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시에라리온”
아버지는 돈이 없어 죽어가는 딸 1주일째 방치
곳곳에 말라리아 콜레라 에이즈…질병에 시름
소녀들은 임신하고 낳은 아이는 죽고…악순환
이상원 신부가 단단히 화났다. “정신이 있으신 분이십니까. 딸이 죽어 가는데 이렇게 방치만 하다니….” 이신부 앞에서 40대의 한 원주민 남성이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하고 있다.
방안에는 17살 레베카(Rebeca)가 누워 있었다. 아버지는 아픈 딸을 일주일째 방치하고 있었다. 고열에 심한 구토를 하고 옷을 세 겹씩 껴입고도 오한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전형적인 말라리아 증상이다.
이신부는 이런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다. 레베카는 저렇게 고통 속에서 하루 이틀을 버티다 하늘나라로 갈 것이다. 어쩔 수 없다. 10년 내전으로 가지고 있는 가축과 재산은 모두 잃었고, 땅은 황폐화됐다. 병원비는 고사하고, 병원까지 갈 차비조차 없다.
딸을 업고 3시간 가량 산을 내려가야 그나마 보건소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말이 보건소이지 정규 의학 코스도 밟지 않은 관리인 1명이 상주할 뿐이다. 약도 간단한 항생제가 전부다. 그래서 말라리아를 치료하기 위해선 다시 보건소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가량 떨어진 도시로 나가야 한다. 도시 병원까지 가는데 필요한 경비는 딸과 아버지 두 명에 3000여 원. 그리고 2주일 입원 치료 병원비는 5만원이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이 돈이 없어 딸과 자식, 아내와 남편이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본다.
“돈이 없어서, 그것도 단돈 3~4만원이 없어서 죽어간다는 것이 21세기 대명천지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현실입니다.”
이신부가 레베카의 아버지에게 빨리 딸을 도시 병원으로 보내라고 이야기했다. 병원비와 차비는 어떻게 해서든 이신부가 마련해 보겠다고 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딸을 업고 산 아래로 향했다.
이신부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아픈 사람이 생기면 나에게 연락하세요. 저로서도 별다른 도움을 드릴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사람부터 살려 놓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신부는 이번 공소 순례가 끝나면, 인근 본당 신부에게 돈을 빌려 레베카가 입원한 병원부터 찾아볼 생각이다. 가숨뿌나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향하는 일행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시 끝없는 걷기가 시작됐다. 가숨뿌나(Kasumpuna)를 떠나 가바케(Kabakeh) 마을로, 다시 가마꼴로(Kamakolo)를 거쳐 가바카(Kabaka) 마을로, 또 가라톤(Karathon), 가니케이(Kanikey), 가본카(Kabonka), 가말로(Kamalo)…. 마을은 끝없이 나타났다.
마을마다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기쁘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어린 아이들이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말라리아, 장티푸스, 콜레라, 간염, 에이즈…. 대부분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민간 치료를 받는다. 특히‘코끼리 다리병’은 어디를 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상처가 난 발에 세균이 들어가 다리가 마치 코끼리 다리처럼 퉁퉁 붓는 병이다. 많은 아이들이 이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에는 균이 온 몸에 퍼져 사망한다.
가라톤(Karathon) 마을에서 만난 가니 가르보(Kanie Kargbo.60)씨. 14살 때 첫 아기를 낳은 후 지금까지 모두 자녀를 9명 낳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아이는 다섯째(25세)와 일곱째(23세) 두 아들 뿐. 모두 생후 12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병으로 죽었다. “아기들 무덤은 마을 입구에 있습니다.
일 나갈 때 마다 아이들 무덤 앞에서 기도합니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이 마을에도, 저 마을에서도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소녀들은 계속 임신을 하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또 죽고….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었다.
6살 여자아이 카미(Cami)가 계속 따라오며 악수를 하자고 한다. 손은 온갖 오물 가득한 진흙 범벅이었다. 악수가 꺼려졌다. 그 모습을 본 이신부가 말했다. “위생이 엉망입니다. 이 아이도 이렇게 살다간….” 카미가 방글방글 웃으며 계속 악수를 하잔다. 손가락 끝을 간신히 그 조막같은 손에 내주었다. 아이가 행복해했다.
유부남 아이낳은 십대
“아이가 아이를 키우다”
-예노 코로마(Yeanoh Koroma)
16살. 중학교 2학년에 다니다 임신을 했고 5개월전 아기를 낳았다. 문제는 4일간 계속된 진통. 난산이었다. 하지만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코로마는 그 후유증으로 오른쪽 발을 잘 사용할 수 없는 장애인이 됐다. 그나마 코로마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다 보니 아기를 낳다가 사망하는 산모와 아기가 많다.
아내가 있는 남자였다. 일부다처제가 전통인 만큼, 코로마는 후처로라도 시집가기를 원했지만, 남편이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경우, 하소연할 곳도 없다. 코로마의 부모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남자로부터 약간의 돈을 받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 학업도 접었다. 공부를 해서 간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그 꿈은 이제 사라졌다. 안타까운 사연을 보다 못한 이상원 신부가 코로마를 불러 빨래 일감을 맡겼다. 그리고 3~4일에 약 1달러(한화 약 1000원)씩 준다.
-아이 만사레이(Iye Mansaray)
14살. 임신 5개월이다. 딸을 원한다. 딸은 8~9살만 되면 농사 일 이나, 밥 짓는 일 등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남자 아이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이미 부인이 둘이다. 다행히 남편이 만사레이를 받아들여 현재 다른 전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아이는 한 5명쯤 낳고 싶다. 훌륭한 농사꾼으로 키우고 싶다. 배 안에서 놀고 있는 아기를 위해 하루 세끼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눈치가 보인다. 식량 사정이 어려워 다른 가족들은 하루 한 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손에 먹을 것을 들고 있는 아이. 시에라리온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 한끼로 겨우 살아간다.
▶아내가 있는 남자의 아이를 낳은 16살의 예노 코로마. 코로마는 후처로라도 시집가기를 원했지만 남자로부터 결혼을 거부당해 살길이 막막하다. 사진 백맹종(사진가)
※이상원 신부 선교 후원
신한은행 110-077-255287 예금주 이상원신부
문의 02-778-7671 가톨릭신문사 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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