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기쁨? 함께 살아가는 이웃과 누려야”
이웃과 달걀 떡 나누기 5년 째
“처음에는 공장서 퇴짜 맞기도
이제는 웃으며 맞는 이웃 많아”
“떡이 잘 못 왔네. 백설기가 아니고 절편이 왔어요.”
“그러게요. 큰일이네. 빨리 접시 준비해야겠어요. 비닐장갑 끼고 조금씩 나눠드리는 수밖에 없겠네. 서두릅시다.”
부활대축일을 하루 앞둔 4월 7일 서울 독산1동성당 만남의 방. 애초에 주문한 떡이 잘 못 배달돼 본당 총구역 임원들의 손놀림이 더 바빠졌다.
부활달걀 350개는 14개 구역 신자들이 정성껏 포장해 놨는데 떡이 문제를 일으킨 것. 서둘러 주방에서 접시를 가져와 떡을 담을 준비를 마친 임원들이 성당 문을 나선다. 5년 전부터 매년 부활대축일 즈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서울 독산1동본당(주임 주수욱 신부)은 2003년부터 매년 부활절이면 신자 수보다 400여개 많은 부활달걀을 준비한다. 이웃 몫이다. 그런데 이웃이 여느 본당과 다르다.
성당 주변은 온통 공장이다. 기계 주물과 금형작업을 하는 공장, 냉장창고가 빽빽이 자리하고 있고 영업용 택시 차고도 있다. 밤늦게까지 쇠 깎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당연히 본당 신자들이 매번 마주치는 이웃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된 일로 땀 흘리는 근로자들이다. 험한 일에 종사하는 힘겨운 이웃과 부활을 함께 하자는 의미로 생각한 것이 달걀이었다.
5년 전 처음 달걀을 전하러 공장에 들어섰을 때는 퇴짜도 많이 맞았다. 기계를 다루는 위험한 일에 신경이 날카로운 이들은 난데없이 공장에 쳐 들어온(?) 이웃을 웃으며 반기지 않았다. 귀찮다고 인상 쓰고 위험하다며 쫓아냈다.
그래도 매년 찾았다. 변화가 생겼다. 해가 갈수록 웃으며 맞이하는 이웃이 늘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무슨 날이에요? 이렇게 달걀을 주시고.”
“부활절이잖아. 성당이나 교회 신자들한테 부활절은 설 같은 명절이야.”
‘좀 아는’ 이가 떡을 한 입 물고 설명을 시작한다. 달걀을 한 아름 손에 든 한 근로자는 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도 줘야 한다며 더 달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
구역 임원들이 이날 찾은 공장과 사무실은 어림잡아 20여 곳. 이제 얼굴이 익은 사람들은 매년 이렇게 갖다 주셔서 고맙기도 하고 답례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지 몰라 받기만 한다며 감사를 표한다.
본당 총구역장 임복남(체칠리아)씨는 “부활의 기쁨은 우리 신자 뿐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도 함께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담이 없으셨던 예수님처럼 이런 작은 나눔이 지역 공동체를 예수님 보시기 좋은 공동체로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달걀과 떡 박스가 어느새 비었다. 부활을 맞이하는 본당공동체의 마음도 빈 박스처럼 한결 가벼워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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