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그리고…
답을 바랐건만 침묵할 뿐이네
도무지 취재가 불가능하다.
애써 묻는 질문에는 선문답 대꾸하듯 피해가고, 조금 깊이 캐들어 갔다 싶으면 이내 손사래 치며 “그만~, 그만~”한다.
100톤 바위에서 수석까지 수천점 돌과 함께
대구 팔공산 자락에서 돌과 함께 살아가는 채희복(빈첸시오.64)씨. 무게 100톤이 넘는 바위에서부터 작은 수석에 이르기까지 수 천점 넘게 소유하고 있는 ‘돌 기인’(石奇人)이다.
그의 보금자리 앞에 내 걸은 간판 ‘돌, 그리고…’에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왜, 무슨 이유에서 이름이 ‘돌 그리고…’입니까”라고 묻자 “별 다른 의미 없어요. 뒷 부분은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라고…”라고 대답한다. 왜 돌을 수집하기 시작했느냐는 질문에는 “어릴 때부터 돌×가리 소리를 많이 듣다보니 한이 맺혀서…”라고 한다. 무게 100톤이 넘는 돌을 어떻게 이곳까지 운반해 왔느냐는 제법 합리적인 질문에도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하고 선문답으로 넘긴다.
돌을 약 몇 점이나 소유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느니만 못했다. “몰라요”라고 아예 잘라 말한다.
더 이상 묻기를 포기하고, 4000평 공간에서 펼쳐지는 ‘돌의 잔치’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돌들이 그냥 단순한 예삿 돌이 아니다.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하늘로 높게 솟은 장군, 수줍게 치마폭을 감싸 쥐며 몸을 트는 새색시, 누구든지 찾아가도 편안한 풍류가 느껴지는 선비…. 돌 마다 사연이 가득하다.
윤동주 김춘수…문인들의 육필로 새긴 시
게다가 돌들 위에 글이 새겨져 있다. 윤동주의 ‘봄’ 김수영의 ‘여름밤’ 김춘수의 ‘하늘 수박’ 정호승의 ‘물새’ 박노해의 ‘사람만이 희망이다’….
한국 현대 문학사를 대표하는 문학인들의 시(詩)를 자연석에 고스란히 새겨 앉혔다. 컴퓨터에서 ‘출력’한 글씨가 아니라 문학인들의 손 냄새가 그윽한 ‘육필’이다. 마치 문학인들을 직접 대면해 이야기를 듣는 듯 했다. 바위 위에 턱 걸터앉아 시 한편 읽고 잠시 묵상이라도 하고 싶었다.
시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자 그제야 채씨가 조금씩 말문을 트기 시작한다. “이곳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학 공원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어느 누구라도 찾아 와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그런 ‘쉼’의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소망을 위한 채씨의 노력이 놀랍다. 돌을 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다 눈에 ‘확’들어 오는 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그리고 한번 ‘찜’한 돌은 어떻게 해서라도 손에 넣고야 만다. 수개월 혹은 수년이 걸리더라도 바위가 있는 마을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며 어르신들을 극진히 모시고, 결국에는‘가져가도 좋다’는 승낙을 얻어낸다. 채씨는 그렇게 구한 돌을 정성스레 자신의 ‘돌 그리고…’에 모셔 앉히곤, 시(詩)의 옷을 입힌다.
돌에 대한 열정은 신앙 열정으로
돌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진다. 고통을 겪던 7년 전(채씨는 이 고통이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인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밤에 산에 올랐다가 자신도 모르는 힘에 끌려 ‘홀린 듯’ 산을 내려와 성당을 찾았고, 그 이튿날 교리 반에 등록, 교리를 받고 신앙인이 됐다. 지금은 한번에 20여 명씩 선교할 정도로 선교 열정이 남다르다. 장애인 복지시설에 남모르게 후원하는 등 사랑 실천에도 열심이다.
“신앙에 대해선 부끄러운 점이 많다”며 더 이상 질문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돌의 철학’에 대해 말해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질문을 잘했다. 대답이 술술 나온다.
“돌은 침묵입니다. 말이 없습니다. 침묵은 아름답습니다. 침묵한 후에라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돌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입니다. 비가와도 태풍이 불어도 그 돌은 그 돌일 뿐입니다. 새 등 누가 와서 앉아도 넉넉히 받아들입니다. 돌을 닮고 싶습니다.”
채씨가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가 새겨진 돌 앞에 멈춰 섰다.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시(詩)라고 했다.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새겨 읽었다. 시가 ‘나에게 물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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