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과 함께 사는 세상 꿈꾸며
서울 빈민사목위, 지역민과 긴밀한 유대 형성
28일 ‘복음적인 가난’ 주제로 설명회·기념식
주거빈민이 교회사목의 중심으로 자리잡아야
80년대 철거민들의 애환을 덜어주기 위해 ‘도시빈민사목위원회’로 출발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처음 강제철거를 막는 일에 주력했던 일련의 작업들은 평화의 집, 솔샘일터 등과 같은 현장 공동체 체제로 접어들며 다양한 탈태를 거듭했다.
이제 빈민사목위원회는 또 하나의 갈림길에 와 있다. 시대가 변해가며 가난도 진화하듯 새로운 시각으로 가난을 바라보는 일이다.
위원회 20주년을 맞아 우리 시대의 가난을 성찰하고 빈민사목의 미래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자 한다. 우리 시대 ‘또다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받아낼 해결책은 무엇일까.
복잡해져버린 가난의 범위
97년 IMF. 잊혀진지 오래지만 아직도 우리는 IMF시대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높은 금리로 시작된 빈부의 간극은 커져만 가고 상류층에서 밑바닥으로 급하강되는 새로운 형태의 빈민마저 생겨난다. 구조조정으로 인해 밖으로 밀려난 실직자, 청년 구직자, 길거리에 나앉은 노숙자 등은 물론 결혼이민자, 새터민은 과거 철거빈민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문제는 시대가 변했음에도 우리의 인식 속에 ‘빈민’이란 단어가 80년대 그때 그 사람 정도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거지 옷을 입고 동냥을 하고, 강제 철거로 인해 눈물 흘리는 자들만이 빈민이라는 인식은 이제 구태의연하다.
21세기 빈민은 우리 사회 안에 평범한 모습으로 똑같이 자리한다. 단지 가려져 있을 뿐이다.
빈민사목위원회의 고민도 같은 맥락에 있다. 철거민들을 위해 생겨나 주거빈민을 위주로 사목해온 위원회가 어떻게 광범위해진 빈민의 개념을 끌어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위원장 이강서 신부는 “빈민의 범위를 재정의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앞으로의 숙제”라며 “하지만 교회의 세포인 가정, 즉 주거권을 지켜내기 위해 주거빈민이 사목의 중심이 돼야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거 빈민에 대한 대안도 복잡해져만 간다. 과거 단순 철거 반대에서 주거권 사수라는 거시적 사안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는 20년 동안 끊임없이 되풀이해온 고질적 빈곤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위원회의 고된 노력이다.
주거빈민, 가난한 그들만의 세상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지는 오래 전 이야기다. 주택 보유세와 양도세, 증여세를 연일 걱정하면서도 정작 철제 울타리 뒤편의 주거 빈민들의 주거권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지 않았다.
울타리를 쳐 놓은 채 밖에서 그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은 쉽다.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현장에 함께 하는 것, 의지를 북돋고 그들의 삶의 산증인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빈민사목위원회는 1987년부터 현장 공동체를 세우고 아가방, 공부방, 일자리방 등 빈민지역 주민들과 공동체적 유대를 형성해왔다. 특히 빈민사목위원회가 솔샘일터와 같은 생활공동체를 마련해 그들이 가난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한 일은 주목할만한 성과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위원회가 마련한 다양한 빈민구제사업 중에서 의류 사업을 제외하고는 문을 닫은 것이다.
이신부는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 운동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사회의식이 성장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또 “이상은 좋았지만 높다란 시장경제구조의 벽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고 말했다.
함께 사는 공동체의 성격과 반대되는 ‘정글의 법칙’ 속에서 가난한 이들의 작은 희망이 담긴 일터는 버티기 어려울 뿐이다.
복음적인 가난, 청빈이 부르는 희망의 노래
현재 빈민사목위원회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자활후견기관을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시장에서 탈락된 빈민들을 모아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공동체적 실험과 검증을 통해 사회로 환원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사회로 나아가 시장경제의 잣대로 재어질 때 아무리 자활후견기관에서 검증된 사업이라 해도 무너지기 쉽다. 그 한계를 감안해 마련한 대안이 유럽 선진국들의 사회적 기업 형태다.
많은 빈민들을 국가가 모두 끌어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보호된 그들만의 시장을 제공해주는 일이다. 이 기업은 공공성을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보존할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만이 해야할 일은 아니다. 교회차원의 노력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생산과 소비에 있어 윤리적인 기준을 들이댈 수 있도록 신자들을 재교육시키는 일이다. 이 가운데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서 있다. 위원회는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된다는 의식구조를 개선하고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생활 속 청빈을 실천하자고 말한다. 사회교리에 입각한 윤리적 생산과 소비가 함께 이루어질 때 진정한 가톨릭 마인드와 온전한 신앙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신부는 “우리는 자주 ‘청빈’이 개인적 덕목이라 생각하여 그것을 가장한다”며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인류와 함께, 나아가 지구 생명체들과 함께 사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청빈”이라고 밝혔다.
빈민사목위원회의 20돌 맞이
따라서 빈민사목위원회는 20주년을 기념해 이와 같은 ‘청빈실천’ 기간을 10년으로 설정하고 4월 28일 오후 2시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복음적인 가난’을 주제로 제안 설명회와 기념식을 연다. 또 5월 5일 경남 고성 및 섬진강 일대 고 제정구 선생 추모기행도 마련했다.
카리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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