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이들 눈물 닦으며 살고 싶어요”
하반신 마비 불구 평생 한센병자촌서 봉사
전통 생활용품 모아 꽃동네에 박물관 설립
73년 평생을 한센병자들의 등불이 되어준 이가 있다.
인생은 못 먹어도 고(苦)요, 먹어도 고(苦)라고 했던가. 나환우와 고락을 함께 했던 서순원(체칠리아.73)씨의 삶은 마치 묵주기도를 연상시킨다. 한단, 한단 엮어가는 그의 삶 속에 한센병자들과의 환희와 고통, 영광이 모두 녹아있기 때문이다.
1950년. 격동의 6.25전쟁 속에서 그는 16살이라는 어린 몸으로 가족과 함께 경북 왜관에서 밀양으로 피난을 시작했다. 피난민들과 웅크려 자던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하룻밤 사이.
“소아마비에 감염됐지. 열이 42도씩 올라 보지도 말하지도 못했어. 밤낮 죽어있는 날 안고 어머니는 신부님을 불러와 병자성사를 봉헌하고 마지막 영성체까지 모셨지.”
다행히 기적이 일어났다. 죽음과 사흘을 사투한 뒤 깨어나 보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한달을 굶었다. 물 반공기로 하루를 연명했다. 하반신 마비와 함께 온 내장마비는 그에게 대소변을 가릴 힘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함께 있어주었던 것은 어머니. 포탄 소리 속에서도 묵주를 놓지 않았던 어머니 때문에 그는 다시 ‘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한 평생 나보다 외로운 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한센병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몹쓸병’이라며 돌팔매질을 당했던 나환우들이 자신보다 외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59년.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파견된 CIRD(저개발국 원조단체) 팀과 함께 그는 전국 각지에 있는 한센병자촌에서 봉사했다. 처음에는 거적을 깔고 배밀이로 기다가 심하게 절며 걷기까지 그는 33km 거리의 한센병자촌을 7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았다. 소아마비에 걸린 다리로 그곳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꼬박 4시간.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네 몸도 간수 못하는 것이 무슨 봉사냐’라며 침 뱉었던 나환자들도 나중에는 전부 친구가 되었지.”
65년. 그는 CIRD팀과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현지 한센병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계속했다. 지금의 독일인 남편을 만나 세자녀를 낳는 행복도 누렸다. 말을 듣지 않는 다리 때문에 자녀들을 보자기에 싸 입에 물고 다니면서도 그는 나환우를 돌보는 일을 계속했다.
42년간의 외국생활 동안 한센병자를 돌보며 그가 해온 일이 또 하나 있다. 프랑스로 갈 때 조그마한 조롱박을 주며 ‘네 조상과 네 나라를 잊지 말라’고 말해 준 어머니의 신념을 따라 해외에 떠도는 한국 물건들을 수집하는 일이다. 한센병자들과의 추억어린 물건은 물론 전통 주방기구와 같은 생활용품까지 그가 모은 수집품들은 현재 3000여점에 이른다.
그는 최근 치료약이 개발된 한센병자들보다 장애우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마음을 담아 하반신 마비인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충북 음성군 꽃동네 가족을 위해 수집품들을 기증했다. 기증품들을 전시하는 ‘서순원 박물관’은 4월 8일 개관식을 가졌다.
“가톨릭 신자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너무 많아. 조상의 얼을 살리고, 물건도 아껴쓰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게 내 삶을 맡기라는 거야.”
※문의 043-879-0447 서순원 박물관
사진설명
하반신에도 불구하고 73년 평생을 나환우들의 등불이 되어준 서순원씨는 4월 8일 그동안 모은 수집품으로 꽃동네에 ‘서순원 박물관’을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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