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성사 부탁한 할머니
성사받은 후 곧바로 임종
우리 삶에서 우연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또한 바람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우연을 단순한 우연으로만 치부할 수 없고 바람을 그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작은 소망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많은 부분 우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경우가 있고 바람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부지부식간에 이뤄지는 경우도 우리 삶 안에 엄연히 존재한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체험에서는 우연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고, 바람은 반드시 성취된 사건이었다.
7년전 보좌신부로서 사목하던 중에, 외출해서 사제관으로 돌아오자 마자 갑작스런 전화를 받게 되었다. 병자성사를 청하는 한 형제님의 간곡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본당 구역의 신자는 아니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제님의 본당신부님과 연락이 어려운 상태였던 것 같다. 병자성사 후에 지금의 상황을 그 본당 신부님께 알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간을 다투는 상태인 것 같아 얼른 병원으로 달려갔다.
약속된 입원실로 가보니 한 할머니가 의식 없이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계셨다. 그 옆엔 전화를 걸어온 형제님과 그 가족이 그 분의 임종을 준비하고 있는 듯 했다. 의식이 없으시기에 영성체 없이 병자성사를 도유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전화를 주신 형제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그 이야기 가운데 어머니가 종종 의식이 깨어 있을 때 신부님을 모셔와서 병자성사를 꼭 받게 해달라는 말씀을 유언처럼 누누이 하셨다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참 신앙이 돈독하셨던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그나마 의식은 없으셨지만 숨을 쉬시며 살아계셨던 할머니가 병자성사를 드린지 1분도 채 안되어서 숨을 거두신 것이다. 모두가 당황스러웠고 돌연 그 가족은 슬픔에 잠겨 울기 시작했다.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그 할머니는 사제를 기다린 것이었을까? 모든 상황이 이해된 나에게는 단순한 우연으로만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하느님께서 의도적으로 만드신 필연의 사건으로 인식되었고, 할머니의 작은 소망을 하느님께서 직접 이뤄 주신 은총의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는 것을 지금도 느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 안에서 일어나는 우연적인 사건들을 단순한 우연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필연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아마도 모든 삶 가운데에 계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바람이 작디작은 소망에 불과하겠지만 언젠가 여러 가지의 형태로 하느님께서 직접 이뤄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면 어떨가? 그렇다면 아마도 하느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유승학 신부(인천교구 청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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