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이 이번 주부터 새 기획 ‘취재, 현장 속으로’를 시작합니다.
첫 번째 현장 이야기는 3.3㎡ 작은 공간 구둣방에서 펼쳐집니다. 경기도 안산시 사동에서 15년 동안 기능 미화원 외길을 걸어온 임창용(프란치스코.49.안산 대학동본당)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구두를 닦고, 수선하고, 도장을 파고, 열쇠를 만드는 그 작은 공간 속 세상 사는 이야기로 들어가 봅니다.
“우리 마음도 깨끗이 닦으면 안될까요”
◎3.3㎡ 행복공간 주인공 기능미화원 임창용씨
‘프로’다. 먼저 브러시로 먼지를 말끔히 털어내야 한다. 찌든 때는 천에 물을 적셔서 조심스럽게 닦아 낸다. 껌 등 이물질은 휘발성 용액으로 깨끗이 씻어낸다. 그 후 부드러운 천으로 광을 낸다. 처음에는 억세게(힘차게) 문지르다가 차츰차츰 손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닦는다. 15년 노하우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구두 하나가 반짝반짝 해졌다. 말 그대로 파리가 앉으면 미끄러질 정도다. 먼지 앉을 새라 조심스레 반짝 구두를 선반에 올린다. 임씨는 그렇게 오늘도 세상 하나를 닦았다.
#남편, 세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
날씨가 더운 탓인지 길에 오가는 사람이 적다. 3.3㎡ 작은 공간 속에는 라디오 소리, 그리고 손바닥 만한 미니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뿐이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구두 닦는 사람도 많이 줄었습니다.”
세상 살기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사람들은 요즘 구두 한 켤레 닦는 비용 2500원도 아낀다. 게다가 여름은 구두 닦는 이들에게는 비수기다. 여성들이 주로 샌들을 신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부업으로 하고 있는 열쇠 제작과 도장 파는 일이 더 수입이 많다.
“요즘 경제가 어렵긴 어려운가 봐요. 구두를 닦는 사람도 많이 줄었습니다. 하긴…, 돈이 없으면 얼마나 힘든지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지요.”
15년 전 음식점을 운영하다 부도가 났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기능 미화원의 길이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이 일을 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으니까요.”
31살 나이 늦장가 간 탓에 아이들도 늦게 봤다. 큰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가 초등학교 6학년, 셋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다.
아직 구두를 손에서 놓기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임씨가 땀을 흘리는 이유다. 아이들 생각만 하면 얼굴에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얼마전 아이들은 “땀 흘려 일해 돈을 버는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벌써 1시간이 흘렀다.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데 임씨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더위와 추위에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에어컨과 전열기구 없이 여기서 겨울과 여름을 보낸지 벌써 15년입니다.”
낡아서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던 구두 하나가 말끔히 새 구두로 다시 태어났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형님, 저 왔습니…. 어, 손님 계시네?” 한 성당 후배가 임씨를 찾았다. 가뜩이나 좁은 공간에 엉덩이 하나를 더 보탠다. 장모님 부탁으로 도장 하나 파기 위해 왔단다.
“취재 한다구요? 형님이야 신문에 나올만 하지. 법 없이도 사실 분이라니까요. 성당에서 고민 있는 사람 모두다 형님께 찾아와 하소연 할 정도예요. 성당에서 인기 100점이예요. 100점.”
가족을 부양하는 일터였던 3.3㎡ 공간이 어느새 ‘신앙 사랑방’으로 바뀐다. 성당 돌아가는 이야기에, 때로는 교우들 작은 흉도 오가고, 연도를 게을리 하는 후배 핀잔도 곁들여 진다.
4년 전, 스스로 성당으로 찾아와 세례를 받았다. 형과 동생이 모두 목사인 개신교 집안에서 천주교 신앙을 선택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천주교 신앙을 선택한 이유? “단지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모두 성당에 다니고 있어서”다.
지금은 연령회 회원과 성당 축구단 단원으로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연도는 아무리 거리가 멀어도 가능하면 참석하려고 애쓴다. “그게 신앙인의 도리이자,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한 켠에 묵주가 보인다. “비오고 추울 때, 손님이 없을 때, 묵주기도를 바쳐요. 이 직장 참 좋죠?” 신앙 ‘훈남’이다.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
“시간에 늘 매이는 직업이라….” 임씨에게는 개인시간이 없다.
119 안산 소방서 상황실에 등록되어 있는 탓에 열쇠와 관련한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달려가야 한다.
주일 성당 교우들과 축구를 할 때도 핸드폰을 늘 손에 쥐고 한다. 추석과 설 등 명절은 잊은지 오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바쁘게 살아가는데, 저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열심히 살다보면 안타까운 일, 웃을 수 밖에 없는 일도 많이 생긴다.
“이웃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과 함께 가서 문을 열었더니 나이 예순을 갓 넘긴 할아버지가 숨져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사망한지 1주일 이상 지난 상태였다.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사귀기를 거절하는 여자 친구의 집을 자신의 집이라며 속이고 열어 달라는 스토커 청년, 구두 수선비가 왜 그렇게 비싸냐며 막무가내로 값을 깎아 달라는 그랜저 타고온 귀부인, 아예 첫 말을 반말로 시작하는 40대 신사…. 세상에는 별별 사람 많다.
점심 시간. 달랑 한 그릇 배달 시키는 것이 미안해 식당으로 향한다.
“배려는 전혀 없이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이 제일 싫어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모두 만납니다. 그 중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구요. 세상 모두가 성당 다니는 사람 만큼만 됐으면 좋겠는데….”
식사를 마치고, 임씨가 캔 음료수를 두 개를 사가지고 왔다. 구두 수선 공구로 캔 뚜껑을 따서 권한다. 손이 늘 지저분해서 다른 사람에게 선뜻 손을 꺼내 보이지 못한다고 했다.
“꿈은 많지요. 우선 가족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고…. 돈이 어느정도 여유가 생긴다면 성당에서 봉사활동도 하고 싶어요. 봉사도 거창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숨어서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꼭 필요한 그런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요.”
그 놈의 더위 탓이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세상이 조용하다. 정치 이야기를 슬쩍 꺼내봤다.
“정치? 관심 없어요. 남의 나라 이야긴데요 뭘~”
라디오에선 뭐가 그렇게 신나는 일이 많은지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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