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가요제서 우수상 수상
‘노래인생’의 서막
깜깜했다. 내 앞은 암흑 뿐이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권투선수의 꿈을 접고 나니 막상 할 일이 없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지만 배운 것 없고 기술 없는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친구 집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처음에는 반겨주던 친구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나를 불편해 하는 눈치였다.
고향으로 다시 내려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서울 가서 성공해 돌아오겠다고 큰 소리치고 뛰쳐 나온 마당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서울에서 번듯하게 성공하고 싶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삶의 희망을 잃고 무기력하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우연히 한국방송(KBS)에서 전국 신인가요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권투 선수의 꿈을 키울 때 가졌던 그런 두근거림이었다. 어릴 때부터 ‘노래’라면 자신 있었다. 사람들은 술자리나 잔치가 있을 때면 늘 내 노래를 듣고 싶어 했고, 노래를 부르면 모두들 ‘가수가 따로 없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한 번도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다. 노래는 그저 혼자서 즐기는 수순이었을 뿐이다.
이제는 달랐다. 막다른 길에 놓인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KBS 신인 가요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무모하기 그지없었다. 전문가로부터 음악 지도도 받지 않았고, 제대로 연습한번 하지 않았다. 평소 술자리에서 흥이 나면 부르던 그런 실력으로 전국의 내로라 하는 쟁쟁한 노래꾼들의 잔치에 참가한 것이다. 가수가 되지 않으면 당장 굶을 수 밖에 없는 막막한 처지가 그런 무모한 도전에 선뜻 나설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기로 했다.
신인 가요제 본선이 열리던 날. 다른 참가자들은 정말 대단했다. 모두 아마추어라고는 믿기 힘든 수준의 높은 실력이었다. 나도 혼신의 힘을 다해 김동하씨의 ‘나를 두고 가려무나’를 불렀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렸다. 인기상, 장려상…. 수상자가 계속 발표됐지만 정작 내 이름은 없었다.
“이젠 틀렸어….” 낙담하던 그 순간이었다. “박진도~” 우수상이었다.
꿈을 꾸는 듯했다. 하늘은 날 버리지 않았다. 가수가 된 것이다. 그것도 공영방송 KBS의 가수 등용문에서 당당히 우수상에 뽑힌 것이다. 신인가요제에 입상하던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내 인생을 바꾼 날…. 그 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이후 밤무대 생활이 시작됐다. 밤 무대 인기는 대단했다. 한 캬바레의 사장님은 약속한 월급 35만원에, 내 노래로 인해 손님이 늘었다며 5만원을 더 얹어 주기 까지 했다. “박진도의 노래가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여러 캬바레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했다. 덕분에 한동안 경제적으로 불편없이 지냈다.
하지만 마음은 늘 알 수 없는 허전함으로 가득했다. 난 스타가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무명가수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다른 가수의 히트곡을 앵무새 처럼 따라 부르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 그런 무명가수….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기회가 찾아왔다. 신앙을 가진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당시의 기회, 그리고 기쁨은 ‘환의의 신비’였다. 그 환희 뒤에‘고통의 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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