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받은 사랑 이젠 나눠야죠"
죽을고비 수차례 모면…신앙 통해 새삶 찾아
아르바이트·학업 병행하며 복지관 등서 봉사
“저를 어떤 도구로 쓰려 하시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늘 당신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생각에 용기와 힘을 얻습니다.”
약간은 수줍은 듯한 표정이면서도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변난희(모니카.27.서울 종로본당)씨는 말 그대로 씩씩한 처녀였다. 말씨는 물론 얼굴에서도 자신감이 묻어나는 변씨에게는 자신에게 따라붙는 ‘새터민’이라는 수식어가 십자가이자 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같은 존재로 다가가는 듯했다.
한국에서의 생활 꼭 5년째, 변씨에게는 그간 벌어진 모든 일이 주님께서 마련해두신 것이라는 확신이 적잖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간 넘나든 죽음의 사선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데다 그때마다 주님의 손길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주님의 뜻이었을까, 10년 전인 1997년 급성 전염병인 파라티푸스에 걸려 한달 가까이 사경을 헤매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을 때 우연히 집에 들른 오빠의 등에 업혀 처음으로 압록강을 건넜다. 근근이 신병을 치료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이듬해 2월 다시 중국 땅을 밟아야만 했다. 이후론 줄곧 견디기 힘든 고통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숨결을 더욱 또렷이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오빠가 소개해준 이가 다름 아닌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조선족 할머니였다. 친딸처럼 보살핌을 받으며 차츰 건강을 회복해가는 순간에도 그를 노리는 손길이 옥죄어왔다. 신자들의 도움으로 또 다시 몸을 피해 의지하게 된 곳이 양로원이었다.
“처음으로 노인복지라는 걸 체험하는 순간이었죠. 어르신들과 함께 할 때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봐도 주님의 안배에 눈물 나는 때였습니다.”
노인들을 보살피는 가운데 틈틈이 외국인신부의 도움을 얻어 교리공부를 하며 신앙에 눈을 떠갔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코앞에 닥친 위험에 2002년 1월 성당에서 만난 신자의 도움으로 한국행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오기까지 너무 많은 것을 받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같이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2002년 8월 하나원을 나온 후 얼마 안 돼 세례를 받은 변씨의 이후 삶은 나눔을 향한 길을 고르는 여정이었다. 새터민들의 사회적응 등을 돕는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며 2004년에는 그리스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인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낮에는 꼬박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생활이 이어졌다. 집에 돌아오면 밤 1시가 넘기가 보통이고 과제가 있을 때면 밤샐 때도 적지 않았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복지관 등 여러 단체에서 직장체험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아온 그는 자신의 눈에 아프게 밟히는 현실에 안타까움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새터민들에게 직접 고기를 주는 것보다는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게 무엇보다 절실합니다. 정신적 영적 도움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다독이고 보듬어 안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졸업을 한 학기를 남겨놓고 있는 변씨는 요즘 좀 더 자라난 자신의 꿈을 그리며 새로운 용기를 내고 있다. 중국에 있을 때부터 가슴 한켠에 뿌려진 가난한 이들을 위한 마음을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으로 실현해가고 싶은 것이다.
“주님께서 참으로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길 기도할 뿐입니다.”
다시 씩씩하게 일터로 향하는 변씨의 걸음은 이미 하느님을 향해 있는 듯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