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모창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나의 영어 이름은 ‘재키’이다. 나는 최정원, 다리아, 재키라는 이름 뿐 아니라 수많은 이름으로 다양한 인생을 살아왔다. 바로 뮤지컬 무대에서.
최근에는 뮤지컬 시카고의 여주인공 ‘벨마’가 되기 위한 연습에 분주하다. 보드빌무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한 여가수의 모습이 되기 위해 나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다.
“나는 여왕이야. 모든 것을 다 잘하는 나는 큰 몸짓으로 춤추지 않고 작은 제스츄어만 해도 멋진 모습을 연출할 수 있어.”
이러한 주인공 벨마의 대사를 수없이 되뇌이며 그의 몸짓, 표정, 생각까지 나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로서의 삶. 고등학생 시절 나는 그 꿈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20여 년 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토요일 밤. 우리 가족들은 한데 모여 당시 인기 프로그램인 주말의 명화를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았을 때 나는 영화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방송됐던 영화는 진 켈리가 주연한 뮤지컬 영화 ‘Singin’ In The Rain’이었다. 진 켈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집에 데려다 주고 빗속에서 춤을 추는 장면, 뮤지컬 영화 사상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는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오스스 소름까지 돋는 것을 느꼈다.
“이거였어. 내가 원했던 것은 이거야. 난 무대 위에서 저렇게 살아야 돼!”
그 순간 나는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어릴 때도 나는 노래를 잘하는 아이였다. 대여섯살 나이, 유치원을 다니기는 커녕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노는데 정신없이 없었다.
그렇게 동네를 헤집고 다닐 때면 어른들은 지나가는 나를 놓치지 않고 으레이 노래 한곡 해보라고 시키곤 했다. 내가 모창을 꽤나 잘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심수봉, 윤시내, 장은숙, 현숙, 김수희씨 등 당대 유명 가수들의 노래를 어른 가수 뺨치게 불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5명 이상 관객이 모이지 않으면 노래를 하지 않았다. 어른들께도 좀더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라고 당차게 말했다. 내 생각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박수에 민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혼자 방문을 잠그고 들어앉아 눈물을 철철 흘리며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곤 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하늘나라에 계신 거예요.” 멀쩡히 살아계신 아버지가 들으면 기함할 소리였지만 나는 그렇게 돌아가시지도 않은 아빠를 부르며 방에서 연기연습을 하곤 했다.
그렇게 혼자 연기연습을 하는 딸을 지켜보던 우리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충무로에 있는 연기학원에 데려다 주셨다. 다른 어머니들 같으면 무슨 짓이냐고, 공부나 하라고 야단쳤을 수도 있었지만 우리 어머니는 내가 배우의 길에 당당히 첫발을 내딛을 수 있는 최고의 후원자가 되어 주셨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매일매일 그저 ‘나’로 사는 것이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다. 때론 거지도 또는 의사도 되고 싶고, 여왕도 되고 싶고 가수도 되고 싶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사는 쾌감을 좋아했었다. 그래서 연기자를 하면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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