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기 보다 ‘바르게’ 쓰는 능력 심어줘야
어릴적 언어, 사고 형성에 ‘미디어’ 역할 커
교육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등 뒷받침돼야
영화를 즐겨보는 한 어린이의 그림에서 부자는 늘 ‘배가 나온 뚱뚱한 백인’이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마르고 검은 피부의 흑인’이다. 한때 꽤 많은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웃지못할 해프닝을 벌였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는 광고문구의 영향이었다.
이 아이들에게 ‘이 영화의 역사적 배경은 어떤 걸까?’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대신해 드러나는 상징물이 무엇이지?’ 혹은 ‘이 광고가 우리에게 알려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눈길을 끌고 설득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고 있지?’라는 질문을 한번이라도 던져봤다면 결과가 어떠했을까?
의식하지 않아도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미디어. 우리의 아이들은 미디어 환경 안에서 언어와 생각 등 모든 의미체계를 세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디어는 환경이며 문화
디지털 시대, 매체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만들어지고 변화한다. 각 미디어의 특징을 인식하고 연구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미디어에 의해 변화돼 있다.
아이들은 갓난아기 때 엄마아빠가 불러주는 노래에서부터 그림책, 카세트, 텔레비전, 게임기 등 수많은 미디어를 접하며 성장한다.
미디어는 우리가 숨쉬며 살아가는 환경으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보편적인 영향을 미친다. 개개인은 미디어 환경과 그 안에서의 경험에 의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미디어를 보거나 읽는다는 것의 문제는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라고 지적한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적응하기 위해서는 ‘미디어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미디어도 ‘학습’해야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미디어 교육(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에 대한 관심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리터러시(literacy)’는 읽고 이해하고, 보이지 않는 미디어 환경과 사회 변화와의 관계를 알아가는, 미디어에 대한 인간 능력의 함양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최근 학교 국어수업에서 미디어 교육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몇몇 학교에서는 방과 후 수업에서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미디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보다 매체 활용을 통해 특정 능력을 높이는데 치우쳐 있다.
현대사회 안에서 특히 디지털문화 안에서 미디어는 ‘읽어야 하는 대상’, 즉 ‘학습’의 대상이다. 여기서 ‘학습’이란 학교성적을 높이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전인적’인 교육을 의미한다.
인기댄스가요의 활용을 예로 들어보자. 평소 재미있게 즐기는 ‘놀이 도구’의 하나인 대중가요. 그러나 미디어 교육을 통해 학습 과정으로 끌어들이면 어린이들이 가사의 뜻을 되짚어보고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학습 도구’가 된다.
◆부모 자세가 가장 중요
어린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부모님의 생활태도다.
아이와 미디어와의 관계는 부모와의 관계 안에서 형성된다. 예를 들어 사회적 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된 인터넷 중독의 이면을 살펴보면 단순히 어린이 개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중독 현상은 부모와의 원만치 않은 관계 안에서 현실도피의 행동양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태반이다.
TV나 영화 상영에 앞서 ‘12세 이하 어린이는 부모님의 시청지도가 필요합니다…’ 등의 문구는 그냥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동반하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대화를 할 수 있기에 제시되는 설명이다.
미디어 교육 전문가들은 특정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실제 부모의 생활태도가 건강하면 올바른 미디어 교육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각 미디어에 대해 부모가 잘 몰라도 아이가 미디어를 접할 때 자녀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게임을 하는 자녀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건 어떤 내용의 게임이니?’라고 물어볼 수 있다. 아이가 게임내용에 대해 부모에게 설명을 시작할 때 그 순간부터 아이는 스스로 교사가 되고 그것을 즐거워한다. 아이와 부모의 의사소통이 시작되고 게임은 놀이도구가 아니라 학습도구가 되는 것이다.
◆복음화의 기초
미디어 교육 안에서 어린이들의 종교교육 또한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어린이를 위한 전문적인 미디어 교육은 여전히 전무한 형편. 일반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주일학교 등에서 각종 미디어를 도구로 활용해 교리교육의 효과를 높이는 사례는 늘고 있지만 미디어 바로보기 교육은 찾아보기 어렵다. 몇몇 특강이나 포럼 등도 성인과 청소년 교육에 머무르는 정도다.
개신교의 경우 미디어 교육면에서도 발빠른 면모를 보여왔다. 대표적으로 ‘문화사역단체’의 하나인 ‘낮은 울타리’의 경우 ‘미디어 중독 예방과 치유 지도자 학교’를 개설하고 미디어교육을 확산하고 있었다. 낮은 울타리의 각종 프로그램에서는 대화, 생각바꾸기, 자녀와 함께하는 말씀 묵상 등을 통해 올바른 문화 리더십을 양성하는 한편 선교 효과를 끌어낸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올해 홍보주일 담화문을 통해 ‘미디어를 통한 어린이 교육’과 ‘미디어에 올바로 대응하기 위한 어린이 교육’을 강조하며 부모와 교회, 학교의 책임과 역할을 당부하고 나섰다.
미디어 교육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가 양성과 프로그램 개발이 우선돼야 한다.
현재 교회 안팎에서 활동 중인 전문가들은 “미디어 교육은 교육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총체적으로 습득해야 가능하며 ‘미디어를 통한 종교교육’ ‘미디어를 바로보게 하는 종교교육’이 시급하다”며 현재 양성 과정 개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TV 볼 때, 게임할 때, 자녀에게 질문해 보세요”
▶일상 속 미디어 배우기
▷누가, 왜 만들었을까? (각 매체에 어떤 가치관이 담겨있는지 연결지을 수 있다.)
▷이 내용은 어떤 장르에 속할까? (만화, 게임, 뉴스 등 ‘그릇’에 따라 분위기와 주제가 달라진다.)
▷누가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일까? (만든 사람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어떤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을까? (영상, 인쇄 등 표현방법에 따라 내용과 의미까지 달라진다.)
▷어떻게 만들까? (직접 제작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매체 특성을 알아간다.)
▷저 모습이 진짜일까? (매체 내용이 가저올 파장과 부정적 긍정적 측면을 예상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미디어 특성을 알면 미디어에 담긴 메시지를 찾아내 매체가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살레시오 사회교육문화원 ‘독서미디어교육’
사고력 창의력 감성 “쑥쑥”
“책 내용에서 ‘징병’의 뜻을 짐작해볼 수 있나요?” “○○가 발표한 내용을 요약해서 써볼까요?” “○○가 요약한 내용을 다른 친구들에게 말해볼까요?”
살레시오 사회교육문화원 ‘독서미디어교육’ 강좌. 참가 어린이들에게서 지루한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도구는 ‘한국사 편지’ 책 한권. 어린이들은 책의 기본적인 내용을 읽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진 사건과 그 사건 속에 담긴 의미와 영향 등을 스스로 찾는다. 책의 내용을 컴퓨터 그래픽 혹은 영상물로 재창조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살레시오 사회문화교육원 강좌들은 교회 안에서는 물론 일반사회에서도 대표적인 미디어 교육 과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독서미디어교육’은 독서교육과 미디어교육을 접목해 총체적인 학습능력과 사고력, 창의력, 감성 등을 키워주는 교육원 자체 개발 강좌다.
단순히 국어교육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과목을 아울러 이해하고 성인이 되어 필요한 사고력의 토대를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준다. 주제만 바꾸면 곧바로 종교미디어교육에도 도입 가능한 과정으로 더욱 관심을 모은다.
강좌 담당자는 미디어 교육 전문가 김용은 수녀(살레시오 사회문화교육원 원장)와 임성미(마리아도미니카) 독서지도사 등이다. 이들은 특히 텔레비전, 영화, 만화, 인터넷 등은 책의 적이 아니라 그 속성을 알고 적극적으로 ‘읽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밝히며 독서교육에 포함해 미디어 교육을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논술이나 학교성적 향상에만 매달리던 부모들의 의식에도 큰 영향을 끼쳐 교육원 프로그램을 따로 홍보 하지 않아도 매달 수강 대기자가 넘쳐난다.
교육원에서는 연령별 독서미디어교육과 미디어와 문화비평 강좌 외에도 특히 학부모와 일반 교사 등을 위한 미디어 교육과 ‘미디어 리터러시’ 지도자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문의 02-844-0388 www.kscc.m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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