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선교 활성화로 청년사목 새 지평 연다
성지순례·성경공부·피정 군 복음화 밑거름
제대 후 지역 교회와 연계해 신앙생활 관리
통일 전산망 구축·타교구 협력·지원 절실
# 2020년 10월 7일 수요일-가상현실
아침 7시57분. 한국가톨릭군종후원회 사무국장 박경수씨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는다. 컴퓨터를 켜자 새로운 이메일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커서가 깜빡인다.
“야! 오늘은….”
이메일을 열어본 박국장의 입에서 탄성부터 터진다. 참기 힘든 듯 얼굴 한 가득 웃음을 문 박국장이 유심히 바라보는 컴퓨터 화면에는 지난달 입대한 신자 청년들이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어제 날짜로 배치 받은 군부대 주소와 관할 성당 목록이 떠있다. 오늘은 거기다 열쇠부대(5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보내온 지난 주일 새로 영세한 신병들의 신상명세도 들어있다.
어림잡아도 200명은 넘어 보인다. 세례식 동영상까지 띄워져 있어 그날의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예상이나 한 듯 박국장의 몸놀림이 분주해지기 시작한다.
“당장 이번 주엔 주보와 주교님 격려 편지부터 보내야겠군.”
박국장은 일주일에 두 번씩 꼬박꼬박 100여개의 군 본당들로부터 이런 이메일을 받는다. 메일이 도착하는 날이면 자기도 모르게 여느 때보다 일찍 출근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후원회 일을 20년 넘게 해오면서 요즘처럼 신이 났던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박국장의 책상에 놓인 탁상용 달력엔 유난히 붉은 펜으로 표시해둔 날짜가 많이 띈다. 돌아오는 주일인 10월 11일엔 ‘위문’이란 글씨가 큼지막하게 표시돼 있다. 신자 연예인들로 구성된 군위문단과 함께 강원도 고성군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위치한 육군 율곡부대로 위문공연을 가기로 돼 있는 날이다. 위문단 관계자들과 이미 두 차례나 답사를 다녀온 터라 별 문제는 없겠지만 지난 번 공연 때처럼 인근 주민들까지 부대 근처에 몰려들어 혼잡을 빚게 될까 걱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국군의 날과 군인주일이 들어 있는 10월은 군종교구나 군종후원회로 봐선 대목이나 다름없다. 육군훈련소 연무대성당을 필두로 군 훈련부대를 관할하고 있는 군 성당들은 벌써 2년치가 넘는 위문공연 일정이 짜여 있는데도 위문 활동을 나오겠다는 이들이 넘쳐나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할 판이다.
상비군 병력이 40만 명 수준으로 줄었지만 이들 가운데 12%가 넘는 병사들이 매년 영세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시작한 게 벌써 오래전부터다. 10년 전인 2010년 군 사목 60주년을 맞으며 60만 장병 가운데 처음으로 신자수 15만 명을 넘겨 복음화율 25%를 기록함으로써 한국 교회 복음화 도정에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도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2020년까지 해마다 20만명씩 군인들에게 세례를 줘 2020년에는 전 국민의 75%를 개신교 신자로 만들겠다는 ‘비전 2020’전략을 세우고 가장 먼저 군 선교에 기세를 올리고 나섰던 개신교를 비롯해 타 종단들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거둬들인 결실이라 더욱 의미있게 다가온다.
# 2007년 9월 14일 금요일-희망의 씨앗을 뿌리다
가상현실이지만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다. 희망에 머물던 생각을 현실로 일궈 나가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빛을 더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군종교구에서 내놓고 있는 각종 통계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5년 10월 1일부터 2006년 9월 30일까지 1년간 군종교구에서 배출한 영세자 수가 2만9391명으로 처음으로 3만명에 육박해 몇 년 전만 해도 먼 미래의 일로 생각되던 일이 현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 2002년 1만7352명의 영세자를 내 한국 교회 전체 영세자 수 13만7723명 가운데 12.6%의 비중을 차지한 군종교구는 2년 후인 2004년에는 2만584명으로 2만명을 돌파하며 한국 교회 영세자 가운데 14.8%를 기록한데 이어 2006년에는 2만7525명을 낳아 18.6%로 한국 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주된 성장 동력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이러한 군종교구의 현재는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님은 분명하다. 군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성지순례, 피정 프로그램, 성경 공부 프로그램 등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워진 신앙 프로그램을 비롯해 재정 지원 확대 등 예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군 복음화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밑거름이 되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군종교구와 민간 지역교회와의 공조사목도 군종교구뿐 아니라 한국 교회의 미래를 그려나가는데 의미있는 청사진이 되고 있다. 군에서 장병들이 세례를 받으면 교구 전산망을 통해 서울·대구·부산·마산·수원·인천·청주 등 7개 교구 군종후원회와 연결, 세례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사목에까지 활용토록 하는 구상이 공조사목의 요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교회 전체 차원의 통합 전산망인 ‘통합양업시스템’이 구축돼 국가 교회 단위의 통합된 사목행정전산망이 개통될 경우 군대에서 세례를 받은 장병들의 세례증명서와 교적을 군종교구로 보내 전산처리를 거쳐 각 지역 교회와 연계하고, 각 교구 군종후원회는 영세자가 군 생활 중에는 물론 제대 후에도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아울러 군 영세자뿐 아니라 그 가족에 대한 사목적 배려와 선교로도 이어지게 함으로써 군과 민간 영역에 걸친 다층적인 재생산 구조를 갖게 되는 것이다.
군종교구가 이처럼 각 교구 군종후원회 등과 협력, 공동사목을 통해 군 영세자 통합관리나 제대 후까지 이어지는 전역자 신앙생활 관리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은 군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들에 대한 사목이 군종교구만의 일이 아니라 해당 지역교회, 나아가 한국 교회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문제라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실제 시노드 후속 교서 실현 차원에서 지난 2006년 ‘군 영세자 신앙생활 지원사업’에 나선 서울대교구 가톨릭군종후원회의 경우 군종교구로부터 받은 군 영세자 명단을 서울대교구 내 관계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적절히 관리함으로써 군 영세자를 통해 사목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한국 교회는 군 복음화가 청년사목의 지평 확대로, 또 군사목의 활성화가 고령화·여성화가 심화되고 있는 교회의 체질을 개선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군종교구의 이런 다양한 시도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헤쳐 나가야 할 난관 또한 적지 않다. 통일된 전산망 구축 같은 작업이 필수적일 뿐 아니라 전산망 구축이 완료되더라도 민간 교구들, 특히 일선 본당들의 협력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교회 민간 영역과의 연대도 물질적 나눔이라는 소극적인 차원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되고 자매결연 등 다양한 인적 교류로 이어질 때 급속한 사목 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복음화의 도정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군과 민간 영역에서 정신적 유대를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모색이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방안부터 성가대 교환, 결연 본당간 사목위원 교환방문 등을 통해 상호 유대를 강화하는 방법도 가능한 대안이다.
나아가 지역교회가 군 선교의 일 주체로 군 본당에 소속된 군인 예비신자들의 교리교육, 상담 등을 돕고 제대 후 소속 교구로 돌아갈 때까지 재교육의 일정 부분을 분담하있도록 교회 차원에서 제도적 틀을 마련해 나간다면 군에서 싹튼 신앙을 사회에서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군종교구가 청년사목의 개척자로서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개발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군 복음화에 추동력이 될 동력원이 절실하다. 이런 점에서 군종교구가 내놓은 또 하나의 통계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해 군종교구 사제연수·총회에서 나온 통계를 보면, 수도자나 군 선교사가 파견된 곳에서 군 영세자 수의 증가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지속적인 군 선교를 통해 한국 교회 복음화의 지평을 넓혀 나가기 위해서는 인적 자원이 필요함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아울러 군 선교에 인적 자원이 꾸준히 투여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렇듯 지난 군사목이 개척해온 역사는 군 선교에 대한 인식이 바뀔 때 한국 교회 복음화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음을 역설해주고 있다. 아울러 아무리 풍성한 ‘황금어장’이라도 고기를 낚을 배와 그물이 없으면 소용이 없음을 보여준다.
군사목을 통해 발견한 복음화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국 교회 전체가 한마음이 되어 황금어장에 그물을 던지고자 하는 인식의 전환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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