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변화에 호흡 맞추다”
최근 교황청은 한국이 개발한 DMB 기술을 도입해 바티칸 라디오와 바티칸 텔레비전의 모바일 DMB 방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세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사용화한 지상파 DMB 기술을 과감하게 도입함으로써 교황청은 북미 지역이나 이탈리아보다도 오히려 더 빠르게 첨단 DMB 방송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흔히 가장 보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바티칸은 실제로 가장 첨단을 달리곤 한다. 세계적으로도 선두에 서 있는 한국의 정보기술에 대한 교황청의 각별한 관심은 시대에 뒤처지는 것처럼 오해되면서도 오히려 발빠르게 시대를 앞서가는 교황청의 정보화 마인드를 보여준다.
한국의 DMB 기술 도입을 계기로 교황청의 디지털화 노력을 살펴본다.
현대기술 도입 첫 공의회 ‘제2차 바티칸’
지난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현대 교회의 모습을 형성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쇄신과 적응’을 모토로 했던 현대 공의회답게 이 공의회에서는 당시로서는 낮설었던 다양한 첨단 기술들이 폭넓게 사용됐다.
공의회에서 사용했던 전등 불빛, 전화, 녹음, TV와 자동 정보 처리 등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들이었다. 바로 전 공의회였던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70)에서는 이런 기술들은 전혀 사용되지 못했다.
주세페 알베리고와 조셉 코몬차크 신부가 공동으로 저술한 5권짜리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역사’에 따르면 공의회가 열렸던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에는 벽면을 따라 총 42개의 대형 투광 조명등이 설치됐다.
음향면에서는 총 68개의 대형 스피커와 37개의 마이크가 설치됐는데, 그 중 13개는 교황과 주요 임원들, 그리고 전례 진행자와 합창단 등이 사용했다. 4개의 녹음기가 설치됐고 그 중 2개는 24시간 내내 대성전 안에서의 모든 음향을 녹음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설치돼, 전세계에 중요한 공개 행사들의 장면을 제공하는데 활용됐고, 1개의 폐쇄회로가 설치돼 교황이 항상 전체 공의회의 진행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됐다.
공의회의 진행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가 쏟아지는 정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당시 사용된 것이 ‘Olivetti-Bull’ 펀치 카드 시스템. 이 시스템을 통해 참석자들의 출결 사항이 체크됐고, 투표 결과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첨단매체 선두 ‘사회홍보평의회’
교황청은 공의회에서 세상에 대한 열린 자세를 견지하면서, 첨단 기술들을 복음화와 사목활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현대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교황청 안에서 가장 민감하게 현대 문명의 발전에 적응해온 부서는 사회홍보평의회이다. 사회홍보평의회는 현대의 사회홍보매체의 원활한 활용을 목적으로 설립된 부서답게 다양한 첨단 매체들을 적극 수용했다.
평의회는 특히 정보처리기술과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에 따른 정보사회로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이러한 매체들을 복음화에 활용하기 위한 교회의 노력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신문, 출판 등 인쇄매체는 물론 라디오와 TV 등 전통적인 홍보매체들의 변화 뿐만 아니라 인터넷, 휴대전화, 위성통신, 케이블 TV 등 새로운 통신 및 홍보 수단, 그리고 그 융합으로 나타난 첨단 수단들을 교황청의 각종 활동에 도입해왔던 것이다.
평의회는 지난 1975년 성년 거행에 앞서 1974년 성탄 때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여는 예식을 처음으로 방송으로 중계했다. 이후 평의회는 교황이 직접 주례하는 굵직한 교황청 예식들을 중계방송해왔고, 지금은 성탄 뿐만 아니라 성 금요일과 부활절 미사를 포함해 매년 4차례 이상, 전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되도록 하고 있다.
사회홍보평의회는 특히 바티칸에서의 모든 라디오 및 TV 방송, 영화 제작, 사진 촬영 등의 업무를 관할하고 있는데, 평의회의 특성상 교황청에서의 모든 첨단 커뮤니케이션을 시범적으로 활용한다. 실제로 교황청에서 국제가입전신(telex)와 팩스,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한 최초의 부서이다.
지금도 사회홍보평의회는 첨단 매체가 개발되면 그 도입에 앞서 가장 먼저 사용하는 대표적인 부서이다.
아이팟 사용하는 ‘인터넷 시대 교황’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인터넷의 확산이 이뤄지고 바야흐로 인터넷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면서 정보사회의 도래는 본격화됐다. 교황청은 199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성탄 메시지를 시작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교황청 사이트는 개설하자마자 당시로서는 최고의 히트수를 기록했고 지금까지도 가장 인기 있는 사이트로 자리를 잡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터넷을 사용한 교황으로 기록됐고 2001년에는 교황이 직접 사용하는 전자메일이 일반에 공개돼 엄청난 편지들이 교황의 메일 계정으로 쏟아지기도 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후 새로 교황으로 선출된 베네딕토 16세 교황 역시 사이버 세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였다. 2005년 4월 21일 교황청이 공개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메일 주소는 benedictxvi@vatican.va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미 추기경 시절부터 인터넷 팬클럽을 갖고 있었다.
특히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첨단 기기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지난해 3월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은 새 교황이 최첨단 정보통신 제품인 애플 컴퓨터의 아이팟을 장만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첨단 제품 사용에 익숙한 교황은 평소 CD 플레이어를 즐겨 사용하고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임할 당시에는 노트북 PC를 이용해 문서 작업을 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디지털화 ‘바티칸도서관·박물관’
정보처리기술의 도입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부문이 바로 교황청이 소장하고 있는 엄청난 양의 자료들의 정리이다. 바티칸 도서관은 600여 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도서관이다.
바티칸도서관은 지난 1997년 IBM측에 도서관의 모든 장서와 자료들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위탁했다. 1451년 교황 니콜라스 5세가 설립해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문서와 책들을 소장한 바티칸 도서관에는 당시 약 150만권의 장서와 15만여 점의 육필 원고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관리와 경비의 어려움으로 전세계에서 단지 2000여 명의 학자들만이 매년 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모든 자료의 디지털화를 지향해 추진되고 있는 바티칸도서관디지털화 프로젝트는 극소수의 학자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던 소장 자료들을 첨단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해 즉시 검색하고 참조, 연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인 계획으로 평가됐다. 이 계획에는 바티칸도서관측과 함께 IBM, 브라질의 교황청립 리오데자네이로 대학이 함께 참여했다. 현재 바티칸 도서관은 자료의 디지털화를 통해 보다 손쉽게 자료를 찾아볼 수 있도록 한데 이어, 지난 2004년에는 무선주파수(radio frequency) 검색 시스템을 완비해 컴퓨터칩을 이용해 자료를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시스템에 의해 만약 장서가 잘못 꽂혀 있거나 분실되면 즉시 경보음이 울림으로써 자료의 소실을 막을 수 있다.
바티칸의 유명한 박물관 역시 디지털화에 능하다. 지난 2003년 바티칸박물관의 야심찬 멀티 미디어 프로젝트를 통해 오늘날 바티칸 박물관의 소장 작품들은 인터넷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5년간의 작업을 통해 완성된 바티칸 박물관 웹 사이트를 통해 전세계의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미켈란젤로, 라파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의 작품들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그림들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설명
▶2005년 4월 1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대형 TV 화면으로 콘클라베에서 추기경들이 선서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2003년 전면 개편된 바티칸박물관의 새 웹사이트를 한 기자가 바라보고 있다. 첨단 매체의 활용에 적극적인 교황청은 박물관의 모든 자료들을 디지털화해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해 3월 3일 바티칸라디오 방송국을 방문해 생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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