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떼어 놓을 수 없는 하느님 사랑 -
영원한 삶의 희망
한국 초대교회 신앙의 선조들의 영성을 이야기하라면 저는 당연히 겸손을 꼽습니다. 선조들은 참으로 대단한 겸손의 삶을 사셨습니다.
계급의 구분이 뚜렷했던 시대였는데, 어찌 그토록 자신을 낮출 수 있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자 선비이며 양반이었던 신앙의 선조들은 일단 신앙을 받아들인 다음에는 무한히 내려오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비천한 백정들까지도 품에 안으셨고 같은 형제자매로 대하셨습니다. 배운 자가, 있는 자가, 기득권을 가진 자가 내려오니 복음은 일사천리로 퍼져 나갔습니다.
윗물이 맑고, 윗물이 모범을 보이니 아랫물 역시 맑게 되었고, 그야말로 신명난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같은 끈끈한 정이 있고 서로가 낮추며 애덕의 신앙생활을 하니 박해 중에도 서로를 격려하며 용감히 순교의 길을 함께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의 모습은 분명 사도행전의 첫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빼어 닮았습니다. 샤를르 달레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당시 교우들의 삶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이가 가난한 가운데에서도 아주 아무 것도 없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줄 줄을 알았고, 과부와 고아들을 거두어 주니, 이 불행한 시절보다 우애가 더 깊었던 일은 일찍이 없었다.
이 일을 목격한 노인들은 그 때에는 모든 재산이 정말 공동으로 쓰여 졌었다고 말한다. 신입교우 중에서 남보다 학식이 많은 이들은 자기 집안이나 이웃에 있는 무식한 이들에게 기도문과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그리스도교는 시작부터 내려옴의 신앙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비천한 인간 세상에 내려 오셨는데, 우리가 무얼 그리 잘났다고 내려오지 못하는 것입니까? 신앙의 선조들은 분명 겸손 되이 내려오실 줄 아셨던 분들이셨습니다.
순교는 자신의 뚝심이나 고집, 자신이 내세우는 주장만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느님의 은총이며, 그 은총을 지키며 겸손되이 더불어 나누며, 지금 바로 이곳에서 천국을 만들어 나갈 줄 알았던 이들이 순교의 영광을 입었던 것입니다. 미래에 주어질 영원한 삶의 희망을 바로 현세에서부터 만들어 나갔던 이들이 천국 영생의 행복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힘으로 이겨냅니다
기해박해(1839년)와 병오박해(1846년) 때 순교자들의 행적 기록에는 당시 천주교인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던 형구들을 소상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읽노라면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에 몸서리가 쳐집니다. 또한 그 같은 무서운 형벌을 선조들은 어떻게 이겨내고 순교의 길을 걸으실 수 있으셨을까를 생각하면 숙연해지며 저의 안일한 신앙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 당시 고문 몇 가지를 소개해 봅니다.
1. 곤장 - 곤장 서너 대를 맞으면 살이 터져 피가 흘러나오고 살점이 잘게 찢어져서 사방으로 튑니다. 열 대쯤 맞으면 곤장이 속뼈를 후려쳐서 몸서리치도록 끔찍하게 깨지는 소리가 납니다. 맞는 자나 때리는 자나 땅바닥이나 온통 튀는 피와 떨어져 나가는 살 조각 등을 뒤집어 쓰게 됩니다.
2. 주뢰 - ‘주리’, 혹은 ‘전도주뢰’라고도 하는데, 양편 발의 엄지발가락을 끈으로 한데 꼭 묶습니다. 망나니들이 정강이 사이에 두 개의 주릿대를 끼우고, 정강이 뼈가 활처럼 휠 때까지 서로 양편에서 주릿대를 힘껏 잡아당깁니다. 이 형벌은 너무 끔찍하고 잔인하다 하여 1732년(영조 8년) 금지령을 내렸으나 이후에도 계속 사용됐습니다.
3. 다리비빔(삼모장) - 삼각형의 몽둥이로 양다리 앞부분(정강이)을 세게 마찰합니다. 살가죽과 속살이 즉시 문드러지고 뼈가 드러납니다.
이밖에도 끔찍한 형벌이 많지만, 이렇게 피투성이 된 신자들을 감옥에 쳐 넣게 되는데, 감옥은 그야말로 더 끔찍하였습니다. 겨울은 너무도 춥고, 여름은 지독히 더웠습니다. 더구나 너무 좁고 옹색하여 거기에 갇힌 신자들은 다리를 뻗을 수조차 없습니다.
또한 매 맞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고름 등이 멍석자리에 젖으면, 이내 썩어서 악취가 코를 찔러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굶주림은 신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괴롭혔습니다. 깔고 누운 멍석을 뜯어 먹거나, 이, 벼룩, 빈대 등을 잡아먹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같은 상황에서도 신자들은 망나니들의 칼이 자신들의 목을 자르기 전에 감옥에서 목숨이 끊어질 것을 더욱 걱정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103위 성인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무명의 순교자들이 이 끔찍한 길을 함께 걸으신 것입니다.
그분들은 어떠한 환난, 역경, 박해, 굶주림, 헐벗음, 위험, 칼 등도 자신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힘으로 이겨 내신 것입니다.(로마 8, 35~39 참조)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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