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시골 성당이라 성당 대지가 아주 넓습니다. 마당에 있는 나무들도 조경이라기보다는 나무가 생길 때마다 대충 심었던 것 같습니다.
성당이 넓은 것은 참 좋은 일인데 제초작업이 문제입니다. 제가 팔을 걷어붙이자니 신학교 작업시간외에는 해 본적이 없는지라 참 어렵습니다. 대지가 넓다보니 한쪽을 하고 나면 다른 쪽은 또 풀밭이 되어버립니다.
한번은 공지사항시간에 “제 동창신부가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하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내무반 앞에 조그마한 잔디밭이 있었는데 그곳에 잡초가 많다고 늘 시달렸답니다. 어느 날 농약사에 가서 약을 구입하려는데, ‘다 죽는 걸로 줄까요? 아니면 잔디는 살고 잡초만 죽는 약으로 줄까요?’하며 농약사 주인아저씨가 묻더랍니다. 이 친구는 ‘다 죽는 걸로 주세요’라고 했고, 그래서 잔디밭을 아주 깨끗이(?) 정리 했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당인지라 선택성 제초제 같은 것을 사용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할머니들이 나오셔서 제초작업을 하셨습니다.
사목은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런데도 본당에 왔는데 뭔가를 좀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희 본당은 대부분이 어르신들인지라 연도회 회원수가 가장 많습니다. 연도회는 매달 식사를 합니다. 연도회 식사 날이면 거의 대부분의 교우분들이 식사를 하고 가십니다. 그 때마다 쓸 김장을 좀 해야겠다 계획하였습니다.
“올해 배추농사는 누구네 것이 제일이여.” “묵은 지로 먹을라면 경종이어야 한디 누구네 집것이 좋구먼.” “고추 농사는 누구네 것이 좋은디….” “건조기에다 다 말렸는께 하우스에다 말린 것이 더 좋제.”
동네방네 할머니들이 성당 김장을 하기 위해서 다들 모이셨습니다. 김장하는데도 어찌나 집집마다 김장의 전승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김장을 해서 내년에 묵은 김치로 만들어서 판매도 좀 해볼까 하고 땅을 파고 잘 묻었습니다.
인터넷에 봤더니 너무 고생한 것에 비하여 가격은 별로였습니다. 주변분들 몇 분에게 묵은 김치를 팔았습니다. 김치 냉장고에서 익힌 묵은 김치 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좀 신맛도 있지만 옛날 묵은 김치 맛이 제대로 나는 순 우리 것으로 만든 묵은 김치입니다. 이것도 요즘 맛있게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엇을 한다는 것이 결국 할머니들을 너무 고생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움일지언정 그분들께는 일상을 신앙이란 이름으로 고단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하는 일들이 과연 잘하는 것인지 곰곰이 되짚어 보지만 확실한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이호 신부(광주대교구 사거리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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