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구원관 무엇이 문제인가
생계 학업 문제로 신앙생활에 무성의함 보여
영성수련 문화 확산 등 가톨릭 장점 살려야
▲윤기준(가명·바오로·39)씨. 유치원 다니는 딸이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다. 윤씨는 딸의 세례에는 아직도 별다른 관심이 없다. 딸이 태어날 당시, 부모님과 친지를 비롯해 주위 신자들이 딸의 유아세례를 권유했지만, 윤씨 생각은 달랐다.
“종교는 본인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부모가 강요를 해서 천주교를 다니는 것 보다는 스스로 선택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나중에 성인이 된 이후에 종교를 하나 가지도록 할 생각입니다.” 아내도 윤씨의 생각에 적극 찬성이다. 정작 윤씨 자신은 유아세례를 받았다.
▲김희진(가명·미카엘라·45)씨. 가톨릭 신자였던 언니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요즘 냉담중이다. 하지만 김씨는 언니와 아들의 냉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신앙은 본인이 원해서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언니도 언니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겠지요. 아들도 현재로선 학업이 우선입니다. 대학에 입학한 후 본인이 원할 때 성당에 다니도록 할 생각입니다.”
김씨는 6개월 전 한 이웃 신자의 권유로 3년 냉담을 풀고 현재 비정기적으로 주일 미사에 나가고 있다. 가톨릭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하지 않는 것 보다는 생활에 좀 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다.
신앙상담 전문가들은 앞에서의 윤씨·김씨 사례와 관련해 “가톨릭 신앙을 통해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신앙의 참 기쁨을 체험하지 못한채 미지근한 신앙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전형적인 낮은 신앙 정체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 가톨릭 신앙을 통한 구원을 확신하지 못하고, 또 신앙에서 오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신앙을 권유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신자 스스로가 가톨릭 신앙 안에서의 구원에 대한 확신이 적은데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신앙을 적극적으로 권유할 수 있겠습니까. 가톨릭 신자 중에는 심지어 사찰 등에 가면 종교적 평안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습니다.”
인천 성 안드레아 피정의 집 김태건 원장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가톨릭 신자들의 전교 의지가 타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또 쉬는 신자 비율이 늘고 있는 것은 가톨릭 신앙인들의 구원관이 확고히 서 있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또 “최근 피정을 위해 찾아오는 이들과 상담을 해 보면, 고해성사와 미사참례를 거르지 않는 신자들도 구원에 대한 의식이 희박하다는 사실에 놀란다”며 “구원에 대한 확신이 적다보니 타종교인과의 결혼, 친한 친구의 권유, 직장 상사의 권유 등 사소한 이유로 개종하거나 냉담하는 사례도 자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쉬는 신자의 증가 문제도 ‘흔들리는 구원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가 지난 3월 가톨릭신문 창간 80주년을 맞아 발표한 ‘가톨릭 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조사’에서 박문수 박사는 “냉담은 다원 중첩적인 한국인의 신앙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소속하고 있는 종교의 가르침과 삶을 깊이 내면화 하지 않는 소극성은 분명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자들 스스로도 냉담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고 있다. 수원교구 복음화국이 2002년 실시한 ‘신자들의 신앙생활 진단을 위한 의식조사’에서 냉담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신앙생활의 무성의’가 26.1%로 가장 많았다. ‘신앙의 무확신 및 무감동 때문’이라는 응답도 10.5%에 달했다.
통합사목연구소의 지난 3월 조사에서도 냉담 원인을 묻는 질문에 39.2%의 응답자가 ‘생계나 학업’을, 11.2%가 ‘신앙에 대한 회의’를 지적했다. 구원에 대한 낮은 확신과 흔들리는 신앙 정체성이 쉬는 신자의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비록 신자 개개인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그 해결책까지 개인적인 수준으로 한정시켜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박문수 박사는 “비록 냉담이(낮은 신앙 정체성이) 개인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 원인들은 교회의 구조적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며 “영세 초기의 신자들을 교회에 안착시키지 못하는 관리구조, 고해성사만을 중심으로 하는 냉담자 판별기준, 취약한 신자재교육 구조, 신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목대응 방식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은 구원에 대한 확신 부재 및 신앙 정체성 부족에는 유교 및 불교 문화가 강한 한국사회의 특성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상당수 가톨릭 신자들이 ‘반드시 가톨릭 신앙만이 아니라, 불교 등 타종교에 의해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불교 조계종 포교원이 2000년 발표한 ‘청소년 종교의식 조사’ 결과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어떤 형태로든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 는 질문에 가톨릭 응답자의 49.1%가 긍정적인 답변을 한 바 있다.
이쯤 되면 반드시 가톨릭 신앙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없게 된다.
물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른 종교들에서 발견되는 옳고 거룩한 것은 아무 것도 배척하지 않고 존중하고 있다.(비그리스도교 선언 2항 참조)
하지만 신학자들은 “이것(타 종교의 존중해야 할 옳고 거룩한 것) 때문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주님 말씀이 흐려지거나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진리이자 생명 그 자체인 그리스도의 복음은 다른 문화나 사상에 종속되지 않고 오히려 쇄신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지난 6월 29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공의회 이후 교도권의 가르침을 간추려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발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문서에는 ▲그리스도가 세우신 유일한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 ▲동방교회, 즉 ‘개별 교회들’은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를 가시적인 수장으로 인정하지 않으므로 결함을 지니고 있다. ▲종교개혁에서 생겨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성찬 신비의 참되고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고 있지 않으므로 가톨릭 교리에 따라 고유한 의미에서의 ‘교회들’이라고 불릴 수 없다 등이 주요 내용으로 들어있다.
이 문서는 이처럼 가톨릭 신앙의 정체성을 공고히 함으로써 전 세계 가톨릭 신앙인들이 구원의 길로 당당히 걸어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물론 신학자들은 ‘구원에 대한 지나친 맹신’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내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므로, 또 우리가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마태 7, 21 참조) 때문에 행실이 따르지 않는 지나친 믿음은 합리를 가장한 위선이나 맹신으로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학자들은 동시에 “구원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가 주님께 대한 신뢰를 빈약하게 하고 세상 가치관에 끌려 다니게 하는 만큼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신뢰하고 구원의 가장 확실한 보증인 성체성사를 오늘날 다시 한번 묵상할 필요가 있다”고 권하고 있다.
박문수 박사는 또 다른 대안으로 “가톨릭의 장점인 영성 수련문화를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회가 2000년 동안 간직하고 키워왔던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과 영성 생활방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널리 신자 생활에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체험하는 신앙은 그렇지 않은 신앙보다 강합니다.”
사진설명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참 진리요 생명임을 강조하기 위해 6월 29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공의회 이후 교도권의 가르침을 간추린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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