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간 절두산 성지서 기도

좌절과 방황

KBS 가요무대 녹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또 화려한 조명 아래에 섰다. 수많은 청중이 눈에 들어왔다.

숨 한번 크게 고르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히트곡 ‘똑똑한 여자’와 ‘야간열차’를 불렀다. 최근에 새로 발표한 ‘얼레리 꼴레리’도 불렀다. 청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큰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행복했다. 길거리로 뛰어나가 두 팔 들고 ‘만세’라고 소리 질러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는 지방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르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다가와 사인을 요청한다. 1~2년 전만해도 주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40~50대 주부들이었지만, 트로트를 즐기는 20대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아가씨들도 나를 알아보는 이들이 늘었다.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이런 날이 오다니….

라면 하나로 하루 연명

10년 전만해도 난 야간업소를 전전하는 무명가수였다. 길거리를 걸어가도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던 시절. 라면 하나로 하루 끼니를 때울 때도 많았다. 뒷골목에서 싸움도 했고, 술도 많이 마셨다. 세상 모르고 철없이 굴었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하는 일 마다 제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돈 하나 없는 나에게 노래를 주겠다는 작곡가는 없었다. 나 혼자 힘으로 어렵게 만든 음반은 실패하기 일쑤였다. 게다가 1990년 시작한 음반제작 사업은 부도를 맞아 엄청난 빚을 떠안아야 했다.

나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함께 전 재산을 탕진했다. 나를 아껴주던 형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도 이 즈음이었다. 세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불행해야만 하나…’ 다시 일어설 힘이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런 고통이 나에게만 주어지는가’라고 하늘에 원망도 많이 했다.

몸 뚱아리 하나 믿고 상경한 시골 청년에게 세상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다. 세상은 나에게 처절한 좌절과 분노만 안겨 주었다. 고통과 좌절, 이에 따른 세상을 향한 분노. 나에게 있어서 세상은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낙원’이 아니었다.

결국 죽음은 선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살을 시도하려는 그 순간, 나는 내가 천주교 신자였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참으로 오래된 기억이었다.

맞았다. 난 신앙인이었다. 성당에 나간 기억이 가마득했다. 기도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기도를 시작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54일 동안 매일 절두산 성지를 찾아 기도에만 매달려 살았다.

기도가 하늘에 닿아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그 기도가 하늘에 닿은 것이다. 하느님은 나에게 통회를 허락하셨다. 과거의 잘못된 습관들, 방탕한 삶 등에 대해 진정으로 통회했더니, 하느님은 그 통회를 받아들여 주었다.

이후, 나에게 행복이라는 것이 찾아왔다. 기적적으로 난 재기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총이었다.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나에게 하느님은 너무나도 큰 은총으로 함께해 주셨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도 바로 그 좌절과 고통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이야기다. 라디오에서 내가 부른 ‘야간열차’ 노래가 흘러나온다.

“내 슬픈 눈물 모아 던져 버린다~ 길게 누운 철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