 다양한 가톨릭계 대학들도 조금만 관심을 모으면 교회학술 진흥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학자들 스스로도 교회 학술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한국교회 발전은 물론 세계교회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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