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벌을 형성하는 교만함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자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던 코린토 교회의 분열상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서간을 첫째로 보낸 것은 바로 교회의 분열 때문이었다.
당시 코린토 교회에는 여러 파벌이 생겼는데 그것을 살펴보면, 우선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를 세웠다고 해서 바오로를 따르는 파가 있었다.
그리고 베드로가 교회의 수장이라고 해서 베드로를 따르는 베드로파가 있었고, 당시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었던 아폴로를 따라 다니던 아폴로파가 있었다.
또 “바오로 베드로 아폴로 이런 파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만 믿고 따른다”며 그리스도를 중심에 놓는 예수파도 있었다. 문제는 이 네 파벌이 서로 자신들만을 내세우며 다툼을 벌였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현상이 있었다. 동인, 서인, 남인, 북인 등 사색당파로 분열이 그치지 않았다. 오늘날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의견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오직 나와 다른 당이라고 해서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부끄러운 점은 이러한 세속적 욕심에서 벗어나야 하는 종교 내에서도 이런 당파 싸움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대부를 섰다고 해서 대자 대녀파가 있다. 또 우리 단체 내 단체니까 무슨 무슨 단체파가 생긴다. 본당에는 레지오파가 있고, 성령기도회파, 꾸르실료파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도구들일 분이다. 이 도구들이 예수님 보다도 높다면 말이 되는가.
베드로, 바오로, 아폴로는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스스로 그런다. 괜히 사람하나 높여 세우고, 파를 만드는 것이다. 베드로, 바오로, 아폴로는 “내가 두목이다”라고 한 일이 없다. 나도 “나 정영식 신부가 최고”라고 말하거나 생각한 일이 없다. 그런데 나를 두목으로 모시려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를 두목으로 모시려하고, 레지오 단장을 두목으로 모시려고 한다.
다 세속적인 정신이고 쓸데없는 짓이다. 가족 내에도 파가 있다. 장남을 사랑하는 장남파, 둘째 아들을 편애하는 차남파, 큰아버지를 따르는 큰아버지파, 삼촌을 따르는 삼촌파가 있다. 세상에 가장 무서운 병중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파’다. 먹는 파가 아니라 파벌의 그 파다.
이런 우리들에게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여러분은 저마다 ‘나는 바울로파다.’ ‘나는 아폴로파다.’ ‘나는 베드로파다.’ ‘나는 그리스도파다.’ 하며 떠들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갈라졌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린 것이 바울로였습니까? 또 여러분이 바울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단 말입니까?” (1코린 1, 10~13)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정영식 신부의 이름으로, 대부 대모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다. 시편에 나오는 것처럼 티끌만도 못한 사람, 먼지만도 못한 존재다.
내가 누구이냐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우리는 즉시 교만해 진다. 사실 사람은 하느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즉시 올라갈 수 있다. 인간은 ‘나’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군지 깨닫기 어렵고 내가 누군지 모르는데 상대방이 누군지 인간이 누군지 안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을 중심에 세우고 나는 정영식 신부파다, 나는 000신부 파다 하는 것이다. 두목은 누구인가. 우리가 두목으로 모시는 분은 당연히 삼위일체의 하느님이다. 우리는 사실 예수님 안에서 졸개도 안된다. 졸개로 부림 받은것도 하나의 큰 은혜다. 그런 우리들이 스스로 ‘파’를 만들고 그 작은 파 안에서 두목한다고 으스댄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교회 안에서 ‘내 파’를 만든다. 우리들은 이제 ‘파벌’장사를 그만두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파를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머지않아 하느님 대전에 가면 하느님께서 물으실 것이다.
“너는 파가 있었냐, 없었냐?”
이렇게 대답하자.
“저는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시고 생활했습니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