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닷새간 브라질 순방 … 생명윤리 기존 입장 확인
“낙태 시술 지지자는 스스로 파문”
가톨릭 교세 약화 사목적 대응 주문
정치 경제 이슈에도 적극 관심 표명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5월 9일부터 13일까지 닷새 동안 브라질을 방문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신앙적 정체성이 세속화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위기 상황 속에서 이뤄진 교황의 브라질 순방은 라틴 아메리카의 가톨릭교회에 신앙적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커다란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브라질 순방의 의미와 배경을 살펴본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성당인 브라질 아파레치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거행된 미사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그리스도교적인 정체성을 회복하고 다시금 신앙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용감하고 효과적인 선교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황은 라틴 아메리카의 가난한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사회운동이나 정치적 변혁 이상의,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라틴 아메리카 대륙이 갖고 있는 가장 값진 보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드러나는, 사랑이신 하느님께 대한 깊은 믿음인 것이다. 4박 5일간의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브라질 방문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교황은 5월 13일 약 15만명의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아파레치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앞에서 거행된 미사를 집전하고, 제5회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the 5th General Conference of the Episcopate of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를 개막했다.
5월말까지 열리는 이 총회는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국 교회들, 그리고 미국과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교회 대표들이 두루 참석함으로써 전세계 가톨릭교회의 절반 이상을 대표하는 거대한 회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와 선교사들; 우리 민족들이 그리스도안에서 생명을 얻도록’을 주제로 열리는 이 회의는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1955), 콜롬비아 메델린(1968), 멕시코 푸에블라(1979), 그리고 도미니코 공화국 산토 도밍고(1992) 등 네 차례에 걸쳐 열렸던 이전의 회의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교황의 이번 브라질 방문이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의 개막과 맞물려 이뤄졌다는 것은 큰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는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사목 방향에 큰 지침이 되어왔고, 이번 총회 역시 향후 라틴 아메리카 민족들과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정립하는 중요한 회의가 될 전망이다.
이 시기에 맞춰 라틴 아메리카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가장 신자수가 많은 브라질을 방문한 교황은 현재 라틴 아메리카가 처해 있는 교회 안팎의 상황에 대해 평가하고 그 사목적 강조점들을 폭넓게 지적했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는 대부분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로서 최근 들어서 그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고, 일부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제 종파의 세력이 확산됨에 따라 심각한 신앙적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윤리에 뿌리내린 삶의 토대가 흔들리면서 낙태와 피임 등 생명윤리의 위기 상황이 드러나고 있다.
또한 빈부 격차 문제를 포함한 정치, 사회적 무질서와 불안 상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교황의 이번 방문은 따라서 몇 가지 큰 방향에서 그 의미와 목적이 두드러진다.
첫 번째는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부흥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상 파울로대교구의 집계에 따르면 1991년 전체 브라질 인구의 83%가 가톨릭 신자였으나 2005년 현재 그 수치는 65%로 떨어졌다. 반면 개신교의 교세는 6%에서 15%로 대폭 늘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상황에서 개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접적인 시도는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13일 미사에서 이에 대해 “교회는 개종 문제를 논의하려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의 힘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듯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믿음의 삶이 이러한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것임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교황의 방문이 브라질과 라틴 아메리카 부흥의 큰 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그 방법은 결코 “정치적 이념, 사회 운동, 경제 체제”가 아니라 “사랑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 바로 교황의 지적이다.
하지만 교황은 이번 주교단 총회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개신교 종파들의 확산에 대해 ‘설득력 있는’ 대안을 모색하기를 바란다는 말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소홀할 수 없음을 지적했다.
한편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그리스도교적 희망과 전망의 토대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다. 교황의 브라질 방문과 관련해 세간의 관심을 끈 최대 화두는 낙태와 피임 문제이다.
가톨릭 전통을 지닌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 최근 들어 교회의 입장과 반대되는, 즉 낙태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지난달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의회가 낙태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교황의 이에 대한 입장은 매우 확고하다. 교황은 브라질행 비행기 안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를 분명히 했다.
브라질의 공항에 도착해서는 “잉태부터 자연사까지 인간 본성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수호해야 한다”고 지적해 낙태 반대에 대한 변함없는 입장을 피력했다. 더욱 구체적으로, 낙태를 지지한 가톨릭 신자 의원들의 교적 박탈 조치를 취한 멕시코 교회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낙태 지지자들은 스스로 파문을 선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의 이번 브라질 방문의 세 번째 의의와 목적은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사회 경제 등 총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노력의 방향을 모색하는데 동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특히 주교단 총회의 논의 방향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여전히 극도의 빈부 격차, 가난과 빈곤 문제, 인권 침해 등 정치, 경제, 사회적인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교회는 교회와 신앙의 가르침 속에서 이러한 라틴 아메리카 민족들의 삶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과제를 안고 있다.
교황은 이번 주교단 총회에 즈음해, 현재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교회는 이전의 총회들이 열렸던 당시들과는 또다른 새로운 도전과 과제들에 봉착해 있다고 말했다. 13일 개막미사에서 교황은 세계화, 그리스도교적 전망에서 어긋난 정치 이념의 확산, 그리고 빈곤의 심화 등 세 가지를 가장 큰 과제로 꼽았다.
하지만 교황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처하는데 있어서, 교회는 정의를 옹호하고 가난한 이를 선택하지만 교회의 노력은 정치나 당파적 입장을 넘어선다고 말했다. 그래서 교회의 방법은 라틴 아메리카의 가장 소중한 보물인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해서 시도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교황의 이번 브라질 방문은 세계에서 가장 가톨릭 인구가 많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보편교회의 관심, 더욱이 위기 상황에 대한 우려가 짙어지고 있는 중남미 교회와 사회에 대한 교황의 관심을 분명하게 드러냈고, 희망적인 미래를 향한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뜻을 보여주었다.
사진설명
▶브라질 방문 마지막날인 5월 13일 라틴 아메리카 주교단 총회 개막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아파레치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도착한 교황이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마리아 대성당 밖에서 거행된 미사에는 15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례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브라질 순방 이틀째인 5월 10일 상파울로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타종교 지도자들과 만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5월 13일 브라질 과라틴구에타에 있는 마약 중독자 재활센터 '희망의 농장'을 방문, 어린이들을 포옹하고 있다. 이 농장은 프란치스코회에서 설립했다.
▶교황은 11일 상 파울로 캄포 데 마르테 공항에서 프란치스코회 소속 안토니오 갈바오 신부를 시성했다.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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