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팬’이며 후원자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을 꼽으라면 단연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릴 때부터 연기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온 내 손을 잡고 충무로에 있는 연기학원의 문을 두드린 이도 엄마였고, 지금 나의 뒤에서 크나큰 박수와 후원을 보내는 이도 엄마이다.
나는 1남1녀 중 막내다. 외동딸이었지만 엄마는 나를 매우 소탈하게 키우셨다.
엄마는 한번도 내게 ‘정원아 공부 좀 해라’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엄마의 교육 방침은 항상 ‘정말 필요하면 네가 해라’는 방식이었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트럼펫을 전공했고, 그 실력 덕분에 고등학교 재학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아침 조회시간이면 국민의례와 애국가 합창 등을 꾸준히 반주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시 받았던 장학금은 엄마랑 나눠가졌었다. 물론 아빠에겐 비밀이었다.
지금이라도 사실을 아시면 많이 섭섭하시려나…. 나는 장학금과 용돈 등을 꾸준히 모았다. 브로드웨이에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여튼 엄마는 늘 나에게 우호적인 분이셨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입시를 한창 준비할 시절에 학교를 그만두고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을 때도 어머니의 대답은 ‘긍정’이었다. 도리어 학교측에서 난리가 났었다. 고등학교 졸업은 한 후에 배우가 되든 뭐든 하라고 성화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에도 배우가 되겠다고 확실히 말했고 엄마는 나를 지지해주셨다. 이렇게 엄마의 성격은 호탕한 면이 많았다.
나를 신뢰해주는 엄마의 모습은 큰 힘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긍정적인 사고를 하며 살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엄마 덕분이다.
우리 엄마의 생활에는 남에 대한 친절과 배려가 배어있다.
어릴 때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어느 순간 어머니가 사라지곤 했다.
어디 계신가 두리번두리번 찾아헤매이다 보면 으레이 할머니들의 등을 밀어주느라 힘쓰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엄마가 무슨 때밀이냐, 엄마 때문에 창피해서 목욕탕에도 못오겠다’며 괜한 짜증을 내곤 했다.
엄마의 과다(?) 친절은 수영장에서도 이어진다. 엄마는 수영을 부지런히 하신다.
그런데 수영장에서도 깜빡하고 수영복을 빠트리고 온 사람이 있으면 잠깐 기다리라고 하곤 얼른 샤워를 하고 집으로 내달린다. 집도 가깝고 남는 수영복도 있으니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동네사람들도 엄마를 보면 ‘요즘에 저런 사람 없다’고 말하곤 한다.
결혼을 하고 엄마 곁을 떠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엄마의 보살핌을 받게 됐다. 임신 후 입덧이 심하고 유산기도 있어 남편은 부랴부랴 엄마를 모셔왔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엄마는 우리 가족 곁을 지켜주신다. 그 덕분에 나는 무대에 계속 설 수 있다.
활발하신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까지 딸과 손녀딸을 돌보느라 친구분들과 여유있는 시간 한번 못가지시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엄마는 나의 가장 ‘오래된 가족’이자 ‘팬’이다.
우리 가족들은 내가 공연을 시작하면 늘 첫 무대를 관람한다.
나는 공연을 마치고 뒷마무리를 하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갈라치면 딸 수아가 그렇게 눈에 밟히고, 엄마에게도 미안한 마음 뿐이다. 그런데 한밤중 나를 마중하는 따스한 글. 예기치 못한 편지 한 장이 나를 감동시킨다.
“내가 이렇게 훌륭한 여배우를 딸로 두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오늘 네 공연을 보고 기분이 너무 좋아 맥주 한잔 마시고 잔다. 수아는 늘 걱정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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