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 강론 요지]
교구 위해 목숨 바친 ‘착한 목자’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이 시간 평소에 존경하옵고 사랑하는 정명조 주교님과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고별미사를 하고 있습니다.
정주교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늘 자애로이 미소짓고 때로는 크게 웃기도 하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언제나 예의 바르고 친밀하게 하시는 그 분을 이제 이승에서는 볼 수 없음이 참으로 아쉽고 애석하게 여겨집니다.
특히 부산교구민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한 모습이셨기에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은 교구민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고 또한 한국 교회에도 커다란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교님은 착한 목자였습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정주교님은 교구장으로서 교구와 교구민을 위해 헌신으로 사목하셨고 그 투신으로 주님 앞에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주어진 직무와 일상의 사소한 모든 부분에 까지 철저하신 분이셨으며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과 늘 함께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주교님은 일년 반 동안 투병하시면서 간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간병하는 문제로 불평하신적이 없으셨으며 오히려 환자인 주교님이 간병하는 이들을 배려하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주교님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생각해 봐야합니다. 죽음을 받아들이신 주교님의 모습에서 죽음 안에 함께 하시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께서 목말라 하시듯 주교님도 고통에 힘겨워하셨지만 ‘아버지 저를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투신을 우리는 주교님을 통해 봅니다.
주교님이 돌아가신 것은 한국교회와 50주년을 맞는 부산교구의 큰 손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큰 은혜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주교님의 죽음으로 남겨주신 사랑과 투병 중에도 인내와 희망을 보여주신 주교님의 그 정신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보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인간은 죽음을 통해서만 부활을 맞이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교님이 돌아가시기까지 주교님을 위해 기도드렸지만 이제는 주교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실 것입니다.
자비로운 주님, 당신의 아들 주교 정명조 아우구스티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그리고 그 빛으로 저희가 슬픔을 이기고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이관진 전 군종후원회장 추모글]
먼저 다가가 위로한 ‘자상한 아버지’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것만 같았던 정명조 주교님께서 기어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호탕한 그분의 웃음과 함께하는 이들의 가슴 속까지 후련하게 해주던 고인의 음성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아쉬움에 단지 먼저 주님께 떠나보낸 것임에도 큰 슬픔에 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종하시기 직전까지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을 위로하고자 안간힘을 쓰시던 주교님을 보면서 목숨이 다할 때까지 목자의 사랑으로 자신을 바치시는 그분의 간절한 뜻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교님은 벅찬 숨으로 한 마디 한 마디를 잇기 힘든 가운데서도 몸에 밴 열정, 다 태우지 못하고 당신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사랑을 사르기 위해 몸부림 아닌 몸부림을 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먼저 떠난 보낸 아픔이 더욱 시리게 다가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주교님은 누군가 다가서길 기다리기보다 먼저 다가가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신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분의 확신에 찬 말씀과 용기있는 행동은 주위의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희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얘기도 뿌리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들으시던 당신의 자상함 속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이의 순진무구함을 떠올렸다면 누가 될까요. 스스로 권위를 벗어던지심으로써 가까운 친구이자 스승이 되신 모습은 그분의 삶을 아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주위에서 어려움을 토로할 때 자신의 일처럼 아파하시고 후세에는 보다 기쁜 신앙 생활을 물려주기 위해 고뇌하시던 모습은 모든 이의 벗이 되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으셨습니다. 그분의 그러한 삶이 빚어낸 사랑의 메시지는 지금도 우리들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인간적으로 감내하기 힘든 현실 속에서도 지침 없이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오히려 어려움 가운데서 주님의 뜻을 찾으시던 주교님의 모습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웅변하시는 듯 했습니다. 주교님은 이러한 당신 모습을 통해 지금도 신앙의 힘으로 진리를 찾는 데 절대로 지치지 말라고 격려하시는 듯합니다.
우리는 또한 주교님이 소망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분은 어려운 시기에 초대 군종교구장을 맡으셔서 군종교구가 온 교회에 불어넣어 줄 희망을 내다보시며 군종 사제들과 교구민들이 사랑으로 하나되어 주님의 십자가를 굳건히 지고 나아가길 바라셨습니다.
그분은 가고 안 계시지만 그분이 몸소 뿌리신 씨앗들은 당신 뜻대로 하느님 나라를 꾸밀 꽃으로 피어나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을 통해 받은 감동, 참된 기쁨과 참 생명을 향한 열정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찾고 살아가는 길에 더욱 힘차게 나서야 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자비에 정주교님의 영혼을 맡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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