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순위 1위 등극
2000년에 들어서자 새천년의 분위기에 편승한 때문인지 빠른 템포의 곡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히트한 대표곡으로는 ‘네 박자’ ‘사랑은 아무나하나’ ‘누이’ 등이 있다. 대세는 ‘흥겹고 빠른 음악’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어머나’‘무조건’등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당시까지 내가 발표한 ‘고향가는 유람선’(1998) ‘40대 부르스’(1999) ‘순애보’(2000)는 모두 느리고 애잔한 분위기의 음악이었다. 그만큼 많은 사랑을 얻지 못했다.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방송가와 음반계에선“노래 실력은 누구보다도 좋은데…”라며 ‘기획력’으로 승부를 걸라고 조언했다. 더 이상 애절한 가락의 느린 곡으로는 승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처음으로 빠른 곡을 선택했다. 바로 ‘야간열차’였다. ‘순애보’를 발표한 직후에 내놓은 야간열차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빠르고 고음의 노래였다. ‘배호 이후 최고의 중후한 저음을 가진 가수’로 평가받던 나로서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저음에서는 누구보다도 자신이었지만 고음을 과연 소화해 낼 수 있을지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야간열차가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야간 열차는 나를 ‘무명(無名) 가수’에서 일약 ‘유명(有名) 가수’로 바꾸어 놓았다.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래를 통해 많은 봉사활동을 하더니 드디어 그 복을 받는구나”라고 격려해 주셨다. 자고 일어나니까 스타가 되어 있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그동안 사람들이 “히트곡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말할 곡이 없었지만 이제는 ‘야간열차’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부분‘아하~ 그 노래’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야간 열차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40대 50대에서 특히 내 노래에 큰 호응을 보였다. 한동안 40대 50대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1순위 곡이 되기도 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지방 공연 후 식당에 들르면 얼굴을 알아보고 찾아와 “내 노래 18번이 야간열차”라며 사인을 청하는 일도 생겨났다. 하늘에 감사하고 땅에 감사할 일이었다. 평생 꿈꾸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한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야간열차가 트로트 부분 1위에 오른 것이다. 그날 난 밤을 새워 울었다. 그리고 수백번 수천번 하느님과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야간열차 이후 생활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했다. 서울과 지방의 방송국 출연과 각종 지방 공연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 때문에 차도 지금까지 몇 대 교체해야 했다. 그만큼 돈에 대해서도 여유가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난 점차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어갔다. 절두산 성지에서의 하느님과의 만남도 아득한 옛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매월 거르지 않던 복지시설 무료 공연도 바쁜 일정 때문에 차츰 빠지는 일이 잦아졌다. 그렇게 정신없이 ‘돈’과 ‘명예’를 쫓아 살아가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선 안되는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