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신자 분리하는 공의회 이전 교회관 극복해야
삶으로 주님 증거한 마더 데레사 수녀가 이상적 모델
작은 양떼로 다원적 흐름이라는 거친 강이 가로놓인 아시아 지역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가톨릭신문사가 창간 80주년(4월 1일)을 맞아 3월 23일 오후 2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는 아시아 지역 복음화의 현재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
‘아시아 복음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주제로 마련된 이날 학술대회에는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 세계적 석학들이 대거 참석해 제삼천년기 복음화의 시금석이 될 아시아 지역 복음화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 인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홍콩 등 아시아 8개국 교회 관계자들이 함께 해 아시아 지역 복음화 도정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주한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는 기조강연을 통해 최근 대두되고 있는 종교적·문화적 다원주의 흐름 안에서 복음화라는 과제를 대화와 선포라는 변증법적 긴장 관계 속에서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체릭 대주교는 “복음을 토착화하려는 노력에 있어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복음이 아시아 문화에서 새로운 형태를 취할 수 있도록 서구 문화 또는 그리스-라틴 문화 유산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전체 문화 유산이 아시아 문화와 깊이 있고 서로 풍요로워지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아시아 교회가 대화와 선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전한 교회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첫 발제에 나선 펠릭스 마차도 몬시뇰(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사무차장)은 세계화된 현대 사회의 특징과 아시아 지역의 독특한 상황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아시아 교회의 역할과 복음화 방안을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마차도 몬시뇰은 ‘교회의 복음화 사명: 아시아의 종교적 문화적 다원주의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의 증언’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종교간 대화는 이 세계의 종교적 다원성으로 인해 그 필요성이 인식되는 것이며 교회의 복음화 사명의 일부”라고 역설하고 “아시아인 대다수가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풍요하며 다른 종교적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선교 신학은 아시아인들과의 대화를 통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시아적 얼굴을 성찰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아시아 많은 지역에서 가톨릭교회가 여전히 ‘낯선 것’으로 이해되는 현실을 지적하고 “토착화에 대한 교회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아시아 교회는 이러한 초대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자신의 신앙과 삶의 방식을 증언하면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초대한 마더 데레사 수녀를 아시아 선교사의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했다.
일본에서 30년 넘게 선교사로 활동해오고 있는 프랑코 소토코르놀라 신부(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수도회)는 제2발제에서 ‘신학적 다원주의’가 스며들어 있는 아시아 지역 교회의 현실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종교간 대화에서 범하기 쉬운 문제점들을 지적해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소토코르놀라 신부는 ‘대화와 선포, 일종의 변증법적 균형’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그리스도의 선포를 제외하면서까지 아시아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대화로써 충분하다는 주장은 가톨릭 신앙의 요점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종교간 대화의 참된 기초는 서로 다른 신앙간의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에 기초하여 그 차이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차이가 있더라도 상대방을 사랑하며 함께 일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학술대회의 대미는 토착화 연구에 있어 세계적인 석학인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심상태 몬시뇰이 장식했다. 심몬시뇰은 특히 토착화를 위한 한국 교회의 노력과 현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한국 교회가 보편교회로부터 받고 있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내적 성숙을 위한 노력이 절실함을 강조했다.
심몬시뇰은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한국 교회의 진로’를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신앙과 삶의 괴리가 심각한 한국 교회의 현재를 극복하지 않으면 참담한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한국 교회가 성직자를 일반 신자로부터 엄격히 분리시키는 공의회 이전의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관을 극복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천명한 삼위일체적 친교의 교회를 만들어나갈 때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한국과 아시아에서 교회의 미래는 영성적 삶이 진가를 인정받는 아시아 풍토 안에서 토착화된 교회 창출 여부에 좌우될 것”이라고 밝히고 “그동안 사장되다시피 한 ‘한국교회 200주년기념사목회의 의안’을 다시 검토하면서 여러 현안들을 해결하고 죽음의 문화의 확산으로 대두되는 미래의 도전에 대응하는 ‘제삼천년기 복음화를 위한 제2차 한국교회 사목회의’를 개최할 것”을 제안했다.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교 기조강연 요지
“토착화는 복음선포 토대”
예수님이 당신을 따르던 이들에게 바라신 것은 그들의 마음과 삶의 방식을 바꾸는 회개였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실제로 새로운 사람이 되며, 새로운 인간으로서 자신의 문화를 안에서부터 변화시키고 정화시키고자 나서게 된다.
각 교회는 복음을 자기 문화와 삶의 필수적인 일부로 만들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한다. 이것은 결코 완전하게 성취될 수 없으며 모든 세대에 새롭게 제시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계시된 진리를 그 궁극적 권위로 삼는 교회의 보편적 유산과 전통의 틀 안에서 열린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러나 대화는 선포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토착화는 복음 선포의 한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문제는, 복음을 토착화하려는 노력이 건전한 토대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에서 현재와 미래를 위해 명심해야 할 세 가지 식별 기준을 강조했다.
첫 번째 기준은 “아무리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도 그 근본적 요구들이 동일한 것으로 발견되는” 인간 정신의 보편성이다.
두 번째는 교회가 새로운 문화들과 만날 때 자신이 그리스-라틴 문화와 처음 접촉했을 때 얻은 이전의 유산들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복음이 아시아 문화에서 새로운 형태를 취할 수 있도록 이른바 서구 문화 또는 그리스-라틴 문화 유산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전체 문화 유산이 아시아 문화와 깊이 있고 서로 풍요로워지는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세 번째 기준은 “특정 문화 전통이” 다른 문화 전통들에 대해 대립되어 고립된 채로 “그 차별성 속에 폐쇄된 채로 남아 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참된 증언의 힘을 지니고 있는 방식들을 통해서 말해야 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여기에 따르는 네 가지 자질을 명확성, 온유함(인간애), 확신, 신중함이라고 밝혔다. 그는 명확하고 온유하며 확신을 갖고 신중하게 말한다면 “우리는 현명해지고 스승이 될 것”(Ecclesiam Suam, 83항)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특별히 부름 받은 소명, 곧 진리의 스승이 되는 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아시아 교회가 대화와 선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전한 교회론이 요구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를 친교의 원천이며 친교의 학교로 만드는 것”(교서 ‘새 천년기’(Novo Milennio Ineunte) 43항)이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하는 우리가 당면한 큰 과제라고 일깨웠다. 교황은 또한 실제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친교의 영성”을 장려하고, 개별 그리스도인과 제단의 봉사자나 봉헌생활자, 사목 활동가와 가정을 양성하는 모든 곳에서 그것을 교육의 지도 원리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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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사가 창간 80주년을 맞아 3월 23일 서울 주교좌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는 아시아 지역 복음화의 현재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확인한 자리였다.
서상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