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음반마다 실패…결국 파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일본에 다녀온 공백기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컸다. 사람들의 기억에 ‘박진도’는 이미 잊혀진 가수였다. 신인가요제 입상 후 한창 인기를 끌던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일본 가요계라는 ‘큰 물’을 경험하고 온 터였다. 게다가 노래 실력 하나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텔레비전에 트로트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에게 “저 가수는 나보다도 노래도 못한다.”라고 호기롭게 큰소리치던 나였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가수가 되고 싶었다. 나라고 못하란 법이 없었다. 더 이상 무명 밤무대 가수로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정면승부를 하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얼마 되지 않던 돈과 부모님과 동생 등 친척들의 돈을 이리저리 끌어 모아 음반을 냈다. 하지만 세상은 냉혹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딱 한번만 성공하면 되는데….”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다시 부모님과 형님 그리고 가족들이 살던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음반을 냈다. “제발 이번만은….” 하지만 하늘은 나의 소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음반 발매 후 하루 하루는 지옥이었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처절한 실패였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고통을 받는지….”
그 때 멈추었어야 했다. 더 이상 음반 대박의 꿈을 접었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속에는 온통 돈 욕심과 명예욕만 가득해 있었다. 난 멈추지 않았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치 중독에 걸린 사람처럼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하며 음반을 계속해서 냈다.
그러나…, 그 때 마다 음반은 실패를 거듭했다. 새 음반들은 나올 때 마다 얼마지나지 않아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밤무대 활동이라도 하면서 음반 제작에 매달렸으면 상황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나는 귀신에 홀렸는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음반 제작에만 매달렸다.
파산. 결국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만큼의 빚을 지고 말았다. 빚쟁이들이 집으로 들이 닥쳤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살던 집 두 채가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갔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형님께서 그 뒤를 따라 돌아가셨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가슴을 쳤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돌이켜 보면 음반 기획력이 부족했고, 시대를 읽는 눈이 부족했다. 세상이 흥겹고 빠른 트로트를 좋아할 때는 차분하고 서정적인 음반을 내놨고, 서정적인 트로트가 유행할 때는 빠른 템포의 음반을 낸 것이다.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치밀한 기획과 엄청난 홍보력이 필요한 음반 시장에 알량한 노래 실력 하나만 믿고 달려들었던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다. 지난간 일을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세상은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온통 암흑뿐이었다.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빚 때문에 다시 밤 무대 가수로 활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노래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조명과 화려한 무대 의상이 있는, 환호와 박수가 있는 가수 생활을 접는 다는 것은 나에게 죽음이나 다름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자살을 결심했다. 동생들과 가족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리며 집문을 나섰다. “아~.”그 때였다. 나는 내가 가톨릭 신자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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