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간 일치와 대화’ 노력 결실맺다
“카자흐스탄 가톨릭교회는 순교자들이 흘린 피로써 열매를 맺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카라간다’ 지역은 중앙아시아의 ‘로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유일한 가톨릭매체인 월간 ‘크레도(Credo)’의 편집장 미하엘라 흘라후로바 수녀(프란치스코 교육수녀회)는 카자흐 교회 소개를 부탁한 기자의 질문을 위의 두마디 말로 함축했다.
20세기에 들어선 구 소련은 사회주의로 전환하는 큰 변혁을 겪었고, 1917년 러시아혁명을 정점으로 모든 종교활동의 맥이 끊어졌다.
당시 혁명정부는 각 종교의 성직·수도자, 평신도 등 신앙인 대부분을 카자흐와 시베리아로 유배 혹은 강제 이주시켰다. 가톨릭신자들도 정치범 등과 함께 카라간다 감옥에서 무수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감금상태에서도 성직·수도자들을 중심으로 미사와 성사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블라디스 부코빈스키 신부 등은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지로 비밀 선교활동을 다니기도 했다. 또 많은 사제들은 로마 카타콤바에 비유할만한 지하땅굴을 파고 숨어 비밀리에 성사생활을 유지했다. 대략 1만여 명 이상의 신앙인들이 이때 피흘리며 스러져간 것으로 전해진다.
체포와 수감이 반복되는 현실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켜간 그 모습은 초기교회, 로마에서 자행된 박해 때와 사뭇 닮아있다.
카자흐 신자들은 현재의 교회모습은 지하교회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이들의 열정으로 맺은 열매라고 말한다. 특히 이 순교의 역사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꼭 전하고자 하는 신앙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성지개발에 큰 관심
이에 따라 카자흐 교회가 내·외적 복음화를 위해 최근 관심을 높이는 사목분야 중 하나는 바로 성지 개발이다. 카자흐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 신자들의 신앙심을 고취할 수 있는 영적 구심점이 적극 요청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순교자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현양노력을 구체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카자흐의 대표적인 순교성지인 카라간다에서는 해마다 수만명의 중앙아시아 지역 청년들이 순례의 여정을 잇는다.
이밖에도 카자흐 교회는 카미센카 지역의 크제스토코바 천주의 모후 성당, 솔탄디 지역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마리아 성당 등을 성지로 가꾸고 있다.
아울러 눈여겨볼 만한 또 한곳은 수도인 아스타나에서 500여 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조르노에 ‘평화의 모후 성모마리아’ 성지이다.
이곳은 우크라이나에서 추방된 가톨릭신자들이 모여든 작은 마을이었다. 인구 600여 명 남짓의 이 시골 마을은 놀랄만한 기적을 안고 있다.
1941년 혹독한 기후에 2차 세계대전까지 겹쳐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고통받던 때. 마을에서 5km 떨어진 황량한 초원의 눈이 3일 내내 녹아내리더니 거짓말처럼 호수를 만들어보였다. 그리고 어디서왔는지 모를 물고기들이 호수에 가득 차올랐다. 굶주림에 지친 수많은 이들의 배를 채워주기에 충분히 넘쳐났다.
이러한 기적과 같은 일을 경험한 카자흐 신자들은, 독립 후 이곳에 성당을 지었으며, ‘평화의 모후 성모마리아’를 카자흐와 중앙아시아의 주보로 모셨다.
또 오조르노에 성당에서 12km 떨어진 언덕에는 대형 십자가도 세워져 있다. 이 십자가의 위치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간 정도이고, 포르투갈 파티마와 일본 히로시마의 중간 지점이다.
지난 2002년부터는 오조르노에 성지에 2개 교구에서 파견된 사제와 수도자들이 상주하면서 성역화에 힘쓰고 있다.
한때 모든 종교가 박해를 받았던 카자흐는 이제 모든 종교가 환영받는 나라로 인식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20여 개 국가의 선교사들이 카자흐에 들어와 있으며, 법적 요건만 갖추면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또 카자흐는 ‘종교간 일치와 대화’의 모범으로도 세계의 주목을 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카자흐 국민은 131개 민족으로 구성돼 있으며 가톨릭은 물론 이슬람과 정교회, 개신교 등 종교인구의 형태도 다양하다.
‘종교 화합의 장으로’
그러나 수도인 아스타나에서는 각 민족과 종교인들의 만남의 장으로 마련된 ‘모든 민족의 어머니의 집 - 만남의 집’이 있다.
특히 일명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평화와 화해의 전당’은 아스타나시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유명 현대 건축가인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이 피라미드는 종교간.종파간 갈등을 불식시키고, 상호이해를 복돋우기 위한 상징물로 건립됐다. 지난 2006년 제2회 세계 종교지도자 회의 일정에 맞춰 개관한 피라미드는 오페라하우스와 대형 컨퍼런스홀을 갖추고 각종 종교행사를 위해 적극 개방한다.
높이와 바닥의 가로, 세로 길이 모두 62m의 이 최첨단 대형 건물의 4개 기둥은 ‘평화의 손’이라 이름붙여져 있으며, 카자흐 내 다양한 종교 관련 자료들도 갖추고 있다.
아스타나시의 랜드마크인 105m 높이의 바이테렉 타워(아스타나 타워)에서도 세계 종교지도자들의 세계평화와 일치,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상징물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도심 안에 종교간 화합과 일치를 위한 장소들이 마련된 것은 현 정부의 종교 자유 정책 덕분이다. 특히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모든 국민들은 종교의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재차 밝히고, 세계평화를 지향하며 ‘세계 종교지도자 회의’도 주최한다. 이에 따라 카자흐에서는 종교간 화합과 국제 안정 등을 주제로 2003년과 2006년 두차례에 걸쳐 세계 종교지도자 회의를 열렸다.
종교간 대화는 새로운 천년기에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매우 시급하고도 중대한 과제이다. 가시적인 내·외적 성과와는 별개로 현재 카자흐 정부의 이러한 종교 자유와 일치의 노력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부각되고 있다.
선교의 걸림돌 ‘무신론’
물론 카자흐 안에서의 신앙생활에 장밋빛 전망만이 펼쳐져 있는 것은 아니다.
선교지로서의 열악한 환경은 카자흐 교회가 부닥치는 힘겨운 현실이다. 무엇보다 구 소련 체제 때 굳어진 무신론은 선교의 큰 장애물이다. 카자흐의 이슬람은 온건파이긴 하지만 그 문화는 생활습관으로 뿌리깊게 퍼져있다.
각 지역별로 종교인들의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지만, 이슬람교와 비교하면 타종교는 알게모르게 차별을 많이 받는다. 가톨릭교회가 아직까지 카자흐에서 학교를 운영할 수 없는 것도 이슬람교도들의 반대 때문이다.
카자흐인의 기복적인 성향 또한 큰 장애물이다. 카자흐인들은 대게 병을 고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추진하는 어떤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종교를 찾는다. 실질적인 이익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찬 이들에게 곧바로 신앙의 성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후죽순 늘어 공격적인 선교활동을 펼치는 개신교회의 활동도 부담이 되고, 무엇보다 내적 쇄신을 위한 교회 내 신심·액션활동의 부족도 큰 과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안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끊이지 않고 울리는 기도의 소리이다. 카자흐의 모든 성당에서는 매일 묵주의 기도 소리가 이어진다. 공산정권의 박해 시절에도 묵주의 기도는 미사전례를 비롯한 모든 신앙활동을 대신하는 끈이었다.
이들의 간절한 기도가 더욱 큰 반향으로 중앙아시아를 넘어 세계속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유일한 가톨릭매체 월간 '크레도'
현재 카자흐스탄 안에서 정부에 정식 등록된 언론사 숫자만 꼽아도 1000개가 넘는다. 그러나 가톨릭 매체는 월간 크레도 단 하나 뿐이다.
‘월간 크레도’(Credo, 편집장 미하엘라 흘라후로바 수녀)는 카라간다 교구 주관으로 발행되는 카자흐 유일의 교회 언론이다. 전례력에 따른 기획물 뿐 아니라 교회 내 각종 행사와 소식을 종합하는 소식지로 중요성을 띈다.
지난 1995년 창간된 이 잡지는 매월 4000여 부 정도가 인쇄돼 각 본당과 기관을 통해서만 신자들에게 전달된다. 아직 개별구독을 위한 인프라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
창간 당시에는 2쪽짜리 소식물로 인쇄됐으며, 현재는 총 32쪽으로 잡지 형태로 발행된다.
사진설명
▶아스타나 타워 전망대에 마련된 세계평화와 화합을 위한 메시지에는 세계 각 종교지도자들이 각각 서명을 했다. 아스타나 대교구장 토마쉬 대주교(가운데)와 김창남 수사 등이 지난해 카자흐스탄을 찾은 크레센치오 세페 추기경의 서명을 보며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월간 '크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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