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 선생의 세례명 아시나요”
교회의 기억에서 잊혀져가는 한 할머니가 있다.
김인순(루갈다.73.경북 포항) 할머니는 20년 전만해도 유명한 교회 인사였다. 1980년대, 서울 절두산 순교기념관과 가톨릭대(서울), 부산 순교자 기념관, 대구 관덕정 순교기념관 등에 총 3000여 점의 유물을 기증했던 교회의 은인. 한 때 부산에 용인과 같은 대규모 민속촌을 건립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기도 한 김 할머니는 그래서 골동품 수집계의 큰 손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 이문희 대주교, 이갑수 주교 등과 기념 촬영한 사진에서도 당시의 화려함을 엿볼 수 있다.
그랬던 그가 경북 포항의 한 허름한 15평 주공 아파트에서 외롭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찾아오는 이들도 없다. 문 밖을 나서는 일도 거의 없다. 외아들은 1997년 IMF 당시 사업에 실패한 이후 연락이 닿지 않고 있고, 할머니 자신은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지원금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 간호사로 일했던 할머니는 돈 많은 호사가도, 돈이 되는 물건을 사서 매도차익을 보는 전문상인도 아니었다. 그저 사라져 가는 옛것을 지키기 위해 박봉을 쪼개 골동품을 수집한 것. 그렇게 모은 유물이 면암 최익현의 일성록, 퇴계 이황 문집 15권, 율곡 이이 문집 12권, 조선시대 재판기록 등 고서적과 고가구류, 자기, 청동화로 등 수천여 점에 달했다. 당연히 재산을 모을 수 없었다.
김할머니는 “생활이 어려워 질 때 마다 물건을 팔고 싶은 유혹이 들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물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 유물을 교회와 사회에 기증했다.
할머니는 이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할머니는 “요즘 세상 사람과 나눌 일이 새로 생겼다”고 말했다. 많은 신자들이 안익태 선생이 ‘리카르도’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 “1962년 한국을 방문해 애국가를 지휘할 당시, 성호를 긋던 선생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가톨릭 신앙이 애국가의 혼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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