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세상을 향해 ‘물음표(?)’를 던져라
가톨릭신문이 4월 1일로 창간 80주년을 맞는다. 먼저 진심으로 축하와 아울러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시련을 재기의 기회로
시작은 미약하였다. 가톨릭신문 창간 당시 1927년에 우리나라 전체 인구는 약 1990만명, 가톨릭 신자는 겨우 11만명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초창기에는 일제의 강점으로 우리 말의 사용이 자유롭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80%의 높은 문맹률, 제한된 선교의 자유, 어려운 재정 등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난 가톨릭신문은 곧 시련의 시기를 겪어야 했으나 그 때 마다 다시 일어났다. 두 번이나 폐간 또는 정간되었으나 그 때 마다 다시 복간되는 등 강한 생명력을 드러냈다. 한국 전쟁 당시에도 3개월 동안을 제외하고, 한국교회의 유일한 신문으로 계속 간행되었다.
이처럼 가톨릭 신문은 위기를 극복하여 그것을 재기의 기회로 삼을 줄 알았다. 지금인들 어려움이 없겠는가. 앞으로도 시련이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창간 당시의 그 용기와 사명감을 가지고 재기하여 발전을 계속할 것이다.
가톨릭신문의 교회사적 의의와 사료적 가치
지난 80년 동안의 가톨릭신문의 기록 자체가 한국교회의 근대 및 현대사의 자료이다. 가톨릭신문은 80년간 한국 가톨릭 교회와 함께, 나아가서는 한국민족과도 고락을 같이 하면서 그 역사를 꾸준히 기록해 왔다. 그것은 어느덧 한국교회사 연구에 빼 놓을 수 없는 더 없이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그 귀중한 자료를 사장하지 않고 교회사 연구가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가톨릭신문사는 1984년 한국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1982년부터 편집에 착수하여 4년 후, 창간호부터 1986년까지를 영인본으로 간행하였다. 80주년의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그 때부터 오늘까지 20년간의 가톨릭 신문을 영인본으로 간행하여 교회사 연구가들에게 널리 보급해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교회와 매스미디어의 관계 : 1963년의 공의회 교령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언론 매체가 보도, 교육, 여론형성 기능을 통해 선교와 사목에 기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Inter Mirifica)은 “모든 인간은 알 권리 즉 정보의 권리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권리의 올바른 행사는 커뮤니케이션이 그 내용에서 언제나 진실하여야 하고 정의와 사랑을 지키며 완전하여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그 방법과 관련하여 커뮤니케이션은 공정하고 적절하여야 한다. 또한 교회 언론은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고 전파하는데도 앞장서야 한다.
‘?’(물음표)를 던져야 하는 가톨릭신문
가톨릭신문은 그동안 지면을 통해 선교와 복음화 문제를 많이 다루었다. 동시에 한국교회의 양적 팽창에 위기감을 표시하며, 질적인 성장을 요청했다. 쉬는 신자 증가, 신자 재교육 부재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한국교회 복음화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또 교육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평신도와 청년에 대한 관심을 많이 보인 것 또한 긍정적인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지난해 한국교회가 지낸 김대건 신부 순교 160주년 기념 행사를 예로 들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난해 160주년과 관련, 많은 행사를 치렀다. 하지만 남은 것이 무엇인가.
지난해 순교 160주년 행사는 이런 의미에서 미흡했다고 보아야 한다. 생명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160주년의 의미가 부족하다. 정작 영원한 생명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 순교 영성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 또한 또 다른 의미의 생명 경시가 아닐까.
또 지난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김대건 신부의 순교일인 9월 16일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주교회의로부터 부정적 답변을 받았다. 주교회의는 신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과거 신앙선조들은 순교자들의 순교일을 기념하고 기억했지, 순교한 연도를 중요시하지 않았다. 그만큼 순교 그 자체에 대해 깊은 신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순교자들에게 죽음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고 죽음을 넘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순교 성인의 축일은 이점에서 천상생명으로 새로 태어난 것을 경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김대건 신부의 축일은 순교일인 9월 16일로 되어야 한다. 성인 공경은 단순히 성인 한 두 분 더 만들어 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성인 공경은 순교자들의 삶을 ‘지금 여기서’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보도되지 않는다. 누구든지 알권리가 있고, 매스미디어는 당연히 보도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가톨릭신문은 이러한 교회의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보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교회가 잘못된 모습을 보이면 과감히‘?’(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이 기능을 상실하면 가톨릭신문은 소금의 역할을 잃는 것이다.
100주년을 향하여
교회는 그동안 질보다는 양, 내적 성숙 보다는 외양에 많이 치우쳐 왔다.
말 그대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내빈하면서 까지 외화를 즐기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각종 통계를 보면 외적성장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징후가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톨릭신문이 교회의 여론 형성에 앞장서야 한다. 가톨릭신문을 보면 보도의 빈곤을 느낀다. 신자들이 관심을 갖고 읽을 거리가 적다는 얘기다. 이제는 종전의 틀에서 벗어나 보도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한국을 넘어 교황과 세계 교회로 시각을 넓힐 필요가 있다.
사실 가톨릭신문 80주년은 큰 의미가 없다. 100주년을 바라보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말했듯이 시대의 징표를 민감하게 감지해야 한다. 그러한 시대의 징표중 하나로 손 꼽을 수 있는 것은 현대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정과 가족의 환경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화 되면서 농경 사회의 대가족 중심에서 도시 중심의 핵가족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핵가족이 되고 거기에다 맞벌이 부부가 될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구전(口傳)으로, 표양으로 전해지던 교회 가르침은 단절되고 만다. 이를 극복하는데 앞으로 가톨릭신문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톨릭신문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가톨릭신문의 정체성은 평신도와 청년에서 찾을 수 있다. 가톨릭신문은 평신도와 청년에 의해 태어났고, 또 그들의 힘에 기대어 성장한 신문이다. 이는 교회가 지향하는 바이다. 교회의 미래는 청년들에 달려있고, 또 앞으로 교회는 평신도들이 이끌어 가야 한다는 점에서 청년과 평신도는 가톨릭신문의 미래이자 곧 한국교회의 미래다. 그 청년과 평신도의 힘이 앞으로 다가올 가톨릭신문 100주년을 풍요롭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교회에선 사제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사제 증가는 긍정적 면도 많지만 부정적 면도 없지 않다. 교권주의, 권위주의로 흐르다 보니 평신도들이 할 일이 적어진 것이다. 가톨릭신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교회는 당초 평신도들에 의해 도입되고 평신도들이 주축이 된 교회였다.
가톨릭신문은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보도의 다양화, 풍부한 교육 기능을 통해 여론 형성에 앞장서야 한다.
개혁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가톨릭신문이 하지 않으면 누가 교회에 여론 형성을 하겠는가. 여기서 머뭇거리면 우리라고 유럽교회처럼 성당이 박물관으로 변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 쇄신되지 않으면 후퇴하는 것이다.
최석우 몬시뇰(한국교회사연구소 명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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