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자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1위. 지난 20년간 자살 사망률은 매년 5%씩 늘어 자살 증가율 또한 1위를 기록했다. 급증하는 자살은 개인의 생명상실과 가족의 비극일 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공중보건학적인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사회 각계 전문가들은 이렇게 자살이 증가하는 원인으로 우선 사회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와 생명경시풍조를 꼽는다. 또 여러 상황이나 각 연령층에 적합한 생명존중 교육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자살에 대한 국민태도조사에 따르면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자살충동률이나 자살에 대한 의식은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주교)와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회장 김홍)는 우리나라 자살 문제의 점검과 예방책 논의를 위한 공동포럼을 7월 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마련했다.
‘급증하는 자살,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열린 이번 공동포럼은 생명위 정기 학술세미나와 언론인협 제7회 가톨릭포럼을 겸한 자리로 진행됐다.
이번 포럼은 무엇보다 자살예방을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 중요성에 대해 실질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자리로 의미가 깊다. 또 포럼에서는 실제 치유와 예방교육 사례 프로그램에 대한 발표도 이어져 관심을 모았다.
특히 이날 발표와 토론에 나선 사회각계 전문가들은 자살 예방과 관련한 정책적 배려와 원인 규명에 대한 연구가 필수라는데 목소리를 모았으며, 생애 주기별 특성에 맞는 대책 마련과 단계별 자살 예방교육이 필수적으로 실시돼야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포럼에 참가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은 격려사에서 “특히 매스미디어는 현대인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사랑과 생명의 문화를 확산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에 예언자적 목소리를 적극 전달하길 바란다”고 독려했다.
한편 정부에서는 현재 종합적인 자살예방계획을 수립, 전국 165개 지방자치단체 내 정신보건센터를 활용해 자살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아울러 지역주민들에 대한 정신건강증진서비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2010년까지 시·군·구별로 각 1개소 이상 정신보건센터를 확충할 예정이다.
다음은 각 주제발표 요지다.
신질환 치료·지원 등 사회안전망 구축해야
■ 우리나라 국민의 정신건강과 자살실태 및 정책대안-서동우 원장(한별정신병원 진료원장)
자살은 공중보건학적인 문제로 발전했을 뿐 아니라 자살의 중요한 원인인 우울증 역시 전 지구적인 보건문제로 부각됐다.
우리나라 연령별 사망원인 순위에서 자살은 20대와 30대에서 사망원인 1위이며, 10대와 40대에서 사망원인 2위, 50대와 60대에서 5위를 차지했다.
생산성 높은 젊은 계층에서 사망원인이 높아 자살은 다른 질병보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 주는 사회경제적 부담이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생명과 자살에 대한 국민들의 태도는 그 사회의 자살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행동 및 태도결과를 보면 전체 국민의 33.4%가 살면서 한번이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국민의 52%가 우리나라에는 생명경시풍조가 있다고 했고, 95.9%는 자살예방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활동해야한다고 응답했다.
자살에 대한 매스미디어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74.8%에 달하는 국민이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자살이 유일한 해결책인 상황이 있다고 응답하거나, 개인이 자살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도 각각 24.2%, 38.7%나 되었다. 특히 저소득층과 노인연령층에서 허용적 태도의 비율이 높았다.
자살예방을 위해서는 정신병리에 의한 자살과 이기적 자살감소를 위한 여러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국민이 적절한 치료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신건강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돼야 한다. 둘째 사회가 보다 건강해져야 한다. 셋째 어렵고 척박한 사회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아가 있다면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시도하는 이기적 자살을 감소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하는 고통 만큼의 깊이와 감동을 주는 문화와 종교가 있었으면 한다.
연령별 자살요인 파악해 사회·종교·문화적 접근
■ 청소년부터 노인까지 생명사랑문화 프로그램- 김종임 교수(충남대 간호학과)
연령대별로 자살의 특성에 관해 알아본 결과 청소년 자살은 개인의 취약성 요인 중 문제행동과 스트레스가 중요한 요인이었다. 청소년과 청년의 자살예방을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성인과 노인은 정신건강문제와 신체건강문제가 가장 높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는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및 건강관리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각 연령대에 따른 자살의 특성을 고려한 사회적, 종교적, 문화적 접근 전략의 생명존중 인식 제고와 더불어 다양한 생명사랑 프로그램의 개발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전 생애 주기별로 특성에 맞는 자살예방대책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면 아무리 커다란 스트레스가 오더라도 소중한 생명을 훼손하면서 현실을 도피하려는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산하 탈리다쿰센터에서는 이러한 자살예방을 위한 생명사랑 문화콘텐츠로 청소년부터 노인을 대상으로 한 행복 예술테라피(Happy Art Therapy, H.A.T)와 베하스(Be Happy and Strong, BeHaS)운동 등 다양한 생명수업 프로그램들을 관리, 운영해오고 있다.
H.A.T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 미술, 무용, 연극, 문학 등 다양한 예술매체를 치유적인 도구로 사용해, 개개인의 고유한 예술적 창의성과 잠재력을 일깨워 전인적인 성장을 돕고 삶의 행복감을 일깨우는 목적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이다.
또 베하스(Be Happy and Strong, BeHaS)는 글자의 뜻 그대로 기쁘고 건강한 삶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이다. 주로 골관절염으로 만성통증에 시달리는 중장년층과 노인의 건강증진을 위해 통증 증상을 완화시키고 더불어 생명존중, 자존감 증진, 나와 더불어 남을 배려하는 정신의 향상을 목적으로 진행된다.
죽음 제대로 이해하면 자살 시도할 수 없어
■ 자살예방교육 수강생의 의식변화- 오진탁 교수(한림대 철학과)
자살사망자 급증도 문제지만, 여러차례 실시한 자살충동에 대한 조사결과를 감안해 보았을 때 자살률 증가보다 경제적, 사회적 상황의 악화로 인한 자살충동자와 자살예비군의 양산이 크게 우려된다.
현재 자살률이 높은 것보다도 ‘자살이 해결책이 된다’ ‘자기 판단에 따라 자살할 수 있다’ ‘죽으면 고통도 끝난다’ 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이 많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아무도 죽음이나 자살에 대해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막연하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다. 자살문제를 미봉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사회에서는 자살률 증가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들리지만 죽음문화의 부재를 우려하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자살현상만 문제삼고 죽음이해와 그 방식을 도외시한다면 자살사망률의 증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살예방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도 자살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죽음에 대한 오해와 편견, 불행한 죽음방식에 대한 심층적 반성과 함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올바른 생사관이 정립되어 우리사회에 성숙한 죽음의 문화가 정착된다면, 자살사망률은 자연히 감소될 것으로 본다. 죽음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면 결코 자살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편적인 자살예방 교육이 필수적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살예방은 자살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개입해 예방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가 자살할 지 예측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위기개입식 자살예방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 의심스럽다.
죽음과 자살에 대한 바른 이해에 근거한 자살예방교육이 학교 교육과 사회교육에서 실시되지 않는다면, 다른 다양한 자살예방 노력 역시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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