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섬을 벗어나고 싶어서…
섬이 그립다. 요즘처럼 정신없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훌쩍 섬으로 떠나고 싶어진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파도 소리만 있는 조용한 섬에 가서 목청껏 노래를 크게 불러 보고 싶다.
그리고 지난 과오를 되돌아보며 실컷 소리내 울고 싶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그리며 눈물도 펑펑 쏟아 보고 싶다.
아~. 내가 섬을 그리워하다니….
사실 섬이 몸서리 쳐지도록 싫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섬 소년이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5남 2녀의 넷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바다일과 농사일로 잔뼈가 굵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모르겠지만 섬은 나에게 하나의 감옥으로 느껴졌다. 내가 살던 마을은 50 가구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늘 똑같이 만나는 얼굴들, 몇날 며칠이 흘러도 특별한 일이라곤 하나도 없는 한적함,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떨어지는 불호령과 꾸지람…. 좁았다. 답답했다. 훌쩍 육지로 나가고 싶었다. 항상 머릿속에는 ‘서울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서울 말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무엇이 어린 나의 방랑기를 충동질 했을까. 사실 난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출발부터 단추가 잘 못 끼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집안 어르신들이 무지해서인지, 아니면 단순한 실수인지 알 수 없지만, 난 또래 나이보다 2살 많은 10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농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당연히 같은 학년 아이들보다 키가 서너 뼘은 더 컸고 자연히 골목대장 노릇을 하게 됐다. 싸움도 자주했다.
마을 또래 아이들 중에는 나를 당해내는 이가 없었다. 기분이 좋았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말하는 아이가 없었다. 주위에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그들과 늘 산과 들로 놀러 다니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 골목대장 노릇이 초등학교로 끝나지 않았다. 중학교 다닐 나이쯤 되자 쌀 한가마는 너끈히 어깨에 올릴 정도로 근력이 붙었다.
마을에서 무거운 지겟짐이 있으면 모두 나를 부를 정도였다. 동네에서 어느덧 나는 ‘장사’로 통했다. 나는 자연히 공부하는 것 보다는 힘 자랑하는 것이 더 재미가 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후회스런 일이지만, 공부와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힘든 농사일을 바치고 돌아와 텔레비전 앞에 앉았을 때였다. 권투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김막동 선수였다. 김막동 선수의 원 투 펀치, 그리고 이어지는 어퍼컷…. 상대 선수가 링 위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김 선수의 KO승이었다.
심판이 김 선수의 한쪽 팔을 크게 들어 주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마음 한 구석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솟아 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 저거야. 난 저걸 해야 해.”
드디어 서울로 올라갈 명분을 찾았다. 섬을 탈출할 구실을 찾은 것이다. 권투 선수가 되기로 결심 했다. 그 날 이후부터 나의 우상은 김막동 선수였다.
힘쓰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던 나였다. 당장이라도 링 위에 올라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동양 챔피언, 세계 챔피언의 꿈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날씨 화창한 어느 봄 날이었다.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말했다.
“저…. 서울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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