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정직’‘선’ 향해 달린다
‘젊은이들이 동양의 아름다운 전통을 점차 잃어가고, 물질과 향락이라는 말초적인 사상에 너무 쉽게 빠져들고 있다.’‘젊은이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교회 주교들이 올해 신년 사목교서에서 공통적으로 표현한 고민이다. 필리핀도 예외가 아니다. 청소년들이 마약에 노출돼 있으며, 가난은 대물림되고 빈부격차도 심화되고 있다. 가정이 없어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청소년은 늘고 있으며, 직업을 구하지 못해 많은 청년들이 좌절하고 있다. 그 험한 파고 속에서 방향타를 꼭 움켜쥐고 땀 흘리는 수도회를 필리핀에서 만났다.
필리핀서 살레시오회는 ‘보석’
필리핀 교회를 이야기 할 때 살레시오회를 빠트리면 수박 겉핥기식이 될 수 있다. 필리핀 교회 관계자들은 “살레시오회는 필리핀에 있어서 보석과도 같은 존재”라고 까지 말한다. 살레시오회가 필리핀 교회 안에서 실질적으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또 헌신적으로 희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살레시오회는 필리핀에서 예수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도회다.
살레시안(성 돈보스코의 정신을 따르는 살레시오회 소속 회원을 일컫는 말) 주교가 4명에 이른다. 각 본당과 수도회, 복지시설에서 활동하는 회원도 4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은 인종과 국적, 피부색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필리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늘 젊은이에게 다가갔던 돈보스코 성인처럼 젊은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배움에 소외된 젊은이에 ‘희망’
마닐라 중심부에 위치한 돈보스코 센터. 500여 명의 학생들이 무료로 기숙 혹은 통학하며 기술을 배우고 있다. 교실마다 배움의 열기로 가득했다. 에어컨도 지칠 법한 무더위. 하지만 젊은이들의 땀 배인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대부분 배움의 기회에서 소외된 청소년들. 하지만 살레시오회가 무료로 제공하는 전기, 목공, 컴퓨터 등 취업 실용 기술을 배우며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전기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 마르가리타(18) 양은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살레시오회의 도움으로 기술을 배우고 있다”며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전기기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필리핀-살레시오회는 ‘상생 관계’
어떤 면에서 필리핀은 살레시오회에게 ‘황금어장’이다.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젊은이들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그만큼 해야할 일도 많다.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알려야 하고, 방황하는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어야 한다. 또 배움의 기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의 터전, 잘못된 길로 들어선 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교황청 설립 필리핀 살레시오 신학대학교 신학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원철 부제는 “필리핀 살레시안을 비롯한 모든 살레시안들은 “‘두 가지’를 위해 뛴다”고 했다. 하나는 모든 젊은이들(소외된 젊은이들 포함)을 ‘정직한 시민’이 되도록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젊은이들을 ‘선한 신자’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필리핀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뜨거운 더위 속에서도 오직 ‘희망’을 위해 돈보스코 센터에서 땀 흘리던 젊은이들 모습이 떠올랐다. 신방가비의 은총 속에서 행복해 하던 도시 빈민들, 그리고 길거리 청소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록키 신부, 마약 중독자 치료 센터에서 재기를 꿈꾸던 젊은이들….
그들 옆에는 늘 살레시안들이 있었다.
▨ 필리핀 살레시오회 현황
1958년 중국관구 소속으로 필리핀에 진출한 살레시오회는 1963년 공식 관구로 승격했다. 현재 북관구와 남관구로 나뉘어 있는데, 북관구에는 22개 공동체가, 남관구에는 13개 공동체가 있다. 이들은 청소년센터, 직업 재활훈련센터, 학교, 길거리 청소년을 위한 보호시설 등 수 십여 곳의 시설을 운영하며 필리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제공하고 있다.
살레시안 꿈은 ‘젊은이 위한 봉사’
■[인터뷰] 살레시오 신학대학교 신학원 다닐로 토래스 원장 신부
“필리핀의 모든 젊은이들이 ‘정직한 시민’ 그리고 ‘착한 신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교황청 설립 필리핀 살레시오 신학대학교 신학원 다닐로 토래스(Danilo Torres) 원장 신부는 “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살레시안은 같은 꿈을 꾼다”고 말했다. 그 꿈은 바로 ‘젊은이들을 위한 봉사’다.
한국, 베트남, 인도 등 50여 명의 살레시오회 회원과 함께 생활하는 다닐로 신부는 또 “그리스도는 청년들을 끊임없이 초대하고 계신다”며 “청년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모든 살레시안들이 한마음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닐로 신부는 “나는 젊다”고 말했다. 살레시안은 어디에서든, 언제든지 젊은이를 만나기에 저절로 젊어진다는 것이다.
“심리적, 물질적, 사회적으로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살레시오회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보석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를 더욱 갈고 닦아야 하겠지요.”
“40년간 필리핀 사제 양성에 헌신”
■[인터뷰] 미얀마 출신 살레시오회 알톤 신부
마닐라에서 우연히 만난 알톤(Alton Fernandez) 신부. 피부색이 보통 필리핀인들과는 달랐다.
“미얀마 사람입니다.”
‘미얀마에서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의자를 당겨 바짝 다가 앉아 살아온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아버지가 학자인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알톤 신부는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자랐다. 하지만 1945년 8월 14일, 일본군이 항복하기 하루 전이었다. 아버지가 일본군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
이튿날 영국군이 미얀마에 들어왔고, 가족을 잃은 알톤 신부는 피난민 캠프에 수용됐는데 여기서 살레시오회 신부를 만났다.
이후 알톤 신부는 사제직을 지망했고 인도로 유학, 1956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미얀마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알톤 신부는 1967년 필리핀으로 와 정착했다.
이후 알톤 신부는 필리핀 교회 발전의 중심에 선다. 필리핀 곳곳에 공동체와 학교를 세웠고 피정을 지도하고 학생을 가르쳤다. 현재 필리핀 교회를 이끄는 주교와 성직자 중 상당수가 알톤 신부가 직접 청소년 시기부터 가르치고 양성한 이들이다. 필리핀 교회와 살레시오회의 대부인 셈이다.
“고향? 내 고향은 이제 하느님이야. 지금까지 날 이끌어준 은총에 감사하며, 이곳에서 하느님을 위해 남은 생 다 바쳐야 해.”
살레시오회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해 달라고 했다. “돈보스코처럼 살아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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