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역사 배우자” 열기 ‘후끈’
주보에 ‘다시보는 인천교구’‘…흔적을 찾아서’ 연재
순교영성 선교영성 고취시켜 교구민 ‘하나’로 묶어
교구 설정 50주년 준비의 해
올 한해 인천교구(교구장 최기산 주교)의 최대 화두는 ‘교구 설정 50주년 준비’이다. 교구는 오는 2011년 설정 50주년을 맞는다. 이에 따라 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우선 사목교서를 통해 “교구 설정 50주년을 기해 ‘창립기’에서 ‘성숙기’ 교회로 발돋움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아울러 교구는 처음 교구 설립 정신을 기억, 새 시대의 요청에 부합하는 존재양식을 모색하며 미래 동아시아 선교사명을 감당할 선교기반 마련에 교구 역량을 집중한다.
사목교서를 통해서는 내적인 재복음화, 영성심화와 함께 생명존중과 수호활동, 각 지구별과 본당별 공동체 활동 참여, 새복음화.사회복음화 등에 적극 동참할 것을 권고한다.
또 교구는 설립 50주년 기념 새 주교좌성당 마련에도 기도와 정성을 모으고 있다. 현재 성당은 신자수 40여 만명으로 부쩍 성장한 교구의 주교좌성당 역할을 하기에는 턱없이 협소한 실정으로, 새 성당 건립은 복음화를 향해 열정을 모으는 교구민들의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미래선교 밑거름 다져
특히 현재 교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활동으로 ‘순교영성’과 ‘선교영성’을 북돋우는 교구 역사의식 조명과 역사자료 정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여정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짚어, 자기 복음화는 물론 이웃 복음화의 근간으로 특히 중요성을 띈다. 또 교구사 재조명은 선조들의 신앙 열정은 물론 선교 전략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기회로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에 따라 교구는 구체적으로 매주 발행하는 주보를 통해 ‘2011년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특집- 다시보는 인천교구’, ‘교구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 등을 연재 중이다.
이와 함께 교구는 역사상 처음으로 교구 차원의 시복시성을 추진한다. 시복시성은 교구민은 물론 지역민들의 복음화와 영적 성숙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진행된다.
인천교구 관할구역은 한국교회 창설부터 뿌리깊은 복음의 역사를 지닌다. 천주교 도입의 관문이었고, 근 100여 년간 이어진 박해 안에서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쓰러져간 지역이다.
인천 지역에서 언제 첫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승훈 일가와 황사영의 행적을 통해, 인천과 강화지역에는 비교적 일찍부터 복음이 전래된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교회 창설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승훈은 인천에서 참수당해 묻혔으며, 이곳에서 이승훈의 아들 택규와 신규가 생활하고 참수 후 안장됐다.
또 강화는 황사영이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뿐만 아니라 인천.강화 출신의 치명자들도 다수 있었으며, 이 지역 출신은 아니지만 교구 내 지역에서 치명한 증거자들도 많다.
그러나 교구 내에는 오랜 기간 신자들이 가까이할 수 있는 성지가 갖춰지지 않아 순교자 현양을 향한 활동 등에 아쉬움도 있었다.
갑곶성지의 경우는 전담사제도 두고 기도공간으로 새 모습을 갖췄지만, 진무영성지와 순교자 9명이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제물진두 등은 아직 개발의 삽도 뜨지 못했다. 인천 장수동에 위치한 이승훈의 묘는 유해가 천진암 성지로 옮겨간 후, 비석과 가묘만이 남아있다. 이러한 현황에서 최근 진행되고 있는 교구의 역사와 순교사, 각 본당사를 되짚어보는 노력은 전 교구민의 공동체성을 강화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교회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역사·주인의식을 고취하는 데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역사의 재조명을 통해 신자 개개인의 ‘순교영성’과 ‘선교영성’이 더욱 굵은 열매로 영글어가길 기대해본다.
인천교구 홍보실은 지금?
“신자들 제보에 큰 기대”
올해 들어 인천교구 홍보실(담당 임현택 신부) 담당자들은 ‘2011년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특집-다시보는 인천교구’ 기획취재로 매주 분주하다.
이 기획연재에서는 기존 밝혀진 교구사 뿐 아니라 각 본당사를 다시 되짚어 보다 충실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또 취재 중에는 교회유물을 수합할 뿐 아니라 다양한 역사적 일화도 체록한다.
홍보실 담당 임현택 신부는 “지난 1월부터 연재되는 교구사 연재물들은 교구민들의 역사적 관심을 환기하고, 교구와 각 본당간의 연결 뿌리를 찾아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특히 이 기획연재는 청소년과 청년들의 역사교육의 기회로도 적극 활용된다. 청년들의 경우는 연재 내용을 개인 블로그 등에 적극 올리며 관심을 표현하고, 본당 주일학교별로 특별한 유물이 소장된 성당 등을 순례하는 경우도 늘어가고 있다.
또 매주 주보에 기사가 나가면 매주 신자들의 제보와 의견이 다양하게 교구 홍보실로 전해진다. 덕분에 그동안 잘못 알려졌던 역사적 사실 등이 정정되는 사례도 많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주보를 보고 올바른 역사 정리에 도움이 되고자하는 신자들의 자발적인 발걸음으로 맺은 결실이라 더욱 의미깊다.
홍보실에서는 ‘다시보는 인천교구’를 올해말까지 연재하며, 앞으로 사이버 박물관 구축과 각 본당 유물전시회 등도 추진할 예정이다.
■ 교구 첫 시복시성 추진 ‘청년사도 송해붕’
인천교구 김포지역 복음의 사도이자 증거자로 추앙받고 있는 ‘송해붕(세례자 요한, 1926~1950) 선생’은 인천교구가 교구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인물이다.
지난해 12월 발족된 교구 시복시성추진위원회(위원장 이준희 신부) 산하 역사위원회는 현재 송선생의 제자와 이웃 신자, 관련 성직, 수도자 등 증인 인터뷰 등 송선생의 행적 증언자료 수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송선생은 “몽매한 민족을 깨우치고 하느님의 존재를 알려서… 내 나라 삼천리 강토에 하느님 나라가 건설되도록 선교에 앞장서리라”고 외치며 선교 열정을 불사르던 ‘청년사도’였다.
덕원신학교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온 송선생은 이후 김포 지역 곳곳에서 교리교육 등을 활발히 펼쳤다. 특히 그의 활동은 단순히 ‘목숨 바쳐 신앙을 지킨’ 것 뿐 아니라 ‘목숨 바쳐 선교’한 모습에서 현대인들에게도 큰 모범이 되고 있다. 야학을 운영하며 쉴틈없이 지역을 순회, 일반대중들의 복음화에 앞장선 송선생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천주교가 마을에 전파되는 데 반감을 가진 주민 일가의 밀고에 공산주의자로 몰려 총살형을 당했다.
그의 유해는 현재 고촌성당에 안치돼 있으며, 지난해 송해붕 선생의 삶과 영성을 엮은 전기 ‘스물넷, 못다 사른 불꽃’(185쪽/에우안겔리온)이 발간된 바 있다.
시복시성추진위는 올해 안에 증언자료 수집 등을 마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청원과 기도운동 등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진설명
▶왼쪽부터 설립자 김영식 신부와 부평 성모자애병원 의료진들
▶답동성당 종 축성(1900.4.17)
▶해성강습소
▶덕적도 본당 축성(1966.12.14) 장면.
▶교구 홍보실 담당자들이 기획 ‘다시보는 인천교구’ 취재를 위해 회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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