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겸손을 배웁니다”
“샛바람 많이 불것다.”
창문 밖을 내다보던 어부 윤부환(안셀모.50.대구대교구 구룡포본당)씨가 한숨을 내쉰다. 샛바람은 찬 북풍이다. 바다에는 바람을 막아줄 산이나 건물이 없다. 그래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맞는 바람은 뼈 속까지 시리다. 고생하며 바다에 나갈 필요가 없다. 나간다고 해도, 물고기를 건져 올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상기온 등으로 그물의 무게가 예년 같지 않다. 벌써 바다에 나가지 않은지 3일 째. 그물 가득히 고기를 건져 올린 기억이 가마득하다.
“이젠 지치네요….”
‘참복어’가 애물단지다. 요즘이 참복어 철이지만 일본이 독도 때문에 속이 틀어졌는지, 한국산 참복어를 수입하지 않는다. 내수판매도 덩달아 부진하다. 어부들은 속이 탄다. 참복어가 지난해 가격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아내 김원조(마리아고레띠.50)씨와 함께 새벽 3시에 출항, 10마일 밖 망망대해에서 물고기와 씨름하며 오후 4시까지 건져 올려도 손에는 몇 푼 쥐어지지 않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고된 작업을 수평선 위로 여명이 밝아올 무렵까지 쉴 새 없이 반복해 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철이 돌아올 때 마다 효자였던, 문어 통발 잡이와 오징어 잡이도 예년 같지 않다. 그래도 주저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아내와 함께 선착장에 나가 그물을 손질했다.
“고기가 많이 잡혀야 신바람이 나는데 요즘은 거의 잡히지 않아요. 지구 온난화 현상이라나 뭐라나…. 그래도 할 수 없죠. 하느님께서 주신 직업인데. 열심히 그물을 던져야지요.”
오랫동안 칼질을 해 왔음직한 손놀림이 경지에 다다른 듯 빠르다. 삶을 위해 몰두하는 모습이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비쳐진다.
“우리는 그저 물만 바라보고 삽니다.”
어부 만큼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이들이 또 있을까. 어부는 바다와 호흡을 같이한다.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윤씨는 한 발짝도 바다로 나가지 못한다. 욕심내고 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기다려야 한다.
이 때문에 윤씨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날씨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바다 사람은 ‘무엇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원하더라도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살아갑니다.”
1991년, 꿈을 안고 바다로 왔다. 대우와 현대중공업에서 22년 넘게 일했던 윤씨는 퇴직과 동시에 가장 먼저 바다를 찾았다. 윤씨에게 바다는 희망의 장소였다. 그런 희망의 기억은 처음 배를 탓을 당시 맞았던 일출과 함께 생생하게 남아있다.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배 위에서 맞는 일출은 장관이었습니다. 육지에선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지요. 태양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태양이 가슴으로 안기는 그 심정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를 겁니다.”
일출의 장관을 가슴에 안고, 바닷물에 흠뻑 젖어 생활한지 벌써 16년이 흘렀다. 각오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 만큼은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아찔했던 기억도, 힘들었던 일도 많았다. 수년 전, 윤씨의 배가 조업 중이던 다른 배에 부딪히면서 조난을 당했다. 조금만 구조 시간이 늦었더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IMF 당시에는 파산 위기까지 갔다가 간신히 재기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아들이 백내장 때문에 수술을 세 차례나 받는 고통도 함께 겪었다.
“이제 저도 어부가 다 됐습니다.” 16년 고통은 윤씨를 어부로 만들었다. 천번 만번 그물을 거친 손가락은 굵고 억세졌다. 초기에는 조업에 나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이제는 ‘감’으로 고기가 많이 있는 곳을 집어 낼 줄도 안다. 조업시에는 늘 다른 배의 이동을 주의하고, 특히 기상 악화시에는 섣불리 바다에 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지혜도 몸으로 익혔다. “바다는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칩니다.” 윤씨가 스스로의 흐트러진 마음을 잡으려는 듯, 그물을 털고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온 윤씨 부부가 술을 내왔다. 작은 반상에 소주에 김치 한 조각이 전부였다. “어부로 살다 보니 자연스레 신앙과 멀어지더라구요. 마음속에만 안고 있는 신앙이 신앙인가요. 성당에도 가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도 하고 그래야 신앙이지요.”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큰 소리를 내며 동료 어부와 다툼도 해야 한다. 험한 어부 생활을 하며 기(氣) 싸움에 밀릴 수는 없는 일. 죄짓지 않고 살기가 그만큼 힘들다.
“한 두 번 죄를 짓다보니, 나 같은 놈이 성당에 어떻게 나가겠나는 생각이 들어 미사를 거르게 됐습니다. 또 나가고 싶어도 주일에 조업할 때도 많구요. 우리는 물고기들의 이동에 따라 움직여야 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묵주기도로 신앙생활을 대신 할 수 밖에요.” 윤씨는 늘어나는 빚도 고민이라고 했다. “마음의 짐이 좀 덜어져야 성당에도 나갈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한다.
아내가 남편의 말에 손사래를 친다. “아니예요. 그나마 이렇게라도 살 수 있도록 해 주시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요. 조금씩이나마 빚을 갚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해요. 막내 아들도 이번에 대학을 졸업했잖아요. 비록 성당에는 자주 못나가더라도 열심히 묵주기도 하다보면 앞으로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길거예요.”
소망이 있느냐는 질문에 윤씨는 대답이 없다. 그저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 4)는 예수님 말씀 따라 바다로 나갈 뿐이다.
오늘도 끊임없이 배에 오르고, 그물을 내리고, 고기를 잡는다. 자연의 허락 속에서 영원히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것이 그가 침묵으로 말하는 소망일지도 모른다. 윤씨는 ‘물’과 함께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했다.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바다가 주는 대로 받기로 했다.
술자리에 마을 신자들이 합세했다. 한 명 두 명 모이던 것이 6명으로 늘었다. 어부들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사진설명
▶올해로 어부생활 16년째인 윤부환씨. 생명까지 담보한 갖은 고난 끝에 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는 윤씨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연이 주는대로 받으며 '물'과 함께 열심히 살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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