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많지만 교회내 공간, 프로그램은 부족
이용자 배려 원스톱 안내 시스템 등 도입을
“열심히 일한 당신 기도하라”(Ora et Labora, 기도하고 일하라).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 중 하나가 바로 노동과 기도(묵상)의 병행이다.
그런데…. 정작 ‘시간’이 없다. 가장은 매일 야근과 회식, 업무에 몸 추스릴 짬이 없고,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책과 씨름해야 한다. 언제 실직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쉬고 싶다’는 말을 내놓고 자신 있게 할 직장인은 없다. 발에 땀 나도록 뛰어 다녀도 빠듯한 상황에서 쉴 수 있는 여유를 부릴만한 사장님, 또 영업사원은 얼마나 될까. 이쯤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치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쉬며 기도해야 한다.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간’(루카 4, 1)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평온하고 조용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디모 2, 2)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과 몸이 함께 ‘쉬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불교 신자들과 달리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하며 쉴 공간과 프로그램 내용이 적다는 데 있다. 불교계의 대표적 불교 문화 영성 체험 프로그램, ‘템플 스테이’(Temple Stay)에 대한 불교 신자 및 일반인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전국 100여 사찰에서 운용되는 템플 스테이 체험 인원은 불교 측 공식 자료에만 연간 5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게다가 그 참가자 수도 매년 1만명 이상씩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템플 스테이의 이 같은 인기 비결은 불교계가 오랜 기간 노력해온 ‘현대문화와 불교 문화의 접목’이 성공했다는 평가다. 길상사 덕조 주지 스님은 “불자나 그리스도교 신자, 혹은 무신론자를 막론하고 현대인들은 대부분 영성적 고갈 상태에 처해있다”며 “불교계뿐 아니라 종교계가 문화적, 영성적 접근을 통해 맑고 향기로운 영혼과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가톨릭의 경우, 2000년에 이르는 풍부한 영적 문화 유산이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선 피정 시설 관계자들은 “개인 피정을 선뜻 결심하는 신자는 극히 적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단체 피정이라도 강의와 교육이 중심이 되는 ‘설교형 피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쉼’을 주제로 하는 체험 피정 프로그램은 극히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신자들이 교리신학원이나 성경 공부 프로그램, 각종 영성 강좌 등 체험형 프로그램이 아닌 강의형 프로그램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수원교회사연구소 정종득 소장 신부는 “지금까지 교회는 주로 신앙을 가르친다는 관점에서 신자들에게 접근한 점이 없지 않다”며 “이제는 신자 스스로가 몸소 체험하고 깨닫게 하는, 불교의 템플스테이와 같은 체험형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순천 예수회 영성 센터 유시찬 소장 신부도 최근 센터 축복식을 가진 후 “영성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영성의 참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교회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 한 바 있다.
관계자들은 가톨릭 문화 영성 프로그램 개발에 사용될 ‘도구 영성’에 대해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한국교회 순교 영성 ▲수도회 영성이 바로 그것. 이를 거꾸로 말하면 전국의 각 순교 성지와 수도회들이 이러한 가톨릭 문화 영성 체험 프로그램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순교성지와 수도회 피정 센터(수련원)가 ‘도심을 떠나야 하는’ 영적 휴식에 적합하다는 것도 이같은 여론을 뒷받침한다.
기존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불교의 경우 전국 100여 템플 스테이에 대한 정보 및 예약이 전화 한통이면 가능할 정도로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한국불교문화사업단도 전국 43개 사찰을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로 지정, 숙박과 발우공양 등 단기간에 산사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에서도 템플스테이를 검색하면 누구나 쉽게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영적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일반인들의 템플 스테이 참가가 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천주교는 문화 영성 체험 프로그램이 산발적이고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여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참가가 어려운 실정이다. 신자들도 정보가 없어, 참가가 어려운 실정에서 비신자들의 참여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영적 체험 프로그램을 안내할 수 있는 원스톱 안내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가톨릭형 템플 스테이 프로그램 마련에 나서고 있는 수원교회사연구소 정종득 소장 신부는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며 “2000년 가톨릭 신앙의 정수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노력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또 “이같은 노력은 몇몇 순교성지나 수도회의 개별적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며 “교회 차원의 통합적 노력을 통해 일반인도 언제든지 쉽게 선택해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가톨릭 문화 영성 체험 프로그램
하느님을 몸으로 체험하면 어떤 느낌일까. 영성안에서의 제대로된 ‘쉼’을 원한다면 부지런한 ‘마우스 품’이 필요하다. 예수회를 비롯한 각 수도회와 하남 구산성지 등 많은 순교성지에서 다양한 영성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클릭’이 필수적이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우선 순천 예수회 영성센터의 피정 프로그램이 있다. 순천 예수회 영성센터(061-804-7000)는 이냐시오 영신수련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한 달, 8일, 2박3일, 1박2일 일정의 피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2박3일 혹은 1박2일은 주로 일반 평신도를, 한 달과 8일 피정은 성직자와 수도자, 영신수련에 관심있는 일부 평신도를 주요 대상으로 한다. 피정지도에는 유시찬, 이순경, 문재석 예수회 신부들이 나선다.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054-970-2000)도 본당 복사단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수도원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솔뫼성지(041-362-5021)와 구산성지(031-792-8540) 등 전국 각 성지의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솔뫼성지는 연중 미사와 피정을 통해 신자들에게 영적 활기를 제공하고 있으며 구산성지도 7월27~31일까지 순교자 체득학교를 개최한다.
이밖에 인천 성 안드레아 피정의집(032-465-0835) 등 전국 각 피정의 집도 다양한 자체 개인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자세한 전국 각 수도회의 피정 프로그램과 성소 체험 프로그램, 성지의 순교자 영성 체험 프로그램은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홈페이지(www.brothers.or.kr) 및 한국천주교 여자 수도회 장상연합회 홈페이지(www.nuns.or.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국 각 성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려면 한국의 성지(www.paxkorea.co.kr)를 이용하는 것이 편하다.
▨ “절에서 놀자”- 템플 스테이의 매력
템플스테이는 자연환경과 불교문화가 어우러진 사찰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체험하며 마음의 휴식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아침예불 종성을 들으며 깨어나서, 맑은 음식으로 공양을 하고, 단정히 앉아 마음을 비우는 참선을 통해서 정신적 풍요를 만들어 나간다. 때로는 고즈넉한 숲길을 산책하면서 일상의 집착을 잠시 벗어나기도 하고 차 한 잔을 음미하면서 서로 소중한 인연을 만들기도 한다. 1박2일 프로그램이 일반적인데, 사찰별로 정통 등 만들기, 다도, 선체조 등 색다른 프로그램을 첨부하기도 한다. 이같은 템플스테이가 일반인에게까지 인기를 끄는 비결은 대체로 3가지로 요약된다.
▲템플스테이는 강의형 프로그램이 아닌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템플스테이는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교리나 가르침을 최대한 줄여 거부감을 없앴다. 그저 함께 생활하고, 보여주고, 스스로 느끼게 한다. 어떤 휴가를 통해서도 체험하지 못하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휴식 추억’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 문화의 적극적 활용 내지는 현대 문화와의 접목이다.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불교 문화로는 참선체험, 전통 사찰식 식사법 체험, 선(禪) 체조, 다도(茶道), 전통 등(燈) 만들기 등이다. 템플스테이에는 이같은 요소들이 빠지지 않고 적극 활용된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사람들은“절에 가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는데 참 독특했어”라는 자랑을 꼭 한다.
▲접근의 용이성을 들 수 있다. 클릭 한번으로 전국 어디서라도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전화 한 통화만 하면 전국 사찰의 템플 스테이를 연결해 주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거의 연중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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