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를 찾아 험난한 밀림속으로…
동료들은 떠나고 죽을고비 넘기며 홀로 남아
폭염속 야영…70개 마을 빠짐없이 사목방문
시에라리온 우광호 기자
사람이 사는 곳인지 벌레가 사는 곳인지 구분이 제대로 가지 않는다. 지네, 모기, 개미, 그 밖의 이름 모를 수많은 벌레들…. 살충제를 뿌리고, 모기장을 치고, 모기향까지 피웠지만 소용없다.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을 출발해 5시간 만에 도착한 이상원 신부 숙소는 벌레들의 천국이다.
숙소에 도착한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팔과 다리, 수 십군데가 벌레에게 물렸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그나마 앞으로 겪을 고생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원주민 마을을 돌며 6일간 야영을 하기로 했다. 이상원 신부가 “행복 끝, 고생 시작”이라며 겁을 준다.
이신부 숙소를 나와 비포장 길의 덜컹거림에 몸을 맡긴지 1시간째. 차 안에는 에어컨이 나오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이국적 풍경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은 것도 잠시. “더 이상 차가 갈 수 없습니다. 이제부턴 걸어야 합니다.”
이신부가 텐트와 물 등 야영 장비를 챙기며 말했다. 차에서 내리자 ‘훅’하는 열기가 폐로 밀려들었다. 37~40°C를 오르내리는 열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가숨뿌나(Kasumpuna) 마을. 림바(Limba)족 100여 명이 모여 사는 곳이다. 10분, 20분, 30분, 1시간, 2시간…. 들을 지나고, 밀림지역을 통과하고, 산을 넘었다. 숨이 턱에까지 차올랐다. 비 오듯 흐르는 땀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할 정도였다. 이신부가 왜 머리카락을 짧게 깎고, 소매 없는 옷을 입는지 알만 했다. “아프리카에서 살려면 철저히 아프리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갈증이 심했다. 하지만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없다. 6일 동안 야영생활을 해야 하려면 가지고 있는 물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 “원주민들이 마시는 물을 마시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이상원 신부가 고개를 흔든다.
이신부도 2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원주민들이 마시는 물을 마시고, 같은 음식을 먹고, 늘 함께 생활했다. 원주민들에게 이방인이 아닌,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었다.
말라리아를 7번, 장티푸스를 6번 앓았다. 죽음 직전까지 간 것도 7번이나 된다. 그 때마다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엄청난 고열과 오한을 혼자 며칠 밤씩 지새며 이겨내야 했다.
원주민 모두 “빠다(원주민들이 아버지란 뜻으로 이신부를 높여 부르는 말)가 저러다 죽겠다”고 했지만 이신부는 그 고비를 기도로 이겨냈다. 레골레토 수도회 안에서도 이신부는 소위 ‘독한 한국 사람’으로 통한다.
함께 아프리카로 온 필리핀 동료 신부 6명이 모두 열악한 생활환경과 질병을 견디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이신부만 “이곳 사람들을 두고 그냥 떠날 수 없다”며 홀로 남은 것이다.
이후 이신부가 아프리카에 오래남기 위해 선택한 것이 위생. 공소에 갈 때도 물은 늘 끓여서 물통에 담고 다닌다. 개인 수저도 꼭 챙긴다. 원주민들과 차별화된 삶을 사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리지만, 아프리카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조심을 하는 가운데서도 최근 말라리아를 앓아 병원에 실려간 일이 있다. 큰 병을 앓은 경험 때문인지 이신부는 이번 취재기간 동안 늘 기자의 건강을 챙기고 걱정했다.
걷기 3시간째. 무거운 짐을 머리에 올린 아주머니를 만났다. 신부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한다. 신부가 어디로 가냐고 물으니, 조금 떨어진 이웃 마을 친척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이신부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 하면 보통 20~30km가 넘는다”고 했다. 이신부가 멀어져 가는 여인의 뒷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곳 여자들만 보면 마음이 ‘찡’해 옵니다.” 육아, 빨래, 식사 준비, 장작 마련, 농사 등 대부분 일이 여자들 몫이다. 여자들은 매일 4~5km를 걸어 물을 길어오고, 장작을 패고, 농사를 짓는다. 이렇게 하루 평균 걷는 거리가 20~30km에 달한다. 대부분 신발도 없다. 어릴 때부터 맨발로 생활하다 보니 발이 거의 못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다.
걷기를 4시간. 탈진 상태다. 얼굴과 팔은 발갛게 부어 오르고 있었다. 배낭을 맨 어깨에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앞으로 6일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그 때였다. 숲 속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자 작은 옹달샘 주위에서 물 길러 나온 마을 처녀들이 멱을 감고 있었다. 이신부를 발견하고는 반갑다고 뛰어와 인사한다.
이신부가 방문하는 70개 마을 중 그 첫 번째 마을, ‘가숨뿌나’는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신부가 나타나자 마을 전체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집에서 가장 아끼는, 화려한 옷을 입고 이신부 주위로 모여 들었다. ‘피부색 하얀 추장’이 왔다고 다들 난리다. 기자 눈에는 이신부나 이네들이나 피부색이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데….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탕~”“꺄악, 꺄악~” 총성이 울리고 원숭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 원주민이 사냥한 원숭이 한 마리를 들고 왔다. 귀한 손님이 와서 원숭이 고기를 대접하겠단다. 야자 줄기에서 나오는 액을 발효시켜 만든 원주민 토속 술 뽀요(Poyo)가 나오고…. 마을에선 그날 밤 축제가 벌어졌다.
■ 작은 정성이 시에라리온을 도울 수 있습니다
△말라리아 환자 2주 입원 치료비 : 5만원 △중고등학교 1년 학비 : 2만1000원 △초등학교 1년 학비 : 2000원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집 건축비용 : 1채에 7만원 △6개 학급 학교 건축비용 : 400만원 △우물 공사 및 설치비용 : 400만원
■ 이번 주 후원 단체
수원교구 용인 상현동본당 2지역 3구역(구역장 유재민 크리스티나) 신자들이 부활과 성탄 때 정기적으로 정성을 모아 이상원 신부님을 후원키로 했다고 가톨릭신문사에 알려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상원 신부 선교 후원
신한은행 110-077-255287 예금주 이상원 신부
※문의 02-778-7671 가톨릭신문 취재팀
사진설명
▶이상원 신부(맨앞)는 시에라리온 마케니 가마바이 지역 북동쪽에 위치한 70개 마을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돌아가며 방문한다. 마을 한 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40°C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5~7시간씩 걸어야 한다. 사진 백맹종(사진가)
▶가숨뿌나 공소 전경
▶가숨뿌나에서 본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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