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집 '문지기' 직업 아닌 행복이죠"
사무장. 한국가톨릭대사전에도 그 단어가 없다. 그만큼 사무장은 우리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존재다. 일을 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일을 손에서 놓으면 성당 전체가 뒤죽박죽된다.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근무, 휴일 없는 업무 등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서도 본당 신자 한명 한명을 ‘시어머니’로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그들의 이야기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자격 : 세례받은 지 3년 이상 된 근면 성실한 신자, PC사용(회계, 한글, 엑셀)이 가능한 자, 자격증(방화관리, 위험물 관리) 소지자 우대.
▲제출서류 : 자필이력서, 주민등록등본, 자기소개서, 교적사본, 본당 주임신부님 추천서(타 본당경우) 각 1통.
사무장을 뽑는 일반적 자격 요건을 보면 그리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는 일, ‘참’ 많다.
# 서류철
수원교구 안산 초지동본당 김태형(시몬.40) 사무장.
지난 6월 8일 부터 출근한 새내기 ‘성당지기’다. 공식 출근시간은 오전 9시. 하지만 김사무장은 늘 한 시간 앞당겨 성당에 도착한다. 성무일도 기도를 위해서다.
“하느님의 집에서 일하는데, 조금이라도 일찍 와서 기도를 하고 업무를 시작해야죠. 기도 없이는 기쁨을 찾을 수 없어요.”
성당에서 기도를 마친 김사무장이, 바로 사무실로 가더니 의자를 끌어당겨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 서류철들을 꺼낸다. 해야 할 일이 수북하다. 성당 관리, 경리, 회계, 문서정리는 기본. 성당 물품 보수, 행사 뒷정리, 성당 안내, 문단속에 이르기까지 ‘전천후 맨’이 되어야 한다.
이뿐 아니다. 주보 원고를 작성해 교구로 보내야하고, 교적도 떼어 주어야 하고, 처음 성당을 찾는 이들에게는 ‘신앙 영업’도 해야 한다. 신자들의 이름으로 오는 우편물도 보관했다가 전해 주는 것도 사무장의 일이다. 신자들이 가끔 풀어놓는 ‘다른 신자 흉’에도 맞장구를 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것 하나. ‘성당의 얼굴’인 만큼 늘 웃어야 한다. 며칠 전에는 홀로 사는 한 할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당장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이유를 알아보니 이야기할 사람이 그리우셨던 거다.
# 도장
한 할머니가 사무실에 찾아왔다. 바쁜데 자꾸 말을 건다. 정오 전까지 교구에 보내는 주보 원고 작성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김사무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가더니 물을 꺼내 한 잔 대접한다. “시원하게 드세요. 많이 드세요.” 할머니가 기뻐한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는 웃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곳에서 만나는 신자 분들은 항상 밝은 모습이어서 좋아요.”
김사무장은 “주일학교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 자매님들의 ‘까르르’ 밝은 모습, 형제님들의 땀흘리는 헌신적인 모습에서 진정한 삶의 행복을 찾았다”고 했다. 지방 일간지 기자로 일하기도 했고, 작은 사업도 했지만 이렇게 편안했던 기억이 없다.
“몸이 아프면서도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구역장님, 생활이 어려운데도 성당에 나와 봉사하는 형제님, 권위의식 없이 늘 신자들과 함께하려는 총회장님, 자녀가 희귀병을 앓고 있는데도 신앙 안에서 늘 밝게 생활하는 소공동체 회장님, 이 모든 분들이 저의 신앙 스승입니다.”
본당 신부님이 각별한 정으로 잘 대해 주는 것에 대해서도 늘 감사하고 있다. 김사무장은 “본당 신부님과 신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봐서라도 ‘일 잘하는’ 사무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시30분.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평상시에는 성당 인근 분식점에서 혼자서 점심을 해결한다. 그런데 오늘은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며 봉사하는 한 신자가 찾아와 점심을 사겠다고 한다. “빨리 일 끝내요” 재촉이다.
사무장의 손길이 빨라졌다. 주보 원고 발송을 마치고, 신부님께 올릴 서류들을 꺼냈다. 그리고 도장을 ‘쾅, 쾅’ 찍었다. 그리고 ‘소중히’ 결재 서류철에 보관했다. 성당 행정적 업무들은 모두 사무장 손을 거친다. 김사무장이 신자와 함께 점심을 위해 성당 문을 나섰다.
# 열쇠
구역장과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단장이 찾아왔다. “한 장애인 여고생이 수녀원에 가길 원하는데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던 김사무장. “한번 방법을 찾아 볼께요” 한다.
어제 선종한 사람이 그렇게 애타게 소망하던 소중한 하루가 또 지나갔다. 사무실, 성당, 교리실, 창고…. 아마 수 십 번씩 왔다 갔다 했을 거다.
밤 9시. ‘성당 문지기’ 김사무장이 열쇠 꾸러미를 들었다. 성당 문단속을 해야 한다.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 주일은 저녁미사가 있어서 밤 9시30분 경에 퇴근한다. 저녁 미사가 없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수요일과 금요일은 마치 휴일 전날처럼 느껴진다.
쉬는 날은 월요일 하루. 김사무장은 소문난 ‘다정한 아빠’다. 사무장이 되기 전에는 주일이면 늘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함께 운동을 하거나, 가족 나들이를 했다. 하지만 이젠 접어야 할 ‘꿈’이 됐다. 그래서 주일에는 가능하면 점심식사를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한다. 집이 성당 인근에 있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일하는데’ 어려움을 몰라주는 신자들을 만나면 속상할 때도 있다.
아직도 일부 신자들은 사무장을 월급주고 일 시키는 고용인으로 대한다. 본당 신자 한명 한명이 모두 사장님이다. 그래서 말 조심이 필수다. 조금이라도 성당 발전과 관련한 말을 하면 “사무장이 왜 나서는냐”며 핀잔을 들을 수 있다.
월급이 궁급했다. “월급이요? 검소하게 살면, 그리 불편하지 않는 월급입니다. 이 직업이요? 직업으로 생각하면 이 일 못합니다. 신앙과 기도로 오는 참 행복과 함께 살 때 비로소 이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김사무장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문단속을 했다. 김사무장의 세례명은 열쇠를 들고 천국 문을 지키는 시몬 베드로의 그 시몬이다.
사진설명
▶오전 9시 출근 전 성무일도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김태형씨. 그는 기도 없이 기쁨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성당 관리, 경리, 회계, 문서정리 등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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