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죽어야만 합니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난 신자였지만, 신자였다는 사실 조차 까맣게 잊고 살았던 망나니였다. 그랬던 내가 자살을 결심하는 그 순간에 신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낸 것이다.
신자가 된 것은 1990년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최장봉(요한.64)-조복순(체칠리아.55) 부부의 권유에 의해서 였다. 이 분들은 여성 그룹 SES 출신의 가수 바다의 부모님이시다. 최장봉씨와 조복순씨는 부천에 있는 한 야산에서 노래연습을 하면서 우연히 만났다. 하지만 같은 고향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함께 야간업소에서 공연을 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쉽게 친해졌다. 이분들이 참으로 훌륭한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분들은 20년 넘게 정기적으로 복지시설과 소외된 이웃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고 계셨다. 가수 바다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 부모님을 따라 무보수 공연에 참가하곤 했다. 나도 바다의 부모님들과 자주 함께 봉사활동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돼야해.” 고향 선배님의 명령(?)인 만큼 거절할 수 없었다. 인천교구 소사3동 성당에 나가 어머니, 동생과 함께 예비신자 등록을 하고 교리를 받고 바오로라는 새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대부님은 당연히 바다의 아버지가 서 주셨다.
하지만 난 신자로 살기에는 부족함 투성이었다.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마음은 콩밭에 있었다. 세례만 받았을 뿐이지, 신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신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생각들…. 신자가 된 이후에도 신자 이전의 삶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는 세례명인 바오로 사도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몰랐을 정도였다. 그래서 난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미사도 참례하지 않는 등 교회와 거의 담을 쌓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살을 결심한 이후 신앙을 기억해 낸 것이다.
‘그래 난 천주교 신자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대부님께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절두산 순교성지를 가르쳐 주셨다. 용기를 내서 어느 날 새벽, 절두산 순교성지를 찾았다.
그 때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죄인 중의 죄인이 거룩한 순교자의 땅에 발을 디디는 것 자체가 죄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임금님께서 사시는 큰 궁궐에 들어가는 배운 것 없는 종놈 처럼 그렇게 쭈뼛쭈뼛하며 성지로 들어섰다. 그리고 성모상 앞 봉헌 초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바쳤다.
“주님 내가 왜 태어났는지 알려 주십시오. 주님~. 어머니도, 돈도, 집도, 가족도 모두 잃었습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내가 왜 태어났습니까. 내가 누구입니까.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대로 죽어야만 합니까.”
눈물이 끝없이 흘렀다. 입속에서 수없이 ‘살려달라’고 외쳤다.
얼마나 흘렀을까. 기도를 마치고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다리가 휘청거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간 30분이 흘러 있었다. 잠깐 동안 기도했다고 생각했는데…. 무릎을 꿇은 채 울면서 1시간 30분을 보낸 것이다.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더니 꺼져 버렸다. 라이터를 꺼내 불 꺼진 초 심지 하나하나에 다시 불을 붙였다.
절두산 순교성지에서의 54일 기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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