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역량 결집·네트워크 형성이 관건
‘선교는 왜 해야 하는 것인가? 최근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등으로 개신교회의 해외 선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그동안 선교실태를 되짚어보고 보다 올바르고 효과적인 복음화 노력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이어져왔다. 특히 한국교회는 아시아복음화에 대한 시대적 요청을 적극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미래사목연구소(소장 차동엽 신부)는 시대적 요청으로 제시된 아시아 복음화의 당위성을 자각하고 구체적인 소명을 되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해 관심을 모았다.
연구소는 한국교회와 아시아 복음화에 대한 활동 실태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 대안 등을 제시하는 학술발표회를 9월 15일 오후 1시30분 서강대학교 다산관 101호에서 마련했다.
‘동아시아 복음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열린 이번 발표회는 ‘학술발표회’로서는 물론 구체적인 사목적 비전을 나누는 교류의 장으로 더욱 의미 깊다는 평가다.
발표회에서는 ‘아시아 복음화의 길’ ‘중국 복음화 현황과 전망’ ‘동아시아 민중의 믿음의 소통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차동엽 신부와 왕건공 신부, 황종렬 박사 등이 발표에 나섰다. 또 각 발표 후에는 전수홍·맹제영 신부, 장정란 교수가 ‘아시아 선교 역사의 의의와 과제를 중심으로’ ‘중국 복음화 대안을 중심으로’ ‘마테오 리치의 적응주의 선교의 의미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논평을 펼쳤다.
특히 이날 발표회에서 차동엽 신부는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전 교구의 선교 역량 결집과 아시아 선교센터 필요성 등을 제안했다.
또 전수홍 신부는 논평을 통해 “국내 거주 외국인 수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며 “국내 유학, 연수자 등이 귀국 후 각 지역 선교사로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지속적인 네트워크 형성을 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아시아 선교 방안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맹제영 신부도 논평에서 “중국 선교와 관련해 우리의 시각으로 종교자유가 없다고 비판하기보다는 천주교가 사회주의 제도 내에서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해 무신론자들과의 대화와 지상·지하교회 화해와 일치 방안, 바티칸과 중국정부 수교 방안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장정란 교수는 “‘공인종교단체’ 밖에서의 활동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중국 등에서는 400여 년 전 마테오 리치가 수립한 ‘문화적’ 적응방법이 보다 유효하다”고 밝혔다.
한편 연구소는 오는 2009년까지 ‘동아시아 복음화’를 주제로 보다 체계적인 실천방향과 대안 등을 연구·발표할 방침이다.
다음은 각각의 학술발표회 내용 요지다.
◎‘아시아 복음화의 길’-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타인 영역 인정할 때 복음선포 가능”
복음전파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함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복음을 전할 충동이 인다. 또 그리스도교의 고유성과 포괄성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본질적인 요청이 된다.
아시아 대륙 복음화율은 고작 2~3%에 머물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상 현재 아시아 복음화를 주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나라는 한국교회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한국교회 선교활동은 북한과 중국 선교, 일본 교류 등을 제외하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선교에 접근해야 하는지 밑그림조차 제대로 그려지 못한 상황이다. 따라서 근본적인 대책과 복음화 모델 개발이 절실하다. 특히 범교구적으로 동북아 선교 역량을 결집하고 복음화 창구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
정치 사회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섬김’의 미덕을 이뤄야 한다. 선교 인프라 구축과 토착화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현대의 선교는 단순한 선포가 아닌 상호소통, 열린 선교자세와 쌍방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요청된다.
많은 선교사들이 이슬람국가 등에서 선교효과를 이루지 못한 것은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는 방식 즉 ‘나의 것’과 ‘나의 신앙’에만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영역을 인정하고 경계를 허물어버림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공유, 공감을 넘어 이해로 나아갈 때 복음 선포는 가능해진다.
보다 구체적으로 복음화 인프라 구축에서는 ▲공통 코드 찾기 ▲아시아 스스로의 자각과 연대 강조 ▲이웃을 위한 선행으로 가톨릭의 이미지를 증진하는 일 등이 중요하다.
실천적·실용적 선교정책 추진과 관련해서는 ▲아날로그식 접근방법과 디지털식 접근방법이 조화를 이룬 선교 ▲보편타당성이 있는 원리와 법칙으로 만든 구체적 프로그램과 매체를 통한 실용적 선교 ▲스스로의 변화와 활동을 자극하는 시스템적 접근의 선교 등이 필요하다.
‘중국 복음화 현황과 전망’- 왕건공 신부(가톨릭대 박사과정)
◎“성직자들부터 복음 전파 나서야”
아시아 총인구는 36억이다. 그중 중국은 13억 인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중 10억 명 이상이 무종교인이다. 현재 중국의 가톨릭신자 비율은 1%가 채 되지 않는다.
가톨릭은 개신교보다 230여 년 앞서 중국에 진출했지만, 중국정부 발표에 의하면 2006년 현재 개신교신자 비율은 가톨릭신자수의 3배 이상을 초과했다.
중국 가톨릭신문 ‘신덕보(信德報)’에 의하면 중국 가톨릭교회에서는 최근 영세자 수가 총체적으로 늘어났고 새 영세자들은 청·장년층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복음선포 방식도 지역상황에 따라 전통적 예비신자과정 외에도 소규모 공동체(본당)별로 찾아가는 선교를 적극 펼치는 등 다양하다. 하지만 신자수는 몇몇 지역에 편중돼 있고, 발전 균형을 이루지 못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신자들의 복음 선포의식 개선은 물론 예비신자교리반 확대 등이 과제다. 현재 중국교회 복음선포의 최대 장애는 중국사회에 존재하는 무신론 사상이다. 공산당은 정권 장악 이후 무신론에 관한 국가 차원의 교육을 적극 펼쳤고, 무신론은 중국 곳곳에 엄청난 뿌리를 내렸다.
‘애국교회’와 ‘지하교회’로 나눠진 중국교회 내부 문제도 선교의 큰 장애로, 양쪽 모두 나름의 복음선포활동을 펼치지만 많은 이들은 어느 공동체에 속해야할지 갈등을 느낀다.
또 교황청과 중국 정부간에 정상적인 수교가 이뤄지지 않은 것도 복음선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재 중국교회는 교회법과 교황의 권고대로 활동하기 쉽지 않고, 정부의 압력과 제한된 상황 속에서만 활동하고 선교한다.
중국 선교를 위해서는 ‘하나’의 중국교회로서 성직자들부터 복음선포에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정치적 핑계를 벗어나 전국적으로 교구간, 지역간 교류를 통해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믿음 안에서 동아시아 민중과 민중의 만남 : 동아시아 민중의 믿음의 소통을 향하여’- 황종렬(미래사목연구소 연구위원)
“‘이성·우애’ 토대로 감성적 접근을”
마테오 리치는 중국 복음화를 위해 ‘적응주의 노선’을 선택한 바 있다. 이것은 중국의 사회문화 전통을 복음화의 방업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서는 무엇보다 인간의 이성과 자유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고, 중국인들이 이뤄온 문화에 대한 존중과 대화가 선교의 기본 틀로 설정된다.
17세기 동아시아의 선교사들은 자신들과 전혀 다른 문화적 사회적 현실속에서, 편견과 의혹을 불식시키며 대화의 지평을 열어갈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리치는 ‘이성’과 ‘우애’를 토대로 대화하면서 중국인들에게 다가갔다. 동아시아 복음화 역사에서 오늘날에도 우애에 대한 신학적·사목적·영성적 감수성을 갖춘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중국 민중들은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한 서구 국가들의 침략과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문화의 파괴를 겪었고, 정치력을 회복했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다시 철저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중국 역대 정권의 종교 정책관을 역사 흐름 속에서 바로 이해할 때 비로소 현재와 같은 정치적 제약을 안고서도 보다 더 유연하게 복음적 가치를 구현할 길을 발견해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 복음화를 통해 동아시아 민중들 사이에서 믿음을 소통시킬 21세기 방식은 복음을 전달받는 이들을, 그들이 수락하는 가운데 주님 축복을 충만히 살아가도록 길을 여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화의 모델로 마더 테레사의 ‘존재 중심의 복음화 방안’을 꼽을 수 있다. 또 교회는 동아시아 영성 전통을 보다 적극적·창조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아울러 동아시아 역사와 사상의 토대 위에서 우애의 지평을 펼치는 사명, 즉 동아시아 민중의 명의질 질을 돌보는 일은 ‘우주적 복음화’ ‘생태 복음화’로 명명할 수 있다. 세계의 산업발전과 생태계의 문제를 동아시아 복음화에 연결지어 아시아 민중과 지구 공동체의 복음적 안녕을 구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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