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사제에게 보내는 이슬람 친구의 편지
최근 이라크 모술에서는 1명의 신부와 3명의 부제가 주일 미사를 마친 뒤 총격으로 희생됐다(본지 6월 10일자 7면 보도). 라기드 신부의 피살 소식을 들은 그의 이슬람 친구 아담 모크라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학교 종교와 문화연구소 이슬람학과 교수가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와 회고의 편지를 썼다. 다음은 그 요지이다.
자비하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내 형제 라기드여.
그들이 너와 네 형제들에게 총격을 퍼부었을 때 너와 함께 있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한다. 총탄이 너의 순수하고 무죄한 육체를 파고들었을 때 그것은 동시에 나의 영혼을 궤뚫어버렸다.
너는 내가 로마에 도착했을 때 가장 처음 만난 사람 중 하나였다. 우리는 안젤리쿰 홀에서 만났고 대학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했지. 너의 순수하고 따뜻한 미소는 내게 인상적이었다.
나는 항상 너의 미소, 삶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그 미소를 그린다. 나는 그때를 기억한다. 이라크가 봉쇄됐을 때, 너는 내게 커피 한 잔 값이면 이라크의 한 가족이 하루를 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
너는 네가 이 고통의 시간에 억압받는 민족을 떠나서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깊은 죄의식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너는 이라크로 되돌아가 너의 민족과 함께 고통을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매일 수천명씩 죽어가는 그들의 피에 네 피를 섞었지.
나는 네가 사제품 받던 날을 잊지 못한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채 너는 말했지. “오늘 나는 죽었고...” 더 말을 할 수가 없구나.
나는 그 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너의 순교를 통해 나는 그 말의 뜻을 알았다. 너는 육체와 영혼 모두로써 죽어서 네가 사랑하는, 너의 스승이신 분께로 올라갔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고통과 슬픔, 혼란에도 불구하고 네 안에서 하늘로 오르셨구나.
도대체 어떤 죽음의 신의 이름으로 그들은 너를 살해했는지? 어떤 이단의 이름으로 그들이 너를 십자가에 달았는지? 그들은 진실로 자신들이 한 일을 알지 못하는가?
친구여, 네 피가 헛되이 쏟은 것이 아니기를. 너는 그 피로써 네 조국의 땅을 축복했다. 하늘로부터, 네 온유한 미소가 우리의 밤의 어둠을 환히 비추어주고, 우리에게 더 나은 미래를 선포해 줄 것이다.
형제여, 용서를 청한다. 너는 나를 이라크로 초대했고 나는 그 방문을 고대하고 있었다. 네 집, 너의 부모님들, 네가 일했던 집무실들을 나는 꿈꾸고 있었다. 내가 너의 무덤을 방문하고 코란의 한 구절을 외우며 네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일이 벌어지다니.
언젠가 내가 너의 부모님께 드릴 기념품을 사서 건네주었을 때, 너는 장래의 희망을 말했었지. “정의보다는 사랑으로써 사제직을 수행하고 싶다.” 너는 그렇게 말했지.
오늘 네 피와 너의 순교는 신뢰와 인내의 평결, 모든 고통을 물리치는 희망, 죽음이나 그 어떤 것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있는 그런 희망을 전해주고 있다.
형제여, 네 피는 헛되지 않단다. 그리고 네가 몸 담고 있던 교회의 제단은 겉치레가 아니었다. 너는 가장 깊은 진지함으로 네 몫을 다했고, 결코 꺼지지 않는 미소로써 네 할 일을 했다.
너의 사랑하는 형제로부터.
세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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