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대륙의 서쪽 오지를 가다
내전 휩쓸고 간 상처의 땅에 새순은 움트고
전기·식수 제대로 공급 안돼… 기아·질병에 시달려
레골레토회 이상원 신부 역경속 홀홀단신으로 사목
시에라리온 우광호 기자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을 때였다. “우르릉~, 쾅” 공포 그 자체다. 천둥과 번개가 2, 3초 간격으로 귀를 찢는다. 거센 바람으로 창문이 떨어져 나갈 듯 심하게 요동친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는 마치 지붕을 뚫을 것 같은 기세다. 한번도 이런 비와 이런 바람, 이런 천둥 번개를 경험한 일이 없다. 우기(雨期, 일년 중 비가 많이 오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기고 주모경을 바쳤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기나긴 시간을 날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Republic of Sierra Leone)은 한국에서 보면 가장 서쪽에 위치한 땅이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 그만큼 그 곳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네덜란드 암스텔담을 거쳐 영국 런던까지 환승시간 포함, 총 16시간. 다시 런던에서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까지 7시간을 비행기로 간 뒤에야 간신히 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의 공항에는 레골레토 수도회 이상원(가시미로.46.The Augustisian Recollests) 신부가 마중 나와 있었다. 작은 키에 짧게 깎은 머리, 단단한 근육, 까만 피부. 강한 인상이었다. 그 강인함에서 오히려 서글픔이 느껴졌다. 험한 땅에서 얼마나 어렵게 살았을까. 그것도 아는 사람 한명 없는 곳에서….
이신부는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과는 인연이 거의 없다. 어릴 때 필리핀에서 살다가 수도회에 입회, 사제로 서품된 탓에 한국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지내다 보니 한국어도 어눌하다.
한센병을 앓아 소록도에 살던 부모님도 모두 어릴 때 돌아가셨다. 그나마 몇 되지 않던 작은 어머니 등 친척도 최근에 모두 돌아가셨다.
레골레토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하지 않은 수도회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이신부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없다. 당연히 후원회도 조직되어 있지 않다. 수도회에서 나오는 용돈은 월 5만원. 이쯤 되면 맨몸으로 사목한다는 표현이 맞는 셈이다.
“하느님이 주신 몸 하나만 믿고 삽니다.” 피부가 까맣게 그을린 이상원 신부가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신부가 사목하는 가마바이(Kamabai) 지역은 수도 프리타운에서도 5시간 이상 차로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 중의 오지. 한국으로 말하면 서울에서 강원도 태백 정도에 위치해 있다. 이미 해가 기울고 있어, 프리타운의 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이신부가 사목하는 가마바이(Kamabai) 본당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호텔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 시에라리온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1991년부터 10년간 내전으로 시에라리온은 철저히 파괴됐다. 한국전쟁이 준 아픔은 3년. 하지만 시에라리온 사람들은 10년 동안 그 살육의 고통을 이겨내야 했다. 국가 기반시설은 대부분 파괴됐고, 땅은 황폐화됐다.
마실 물을 찾아서
이제 그 상처받은 이들이 다시 일어서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이신부는 시에라리온 사람들이 대부분 하루에 한 끼 식사를 한다고 했다.
수도인 프리타운을 포함해 시에라리온 전역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호텔이나 관공서, 상점, 식당 등 전기가 필요한 곳에서는 모두 자체 발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물 사정도 마찬가지. 수도 프리타운을 제외한 대부분 농촌 지역이 극심한 가뭄으로 물 사정이 열악하다. 대부분 마을이 3~5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물을 길어 와야 한다. 마시고 씻는 물이 이 정도인데, 농사라고 해서 제대로 될리 없다. 그나마 정글지역에 불을 지른 뒤 개간해 고구마 등을 심고 있지만 경운기, 곡괭이 등 농기구가 없어 큰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우물 하나 파는데 한국 돈으로 약 400만원 정도 듭니다. 우물 하나만 있으면 한 마을 주민 전체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또 곡괭이나 삽 등 기본적인 농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곳에는 곡괭이 하나라도 끝이 뭉툭하게 닳을 때 까지 사용합니다. 아이들이 나무막대로 밭을 가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이동 수단이 거의 없어 수십킬로에 이르는 엄청난 거리를 걸어 다니며 농사짓는 모습을 보면 안스럽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돈 없어 배움 포기
유아 사망률과 교육문제도 심각하다. 시에라리온 여성 1인당 평생동안 낳는 자녀수는 대략 10~12명선. 하지만 그 아기 중 5~6명이 말라리아, 장티푸스 및 각종 감염 질병에 의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마땅히 보낼 병원도 없고, 또 병원이 있다고 해도 병원까지 갈 차비 조차 없다. 그래서 평균 연령은 남자 40세, 여자 43세. 시에라리온은 아프리카에서도 평균 연령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교육받는 인구는 전체의 10%선. 대부분 아이들이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있다. 마땅히 보낼 학교도 없고, 또 학교가 있다고 해도 학비가 없다.
중·고등학교 1년 학비는 한국 돈으로 약 2만원. 이 돈이 없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것이다. 학교에 보낸다고 해도 노트와 필기도구를 살 돈이 없다.
이상원 신부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미래를 위해선 교육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하고, 또 돈이 없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마을에서 1~2명씩 학비를 대고 있지만, 나머지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덧 호텔 앞에 도착했다. 말이 호텔이지 한국의 여인숙 수준이었다. 샤워시설이 있었지만, 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찜통더위 속에서 에어컨, 선풍기 없이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앞이 캄캄했다. 더 기막힌 것은 이상원 신부의 말이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렇게 좋은 방은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할 겁니다. 부족민들이 사는 곳으로 직접 들어갈 계획입니다. 그래서 텐트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38~40°C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는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를 흥건히 젖게했다. 멀리서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 시에라리온은
다이아몬드 이권다툼 10년간 내전…최빈국
“어디?”
한국에서 떠나기 전, 어디로 취재 가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간다”고 하면, 대부분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지난 1월 개봉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피 묻은 다이아몬드)를 이야기하면 “아하, 그 나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의 60% 이상을 생산하는 나라. 하지만 그 다이아몬드에는 피가 묻어있다. 다이아몬드 이권 때문에 내전이 일어났고, 그 내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팔아 무기를 구입했다. 그 무기로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가 죽었다.
그 영향으로 199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다이아몬드 구매를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세계 각 NGO 기구들은 이를 위해 다이아몬드를 ‘피 묻은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에라리온 국토 면적은 7만1740㎢로 한반도의 약 1/3에 해당한다. 인구는 500여 만명. 종교는 이슬람 50%, 가톨릭 및 개신교 20%, 토속신앙 30%인데 최근 이슬람이 사원 3000개를 신축하는 등 공격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화폐단위는 ‘레온’(Leone). 3000레온이 미화 약 1달러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2002년 기준 200불로 아프리카에서도 최빈국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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