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평양교구 80년
①1937년 신의주성당에서 거행된 장례예식 모습이다.
②1931년 완공된 서포 메리놀센터. 당시 평양지목구청으로서 지목구 총본산이자 메리놀 외방전교회 본부 역할을 했다. 1942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에 의해 메리놀회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된 후 1942년부터 1950년까지 최초의 한국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총원으로 사용됐다. 수녀회는 한국 전쟁 이후 본원을 부산 대청동으로 옮기기도 했다.
③메리놀 외방선교회 초대 총장을 맡고 있던 월시(J.A. Walsh) 주교가 1931년 평안남도 은산군 지역 순방길에 나섰다. 월시 주교는 앞서 1916년경에도 한국 선교에 뜻을 품고 직접 내한해 현지 사정을 돌아본 바 있다.
월시 주교 왼쪽에는 크레이그 기 신부가, 오른편에는 당시 제2대 평양지목구장이었던 요안 에드워드 모리스(1889∼1987, 睦) 몬시뇰이 함께 하고 있다. 신사참배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던 목 몬시뇰은 재임 6년만에 지목구장을 사임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그는 1959년 7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선교사로 다시 한국에 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지도, 강화, 답동본당 보좌를 지내기도 했다. 배에 차를 실어 강을 건너는 모습이 이채롭다.
④캐롤 안 몬시뇰과 아이들. 안주지방 아이들이 교리를 받는 모습이다.
◎평양교구 약사
▲1862년 : 황해도 출신 이덕보가 영세 후 평안도 지역에서 선교
▲1896년 봄 : 평양본당 설립(외성 소재). 초대 주임으로 르 장드르 신부
▲1900년 봄 : 평양본당에 고딕 양식 성당 건축
▲1922년 11월 : 교황청, 평안도 포교권을 메리놀 외방전교회에 위임
▲1927년 3월 17일 : 서울대목구에서 평양지목구 분리 설정, 초대 지목구장 패트릭 번 몬시뇰
▲1930년 10월 : 평양지목구 소속 최초의 한국인 사제 양기섭 신부 수품
▲1932년 6월 : 평양에서 최초 한국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녀회 창립
▲1939년 7월 : 평양지목구, 대목구 승격
▲1942년 6월 : 일본에 의해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 추방됨
▲1943년 3월 : 홍용호 신부, 제6대 평양대목구장 임명
▲1949년 5월 : 홍용호 주교 납치
▲1950년 6월 27일 : 한국전쟁 발발 후 비현본당 김동철 신부를 끝으로 모든 교구 사제들 피랍
▲1950년 11월 : 제7대 평양대목구장 서리에 조지 캐롤 신부 임명
▲1962년 3월 : 한국 천주교회 교계제도 설정으로 평양교구로 승격
▲1975년 6월 :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 제8대 평양교구장 서리 임명
▲1981년 1월 : ‘천주교 평양교구사’ 간행
▲1984년 5월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평양교구 출신 우세영, 유정률 순교자 시성
▲1998년 6월 :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제9대 평양교구장 서리 겸임
▲2004년 6월 : 황인국 몬시뇰 평양교구장 대리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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