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위해 십자가지신 주님 은총으로 지금 여기서 의롭게 되도록 노력해야
오늘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조금 어려운 내용이 될지도 모르겠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자체가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천천히 들여다 보면 다른 서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내적 성찰의 희열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의로운 분이다.’
이것이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전체에 흐르고 있는 큰 주제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의로움이 하느님 안에만 머무르면 의미가 없다. 인간의 의로움과 연관이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그럼 이 의로움은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1장 17절을 보자.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복음은 인간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는 길이다. 그만큼 복음은 중요하다. 복음은 그리스도다. 따라서 그리스도에 의해 의롭게되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 22)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만 되면 사람은 의롭게 된다.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왜 의롭지 못한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 욕심과 자기 생각대로 살기 때문에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다.
의로운 하느님은 인간도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복음(그리스도)이 우리에게 왔다. 복음이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서 하느님처럼 우리도 의롭게 한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 의롭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인류 구원을 원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의로우신 분이 우리의 의로움과 구원을 원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롭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한다. 하느님 뜻이 아닌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교만하게 살면 의롭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하느님의 의는 과연 무엇을 담고 있을까. 바로 자비와 용서다. 하느님은 무한이 우리를 용서하신다. 하느님의 용서는 인간적 차원(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용서의 한계)을 넘어선 하느님 차원의 용서다. 무한대의 차원, 초월적 차원의 용서다.
초대 교회에 안셀무스라는 대학자가 있었다. 이 학자는 대리속죄 사상을 주장했다. 어느 날 아들이 잘못을 해서 법정에 섰다. 그래서 징역 12년 언도를 받았다. 법정에는 부모도 함께 있었는데 그 부모가 말한다.
“재판관님 제가 대신 옥살이를 할 테니 미래가 있는 제 아들에게는 기회를 한번 주십시오. 내가 대신 속죄를 할 테니, 아들 대신 고통을 받을 테니 너그럽게 재활의 기회를 주십시오.”
이것이 대리속죄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우리 대신 고통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까지 죄를 용서하신다. 우리의 구원은 이런 방법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이러한 구원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이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구약시대에도 ‘하느님은 의로움이다’라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이사 46; 51, 8 참조)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지만 과거와 현재는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는 생활 속의 말과 행동은 모두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연결돼 있듯이 현재와 미래도 연결되어 있다.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의’를 묵상함은 결국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닌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의롭게 해주신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우리 인간들에게 은혜와 은총을 주시겠다는 말이다.
조금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의로운 하느님의 은혜는 모두 종말로 연결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생활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감옥에 대신 가는 부모님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그 십자가에 매달리신 분은 거룩하시고, 한없이 의로우신 분이다.
십자가에 무릎 꿇을 때 이점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십자가에서 내려다 보시는 그리스도의 의로움, 그 의로움을 묵상할 때 진정 구원의 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바로 ‘믿음’이다. 다음 주에는 바오로 사도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강조하고 있는 ‘믿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영통성령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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