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화는 모든 이의 ‘공동 권리’
‘개인의 돈이라도 만인 위해 사용한다’는 정신 따라야
돈(錢), 말 그대로 ‘쩐의 전쟁’이다. 전쟁은 그나마 억지로 만들어내는 명분이라도 있다. 하지만 요즘 세태는 돈 앞에선 전쟁 그 이상도 불사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돈 앞에선 인륜도 없다.
최근 한 아들이 흉기로 부모를 잔인하게 찔러 살해하고 누나들 까지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식 투자 등으로 수 천만원의 빚을 졌다는 아들은 사건 전 자신과 어머니, 누나 두 명 명의로 사망시 최고 6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생명보험에 가입했다고 한다.
누가 이 아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가족이 함께 보는 드라마에서 “사랑이 없어도 돈을 위해서라면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것이 요즘 세태다. 그 돈 때문에 사람이 자살하고, 가족이 붕괴된다. 돈이 도대체 뭐길래….
예수 그리스도는 재물에 탐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헛된 것인지를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 16~2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 19~31) 등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예수는 무소유 정신을 모든 이들에게 원하지는 않았다. 부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물적 도움도 받았다. 베드로도 배를 소유하고 그 배로 고기를 잡았다.(마르 4, 35~41)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도 사유재산과 이윤의 추구를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 재화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그것도 최소한이 아니라 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충분히 재화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넉넉한 재화를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했다.(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69)
그러나 하느님의 선물로서 재화를 획득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땀흘려 일한 정당한 노동의 기쁨을 알고 과도한 사행성 투기에 몰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다.
물론 하느님의 선물인 재화의 풍요를 누리는 것은 허용될 뿐만 아니라 권장되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재산권과 소유권을 절대적으로 양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재화는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서 그 사용권은 모든 이의 공동 권리이다.
따라서 개인의 돈이라도 만인을 위해 사용한다는 기본정신을 규정하고 있다.(노동하는 인간 14)
돈은 원래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너희가 남의 것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을 내주겠느냐?”(루카 1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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