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몸으로 가수 데뷔
노래보다 가정이 먼저
‘인간은 패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했을 때 끝나는 것’.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며 뛰어다녔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지금도 끝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의미에서든 ‘성공’이란 말은 이 삶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나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하다.
당시 두사람이 누워도 빠듯한 단칸방에서 고만고만한 조카들 세명과 엄마와 발디딜 틈도 없이 부대끼며 자는 잠자리였지만, 그래도 그때가 제일 행복했던 날이기도 했다. 또한 그때의 어려움은 무명가수 시절에 나를 절제하고 인내할 줄 아는 여자로 만들어준 디딤돌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패배와 포기라는 말이 같은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절망을 첫 앨범을 발표한 후에 알게 됐다.
나는 음반을 내기에 앞서 서울 퇴계로에 위치한 지금의 대한극장 무대에서 처음 데뷔식을 치렀다. 윤항기, 윤복희, 남진씨 등과 함께 서는 ‘춤추는 함대’ 뮤지컬 공연이었다. 그때 맡은 역할은 우연히도 신인가수역이었다.
이후 밤무대 무명가수로 활동하던 나는 화려한 인기를 누리는 대선배님들의 배려로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하게 됐다. 데뷔곡 ‘너무합니다’가 실린 앨범이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앨범은 제대로 빛도 보지 못하고 묻혀버리고 말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끈기와 오기밖에 없었던 나는 때로는 꿈도 절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이후 노래를 포기한 채 양가 집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됐다. 하숙집 아줌마, 파출부, 골동품 등을 팔고 사는 중계상, 빵배달 아줌마 등으로 온갖 일에 매여 살았다. 그때 나 스스로도 어머니를 닮아 강인한 생활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가 남산만한 젊은 임산부가 낑낑대며 이집저집 빵 배달을 하자 동네 여자분들은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도움을 주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유선방송에서부터 바람을 타기 시작한 내 노래가 대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불려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됐고, 얼굴도 모른 채 ‘너무합니다’라는 곡이 세상에 알려지자 내 음반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제의가 여기저기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음반 제작 제의에 결혼해서 아기도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제작자들은 알고 있다면서 처녀라고 속이면 된다고 했다. 나는 나중에 밝혀지면 어떡하냐고 반문했지만 당시 매니저는 그때 일은 그때가서 하자며 노래나 잘하자고 제의했다. 결국 ‘멍에’라는 앨범이 만들어졌다. 만삭의 몸으로 감기까지 앓는 최악의 컨디션에서 녹음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곡은 미처 마음의 준비나 정리할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각 방송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인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신문사 여기저기서 내 사생활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고 나는 결단을 내려야했다. 모든 신문의 인터뷰를 거절한 채 KBS에서 5주째 골든컵을 받던 날, 나는 진실한 것 만큼 훌륭한 무기는 없다라는 비장한 각오로 생방송이었던 그 프로에 딸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지금이야 아이를 낳고 활동하는 가수도 많지만, 그때만 해도 아기 엄마가, 그것도 신인이 노래만으로 대중에게 나선다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날 난 참 많이도 울었다. 자칫하면 공튼탑이 일순간 무너지는 아픔을 당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돼 버렸지만 노래보다 가정을 먼저 택해야 했던 기막힌 나의 현실이 너무 서글퍼서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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