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소토코르놀라 신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수도회)
“종교간 대화 바탕으로 아시아 복음화 이뤄야”
아시아는 가장 큰 대륙이지만 하느님께서 ‘구원 역사’로 만드시고자 활동하시는 인류 역사의 이 광대한 장에서 단지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1. 아시아 대륙
아시아의 풍부하고 다양한 민족적 역사적 복잡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7개 이상의 다른 ‘문화권’을 구분해야 한다. 러시아와 시베리아로 이루어진 북아시아, 극동이라 일컬어지는 한국과 일본, 중국과 몽골, 동남아시아의 해상 국가들(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동남아시아의 대륙 국가들(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아대륙(亞大陸), 그리고 지리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큰 차이를 보이는 중동과 근동이다. 이러한 문화적 정치적 민족적 다양성 안에서, 아시아 여러 국가와 민족들의 입장에서 ‘대륙의 자아 정체성’ 의식이 증대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대회 주제에 비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1970년의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s)의 형성이다.
FABC는 37년 동안 지속되어 오면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시아 가톨릭 교회의 자아 정체성 의식에 점점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
아시아 교회의 자아의식을 강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한 또 다른 중요한 사건은 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특별총회였다. 이 총회는 199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로 시작된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1998년 4월 18일부터 5월 14일까지 로마에서 거행됐으며, 그 결론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9년 11월 6일 뉴델리에서 선포한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를 통해 전체 교회에 공식적으로 제시되었다.
2. 아시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아시아 복음화 역사를 살펴보려면, 아시아의 다양한 지역과 문화 안에서 복음화 사건들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가) 과거
그리스도교 태동기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넓게 펼쳐져 있는 아시아 복음화의 오랜 역사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리고 선포하려는 관심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였다. 이 시기 지역 문화와의 대화가 여러 방식으로 있었다. 이미 1세기에 성 토마스가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지역 교회가 탄생하게 된 남인도가 그러한 예다. 또 5∼6세기, 7세기에 페르시아와 시리아에서 선교 수도사들이 도착하면서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복음이 점진적이지만 뿌리 깊게 침투하기 시작한 것도 들 수 있다.
인도에서 로베르트 데 노빌리나 중국의 마테오리치, 베트남과 페르시아의 알렉산더 데 로드, 일본의 알렉산더 발리냐뇨, 티베트의 히폴리투스 데시레디와 같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던 16세기와 17세기는 우리가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대화와 토착화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아시아 복음화 활동의 대부분은 참다운 ‘대화’의 차원에 그리 맞갖은 것은 아니었다. 토속 종교들을 충분히 연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일해야 할 ‘협력자’로 인식하지도 않았다. 이 시기의 아시아 복음화는 단지 ‘복음 선포의 시대’(또는 대화 없는 선포)라고 말할 수 있다.
나) 현재
‘현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시작된 시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지침에 따라 아시아 교회는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 용감하게 나섰다. 그래서 아시아 복음화에서 현 시대를 ‘종교간 대화의 시대’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지역 문화와 아시아 토속 종교와의 대화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부 신학자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성향이 FABC 안에 퍼짐에 따라 다소 배타적인 대화가 강조되고 또한 최소한 현실적으로는 선포 없는 대화를 지향하는 결과를 낳은 것에 대하여 두려움, 나아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 미래
아시아 복음화의 미래는 좀 더 균형 잡힌 대화와 선포로 이뤄져야 한다. 미래는 대화와 선포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3. 아시아 복음화의 미래: 대화와 선포
아시아 여러 지역의 교회에 일종의 ‘신학적 다원주의’가 스며들어 있다. 이에 따르면 모든 종교들은 세상의 구원을 이끈다는 점에서 사실상 어느 정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교회의 공식 가르침에 대한 오해와 무지를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그릇된 신학적 사상은 많은 신자들에게 의심과 무관심을 조장하고 복음을 아시아 복음화의 본질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선포하는 헌신적인 열정과 노력을 손상시킨다.
이 글이 미래를 위한 대화와 선포, 무엇보다도 교회 가르침에 충실한 가톨릭 교리에 입각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균형 잡힌 계획에 심각한 방해가 되는 ‘다원주의 추세’에 대한 반론이 되기를 바란다.
3.1 방법론에 관한 문제
다원주의적 입장이 종종 FABC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나타난다. 일부 신학자의 견해에 불과한 것을 마치 FABC의 (다원주의적) ‘선교 신학’인 것처럼 결론을 내리고 있다. 따라서 FABC 입장에 대한 좀 더 균형 잡힌 해석이 필요하다.
3.2 문제 자체
종교간 대화가 아시아에서 선교하는 길이며 FABC가 아시아 대륙에서 선교하는데 대화를 우선시하는 올바른 선택을 한 것에 기꺼이 동의한다. 그러나 대화 자체에는 이미 자신의 신앙을 겸손하지만 분명하고 진지하게 증언하거나 선포하는 것도 포함된다. ‘다원주의 신학’은 교도권의 공식적 가르침에 따르는 그리스도교 계시의 충실한 이해와 맥을 같이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선포를 제외하면서까지 아시아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대화로써 충분하다는 주장은 가톨릭 신앙의 요점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계시는 다원주의가 아니라 분명히 포괄적인(보편적인) 구원사관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역사에서 강생하신 하느님이시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도록 초대하시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역할을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 신학에는 인종주의와 인간 차별을 야기할 위험이 있다. 다원주의적 접근은 자신의 신앙의 고유함을 제시할 때 ‘절대주의’나 ‘오만’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도록 피하면서 다른 종교에 대하여 가져야 하는 존중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고려는 ‘선험적’(a priori) 입장, 그리고 사실상 문제에 대한 매우 추상적인 접근에서 나오는 것이다. ‘신학적 다원주의’의 접근법은 인간 구원과 연관해 모든 종교가 실제로 평등하다고 ‘선험적으로’ 선언하고 종교간 대화를 나눌 때 자신의 신앙을 ‘선험적으로’ 수정할 것을 일종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는 자신의 신앙을 간직한 채 대화에 나서지 못하도록 막고 방해한다.
참다운 대화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신앙, 곧 자기 종교의 고유성, 더 나아가 배타적 가치에 대한 ‘절대적’ 신념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참다운 대화에서는 이러한 개인적 신념이 있다고 해도 그를 반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존중하고 인정하며 그들의 종교 생활을 더 잘 알아야 할 이유를 자신의 신앙에서 찾는다. 또한 자신의 신앙에 관하여 그들에게 말하고자 하며, 마지막으로 인류의 공동선을 위하여 기꺼이 협력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종교간 대화의 참된 기초는 서로 다른 신앙간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기초하여 그 차이를 이론적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차이가 있더라도 상대방을 사랑하며 함께 일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온전한 대화는, 또는 그 대화가 완전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자극이 필요하다. 아시아 복음화의 미래는 대화와 선포의 균형 잡힌 접근에 달려 있다. ‘아시아 교회’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교 제삼천년기에는 복음이 최초로 선포되었던 아시아 대륙에서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 선포되고 믿게 되리라는 희망을 피력하고 예언하였다. 이러한 예언과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기 위해서 아시아 교회는 사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대화와 선포를 하나로 일치시켜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영원에서부터 바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하시고 실현하고 계시는 구원의 역사에 ‘아시아의 모든 민족’이 온전히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정토론 요지/최준규 신부
저자는 미래 아시아에서 대화와 선포가 균형을 이룬 복음화를 전개할 때 가장 경계할 것은 다원주의 신학의 접근방법이라고 본다. 참다운 복음화는 선포를 기초로 한 대화(dialogue based on proclamation)를 할 때 가능하다는 주장은 정당하게 보인다.
이 논문은 아시아 복음화의 최대 걸림돌은 다원주의 신학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교회의 문제는 다원주의적 신학의 도전에서 비롯한 결과는 결코 아니다. 우선 교회 외적 도전에는 철학적.신학적 차원에서 볼 때 포스트모더니즘, 지식혁명, 무신론적 세속주의가 있고, 제도적.정책적 차원에서 정부의 경제정책, 환경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 외교정책이 있다. 교회는 다른 종교들과 대결하고 경쟁하는데 에너지를 쓰기 보다는 이런 교회 외부환경으로부터 오는 도전에 대응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복음화를 위협하는 진정한 도전은 교회 내부에 있다. 신자들이 지닌 사회정의와 생명존중 의식은 국민일반이나 다른 종교에 비해 별다른 차이를 나타나지 않고, 교회조직의 권위주의 태도도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으며, 청소년, 청년, 아동분야의 사목자와 교사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도 정비되어 있지 않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